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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국가여

우리 사회 가려진 이웃 조명한 ‘그림자영화제’…

여러 폭력으로 국민 짓밟는 국가 고발
등록 2018-10-27 15:16 수정 2020-05-03 04:29

부산 형제복지원(1975~87)에서 겪은 제 이야기는 에서도 기사로 소개된 적이 있어서 생략하겠습니다. 저는 인권운동가도 아니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지식인도 아닙니다. 국가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활동가이고, 그 전에 스스로 국가폭력이라는 담론을 마주하고 선 생존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해 10월 부산에서는 영화제 두 개가 열렸습니다. 하나는 전세계가 함께 즐기는 부산국제영화제(BIFF)입니다. 다른 하나는 10월8일부터 13일까지, 올해 처음 열린 그림자영화제(SHOFF)입니다. 엘시티,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 발달장애인 문제 등 화려한 조명 뒤 ‘그림자처럼’ 소외된 이웃과 부산의 현실을 담은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됐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가폭력’ 다룬 영화 세 편</font></font>

저는 여러 주제의 행사 중에서 ‘국가폭력에 대하여’에 참여했습니다. 10월12일 저녁,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장기 농성을 하는 부산시청 앞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뉴스타파M 1회), (박배일 감독), (김성은 감독) 등 국가폭력을 다룬 영화와 영상 세 편이 상영됐습니다.

의 사드 배치나 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보면서, 새삼 제가 당했던 국가폭력과 다름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두 마을도-제 삶이 그랬던 것처럼-국가가 개입하기 전에는 평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국가는 두 마을에 사전 설명도 없이 사드 배치와 해군기지 건설을 이행해버렸습니다.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상한 사람들’로 낙인찍혔습니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 부랑인(아) 단속지침을 만들면서 예견된 국가폭력 사건이었습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는가 싶었던 시기, 전두환 정권은 쿠데타 정권이라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이용했습니다.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치워버리기 위해 훈령을 더욱 악용해 ‘인간 청소’를 시행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언제나 뒤따라오는 반론이 있습니다. 부랑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까지 가르쳐주고 기술도 가르쳐준 국가사업인데, 그게 어떻게 인권유린 사건으로 둔갑하느냐는 겁니다. 제가 답하겠습니다.

첫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은 그곳이 무엇인가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둘째, 형제복지원은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아니었고, 감금으로 인한 구속 상태였습니다.

셋째, 운영 비용과 예산은 국가와 시가 담당했고, 국가 정책 사업이었으며,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해 자국민을 부랑인으로 둔갑시킨 것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넷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법치 국가이기에 어떠한 법률도 헌법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훈령으로 인한 구속은 효력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복지원 같은 부랑인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훈령 때문에 아무 죄 없이 몇 년씩 수용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입으론 평화, 몸으론 폭력</font></font>
지난 10월12일 부산 그림자영화제(BIFF) ‘국가폭력에 대하여’ 행사에서 한종선씨(아래 사진)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10월12일 부산 그림자영화제(BIFF) ‘국가폭력에 대하여’ 행사에서 한종선씨(아래 사진)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국가폭력은 교묘하게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고, 말하지 못하게 강력한 제재를 해왔습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31년이 지나서야 피해를 말할 수 있었던 건, 억울한 삶을 강요받게 된 이유를 찾는 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자신이 무슨 잘못으로 형제복지원에 끌려갔고, 왜 죽을 때까지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며 살게 됐는지 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회 앞에서 7년간 진상 규명을 외쳐온 결과, 오거돈 부산시장이 생존자들께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고, 31년 동안 받아온 차가운 사회적 차별과 냉대가 “죄송합니다” 한마디로 치유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무엇이든 희생해야 한다는 주입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일까요. ‘국가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소이며,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며, 우리의 문화를 지켜가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를 위해 토착민들을 쫓아내거나 반대로 가두고, 자국민들을 이편저편 나눠왔다는 것에 화가 납니다.

사드 배치나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립은 국가사업 중 하나입니다. 제일 먼저 토착민들에게 선행 조사를 해야 하지만 사업 설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땅을 가꿔온 토착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몰아붙였습니다. 토착민들이 왜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지키려 하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그곳은 가족이 사는 곳이며, 오랜 세월 지키고 가꾸어온 곳이며,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국가입니다. 그렇기에 국가적 사업이나 행사를 위해 시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누구 하나 소외당하거나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말은 평화를 외치면서 행동으론 자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과연 민주주의 국가가 제대로 운영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 정권의 잘못이 있다면, 현 정권에서 수정 보완해, 그래도 안 되면 다 뜯어고쳐서라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전 정권의 잘못을 고치지 않은 채 국가정책으로 인정해주고 자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국민을 굴복시키는 과정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세 편의 다큐 영상을 보고 아직도 국가는 다양한 폭력으로 국민을 다스리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과하지 않는 국가</font></font>

국가는 사과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유감 표명만 있을 뿐,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할 줄 모릅니다. 그렇기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사과 받은 적도 없이, 억울함과 원망 속에 하루하루 타들어가는 가슴을 부여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폭력 생존자들이 국가를 용서할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자국민을 보호하는 평화로운 국가가 되길 바라고 또 바라면서, 저는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한종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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