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 청소년에서 자퇴한 성인이 되었어요.”
버선버섯(21·필명) 작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만화를 그렸다. 18살 때 한 게임 사이트 공모전에 당선돼 웹툰 작가로 데뷔했다. ‘최연소 웹툰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졌던 그는 학교 밖에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그는 2015년 3월부터 포털 사이트에 자퇴생 일상을 그린 웹툰을 연재하고 그것을 책 (2016)으로 펴냈다. 그다음 해에 21일 동안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를 여행하며 느낀 것을 모아 책 (2017)을 선보였다. 올해 10월에는 집에서 독립한 사회초년생의 일상을 그린 (숨쉬는책공장 펴냄)을 출간했다. 에는 또래 친구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것과 자취하며 반려묘와 함께 사는 소소한 삶을 담았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출간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큰 호응을 받아 목표액을 229% 초과 달성했다.
웹툰 작가로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작품 목록)를 쌓아가는 그를 10월15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같이 실수하며 성장하는 ‘툰’필명 ‘버선버섯’이 독특합니다. 어떤 의미가 담긴 말인가요.
의미 없이 지었어요. (웃음) 한 1분 만에 지었던 것 같아요. 그때 된장찌개를 먹고 있었는데 그 안에 버섯이 있었어요. 그래서 ‘버섯버섯’이라 할까 했는데 왠지 어감이 좋지 않았어요. ‘버섯’과 비슷한 발음이 나는 ‘버선’을 합쳐 ‘버선버섯’이라고 했어요.
세 번째 책에서는 이라는 이름으로 20대 사회초년생의 일상을 담았네요.
자퇴한 청소년 이야기는 많지만 자퇴 이후 성인이 된 이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성인이 된 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일상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을 듯했어요. 자퇴하지 않아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하는 사회초년생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일한 만큼 보수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 사람들 말에 상처받고 혼자 공원에서 울던 일 등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끝부분에 이번 작품에 대해 “같이 실수하며 성장하는 툰”이라고 썼어요. ‘생활툰’이자 ‘성장툰’이네요.
이 책을 보는 비슷한 나이대 분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실수도 하고 때론 좌절하며 같이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었어요. 그 ‘성장’의 의미는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 자신을 아끼는 것, 남들에게 덜 휘둘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어요.
본인이 성장했다는 느낌을 언제 받았나요.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라고 할까요.(웃음)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나와 남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그 다름을 수용하는 법을 배웠어요.
가장 친한 독자인 친구들은 자신의 20살을 어떻게 이야기하나요.
대학에 진학한 친구도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취업한 친구도 있어요. 취업한 친구들은 회사에서 막내다보니 잡일을 하고 업무 말고 회식할 때도 꼬박꼬박 나가야 한다고 해요.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갑자기 어른이 됐다” “낡았다”고 말해요. 나이 앞자리가 ‘1’에서 ‘2’로 바뀌었을 뿐인데 성인으로 불리면서 사회에 내던져진 느낌이에요. 무언가를 해도 서투를 수밖에 없는, 실수할 수밖에 없는 20대 초반을 살고 있어요.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싶어 해요. 저는 다른 웹툰 작가들이 자신도 힘들고 뭘 해도 서툰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위로가 됐어요.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에 담았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지만 “학교를 그만둔 애들은 끈기가 부족해서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일을 이야기했어요.
자퇴했다고 하면 다들 부정적 시선으로 봤어요. 예를 들어 제가 만난 10명 중 5명은 “사고 쳐서 학교를 그만뒀냐”고 물었어요. “사회성이 부족해서 (자퇴를) 한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저 학교생활 잘했어요. 자퇴를 선택한 것뿐이에요. 사회인으로서 언쟁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몰랐어요. 여성이고 어리다는 이유로 주눅 들어 있었어요. 내 의견을 말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어요. 그런 걸 이야기하면 어른들 말에 토 다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퇴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릴 때부터 단체활동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내 시간인데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내 결정권 없이 억지로 끌려가는 일이 많잖아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부모님에게 (유치원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죠. 제 목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아니었어요.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학교 밖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해준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훌륭한 어른이 아니라 행복한 어른이 되라”고 하셨어요.
자퇴 뒤 어떻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나요.
자퇴 이후 이야기할 친구들이 없었어요. 친구들은 학교에 다니고 만날 시간이 없었어요. 그 시절 혼자 방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아마추어가 만화를 올릴 수 있는 사이트도 많았어요. 만화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어요. 독자들이 올려주는 댓글에 힘이 많이 났어요. 힘들고 지치고 혼자라고 느끼는 분들께 내가 이야기와 그림이 되어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인터뷰가 끝날 때쯤 버선버섯 작가는 “서른 살 되기 전까지 가늘고 길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른 살 이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단다. 그전까지 꾸준히 웹툰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는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어릴 때 잘 못 자는 그에게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들려준 도깨비, 이무기 등 옛날이야기에 관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불면증으로 힘들어하는 현대인이 많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그런 분들에게 잠 안 오는 밤에 읽기 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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