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김군> 강상우 감독 “5.18 생존자 트라우마 치유 시급”

5·18 다룬 영화 <김군> 강상우 감독, 못다 한 이야기 담은 <김군을 찾아서> 출간
등록 2020-09-05 08:19 수정 2020-09-10 01:26
강상우 감독은 김군이라 불린 시민군의 소재를 추적하는 영화 <김군>을 찍으며 ‘무연고 행방불명자’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씨네21 오계옥

강상우 감독은 김군이라 불린 시민군의 소재를 추적하는 영화 <김군>을 찍으며 ‘무연고 행방불명자’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씨네21 오계옥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광주분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었어요. 40년이 지나면서 물리적 아픔은 사라졌겠지만 서로 오해와 반목으로 마음속 후유증을 겪고 계신 분이 많았어요. 죄는 계엄군이 지었는데 왜 피해자들이 숨어 지내야 하는지 모순적인 현실이 마음 아팠습니다.”

영화 <김군> 강상우(37) 감독은 광주를 생각하면 답답함부터 느껴진다고 했다. 5·18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인정받으며 항쟁 참여자는 민주유공자가 됐지만 엉킨 실타래처럼 꼬인 그들의 심리적 후유증에 대해서는 도무지 해결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수정당의 수장(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은 채 사과하고 잇따라 5·18 관련 법이 발의됐지만 가까이서 5·18을 들여다본 서울 출신 30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라고 했다. 최근 영화 <김군>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담은 책 <김군을 찾아서>를 펴낸 강 감독과 9월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2014년 3월 독일의 창작집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공연 <100% 광주> 촬영 스태프로 일하며 현재의 광주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게 됐어요. 산업 기반이 약해 소비의 도시라고 불리면서도 한쪽에서는 예향, 5·18로 표현되는 광주의 다양한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죠.”

여전히 숨어 지내는 민주화운동 피해자

강 감독은 그해 4월 조선대학교병원 근처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주옥(61·여)씨와 만났다. 관찰자 입장에서 촬영하던 강 감독에게 주옥씨는 말을 걸었다. 5·18 때 주먹밥을 만들어서 시민군에게 준 일화부터 조선대 축제의 폭죽 소리가 항쟁 최후의 날 들었던 총소리처럼 느껴져 눈물을 흘린 일까지 남들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촬영 원칙에 벗어났지만, 강 감독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1년 뒤인 2015년 5월, 주옥씨는 강 감독에게 막 문을 연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익숙한 얼굴을 봤다고 했다. 2층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전시 부문에 크게 걸린 시민군 사진이 항쟁 이전부터 자주 만난 ‘김군’이라는 것이다. 김군은 당시 주씨 부모님이 운영하는 막걸리가게에 매일같이 들르던 넝마주이 무리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기관총에 손을 얹은 채 강렬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는 사진 속 김군에 대해 강 감독은 궁금했다. 왜 총을 들었을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꼭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5·18은 강 감독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금방 찾을 수 있을지 알았죠. 마침 지만원씨가 김군을 ‘광주 북한특수군’(광수) 1호로 지목하며 관심이 높아졌거든요. 김군은 경찰 가스차 위에서 기관총을 다루고 있었으니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군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사진의 출처부터 확인했다.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이창성씨가 2008년 펴낸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에 실린 사진이었다. 1980년 5월22일 찍은 이 사진은 금남로를 지나던 김군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이씨 사진을 비롯해 모든 5·18 사진집을 뒤진 강 감독은 모두 42장의 사진에서 김군을 확인했다. 사진을 바탕으로 김군이 탄 차량의 이동 시각, 경로를 분석해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2016년 3월, 첫 번째 김군 후보자 오기철(57)씨, 5월 두 번째 후보자 이강갑(63)씨를 잇따라 만나며 한때 기대도 했지만 모두 아니었다. 죽었거나 세속과 연을 끊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렸다.

책 <김군을 찾아서> 표지.

책 <김군을 찾아서> 표지.


사진 속 김군을 찾는 여정 담은 영화 <김군>

김군 추적은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최진수(57)씨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끝난다. 1980년 5월24일 계엄군 간 오인사격이 끝난 뒤 군인들은 민가에 숨어 있던 김군을 끌어내 총살했고, 최씨가 바로 뒤에서 이를 지켜봤다는 것이었다. 김군 주검은 군인들이 어디론가 가져간 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김군의 죽음이 확인됐을 때 그냥 덤덤한 기분이었어요. 어렴풋이 죽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영화로 인해 많은 분이 김군을 기억해줬다는 부분에 의미를 뒀어요.”

영화는 2019년 5월23일 개봉했다. 이후 김군은 ‘무연고 행방불명자’를 의미하는 대명사가 됐다. 생존자 100여 명, 300시간 분량의 인터뷰를 하며 강 감독은 미처 알지 못했던 광주 5·18의 적나라한 모습을 봤다. 인터뷰 탓에 옛 기억이 떠올라 잠들지 못하는 생존자부터 5월 단체 내 주도권 싸움으로 서로 적대하는 유공자들, 아직도 항쟁 참여 사실을 숨기는 광주 외 거주자들까지. 5·18 기념식에서 남성 정치인들이 인사말을 할 때 여성 유가족들은 행사장 한쪽에서 뒷정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주객이 전도됐다고 느꼈다.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홀로 살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은 ‘사회적 타살’을 당했다는 생각도 했다.

8월19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립5·18묘지를 참배하며 사과하는 모습도 기존 정치인들의 행보와 다르지 않다고 강 감독이 말했다. 언론에선 보수정당 대표의 첫 5·18묘지 참배라고 떠들썩했지만 과연 생존자들의 상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강 감독은 진상 규명, 가해자 처벌보다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영화에 못 담은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다

책 <김군을 찾아서>는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미안함을 전하는 동시에 5·18 연구자들을 위한 기록을 남기는 목적으로 펴냈다. 이 책에는 5·18 유공자 지원, 명예훼손 처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 감독의 생각도 담겼다. “5·18, 제주4·3, 세월호 등 대규모 참사를 보면 생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비중이 높아요. 생존자가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김용희 <한겨레> 기자 kimyh@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