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위반이 금지된 매체다. 욕을 해서도 안 되고, 불량한 꼴이 연출되면 안 된다. 이 규칙을 어기면 프로그램 문을 닫아야 한다. 지나친 노출은 엄금이고, 멋들어진 문신조차 테이프로 가려야 한다. 텔레비전학 앞줄에서 어른 노릇을 하는 학자 존 피스크는 ‘어떻게 영리하게 위반해서 인기를 얻을까’가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너무 큰 위반에는 사회적 응징이 뒤따르고, 미미한 위반은 감지되지 않아 효력이 없다. 그래서 그가 텔레비전에 내놓은 인기 비결은 “은근한 위반”이었다.
은 지독히도 피스크와 짠 듯이 입을 맞춰왔다. 은근히도 은근한 위반을 범해왔다. 오락 프로그램인 주제에 계몽을 슬쩍 얹은 위반이 두드러지는 위반이었다.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이라는 어색한 장르 용어를 살짝 뛰어넘으며 오락과 그 바깥의 경계를 조몰락조몰락 헝클어왔다. 노는 것과 착한 것 사이의 경계를 트고 신나게 놀다보니 세상을 좀더 환하게 만들었다는 표정을 자주 지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야기를 만든다. ‘정준하가 무한상사에서 잘렸다’는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이 엮인 결과다. 무한상사라는 공간, 잘리기 전과 후라는 시간 설정이 어울려 재미를 선사한다. 텔레비전 속 이야기는 모두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텔레비전 일반은 시간보다 공간을 더 강조한다. 등장인물이 놓인 공간이 인물의 성장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은 시간을 더 강조하며 텔레비전의 일반성을 위반하기 일쑤였다. 인물을 성장시키며 수용자가 그 성장 과정에 동참케 했다.
류의 서바이벌, 혹은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평범한 인물이 영웅이 되는 내용을 담는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춘 장르라는 지적을 자주 받아왔다. 무한경쟁을 이겨낸 사람을 키우고 그를 따르도록 한다는 혐의였다. 이에 대한 의 해법은 평범함이었다. 연예가 일상 안에 들어오면서 스스로 평범해져버리는 시시함을 연출했다. 그런 탓에 언제든 길거리에서 시민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고 나옴을 별스럽지 않게 해냈다. 평범하고 시시한 것들이 재미를 주기도 한다는 위반적 상상력을 만들어낸 셈이다.
자기 반영성은 이 범한 또 하나의 위반이다. 연출진이 얼굴을 내미는 일이 다반사고, 스태프가 주인공이 되는 일도 허다하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현장의 민낯을 그렇게 드러내는 일은 이전엔 흔치 않았다. 그 때문에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구분되지 않았다. 노는 이와 찍는 이가 뒤섞이는 경험은 시청자에게 자신들도 뒤섞이고 있음을 공감케 해주었다. 카메라를 중심으로 180도 선을 넘지 말라는 제작의 기본을 위반하면서 은 함께하는 프로그램의 전형을 만들어낸다.
은근했던 위반의 미학도 그 효력을 다했나보다. 이 막을 내린단다. 그 폐막은 사실상 텔레비전 시대의 커튼콜이기도 하다. 뒤집어 말하면 새로운 위반을 기다리는 기대가 꿈틀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쉬움을 감추려 더 용기 내 큰 소리로 말하자면, 대중오락의 새 장면을 연출할 무한한 도전의 시간이 왔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토요일이면 학원 가기 싫었다.”친구로부터 이제 곧 막을 내리는 에 대한 글을 써보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업무차 이동 중인 택시 안에서였다. 흥미는 생겼지만 썩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답했다. “나 사실 예전처럼 챙겨보는 것도 아니고, 끝난다는 게 그렇게 슬프거나 의미 있게 느껴지지도 않아.” 친구는 말했다. “그래도, 인데···.”
‘그래, 그래도 이지.’
“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2008년, 열아홉의 나는 그런 뻔하고 흔한 이야기를 대학교 입학 자기소개서에 적었다. PD를 꿈꾸는 학생들은 모두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했다. 나도 그런 학생 중 하나였다.
토요일이면 학원에 가기가 싫었다. 를 거쳐 시작하는 본방 시간을 기다렸다. 지금처럼 다시보기 서비스가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예능 한 편을 내려받아 본다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도 본방을 놓친 날이면 그 귀찮은 일을 해냈다. 이었으니까. 그때는 종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끝난다는 것 자체가 농담 같았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펑펑 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날이 현실로 다가온 2018년, 스물아홉의 드라마 PD가 된 나는 슬프지 않다. 무뎌져버렸다. 에 열광하던 시간들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TV 프로그램 하나의 종영으로 추억에 잠기거나 슬픔에 사무치기엔 나를 괴롭히는 다른 일이 너무 많다. 10년 전의 나는 토요일이면 을 기다렸지만, 지금의 나는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할 뿐이다.
그저 한 가지 와닿는 건, 지금까지 이라는 팀이 견뎌냈을 대단한 반복이다. 어떻게 13년 동안 쉬지 않고 매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을까. 단, 13개월이라도 나는 자신이 없다.
120부짜리 일일연속극에 들어가면 인생의 10개월 정도가 사라진다. 시놉시스를 만지는 기획 기간 약 2개월, 대본을 만들며 캐스팅과 사전촬영이 진행되는 기간 2개월, 방송 기간 6개월. 연속극을 할 때 가장 정신없이 바쁜 것은 방송 시작 직전의 2개월이고, 일단 방송이 시작되면 그때부턴 매주 5개의 방송본을 채워내는 반복된 일상이 시작된다. 대본이 나오고, 야외촬영을 하고, 세트 녹화를 하고, 편집을 하고, 방송을 내보내고, 다시 대본이 나오고…. 쉬는 날 없이 빡빡하게 구르다보면 있던 정신도 사라지고, 좋은 자극도 못 받아먹는 좀비 상태가 된다. 반복 업무를 수행해내는 좀비. 계속해서 새로운 일과 변화가 필요한 나 같은 사람에겐 쥐약이다.
너무 힘들어질 땐 괜히 의 대사를 되새겼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그래, 이건 성취를 향한 과정이야! 사실 문신으로 새길 수도 있을 만큼 수없이 되뇌며 버틴다. 6개월짜리 방송을 만드는 일이 그러한데, 13년이라니. 도대체 어느 정도 공력이 필요한 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13년간 토요일마다,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준 것이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비록 지금 내게 최고의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13년간 이 만들어준 웃음에 나를 포함한 정말 많은 사람이 빚진 순간이 있을 거라고. 슬쩍 또 묻고 싶다. 그 13년을 어떻게 버텼냐고. 나를 이 방송 지옥으로 이끈 것이 이니(?) 혹시 반복을 견디는 좋은 팁이 있다면 가르쳐달라고.
마지막 녹화를 마치고 열린 예능 최초의 종방연 자리에서 유재석은 “꼭 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H.O.T.의 마지막 콘서트에서 “절대 해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던 문희준의 모습이 겹치는 것은 기우일까. 다시 돌아오든, 돌아오지 못하든 은 지난 13년 동안 대한민국 대중문화에 역사가 되었다. 언젠가 2000~2010년대를 그리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꼭 배경에 깔고 싶은 . 2018년 3월31일. ‘토요일은 ’의 13년 역사가 잠시 멈춘다.
이영서 드라마PD“취재 거부당하자 아예 방송에 출연했다”“현장 취재는 곤란하거든요.”
2008년이니 10년 전이다. 압도적 시청률 1위 프로그램 의 벽은 높았다. 당시 현장 취재를 거부하는 방송 프로그램은 이 유일했다(이후로도 한동안 그랬다). 당장 방법이 없었다. 사건 현장이라면 잠입이라도 고민하겠지만…. 물러나야 했다. 그러던 차에 의 ‘돌+아이 콘테스트’ 공고가 떴다. 지금 생각해도 아니면 하기 어려운 시도였다. 오기가 생겼다. ‘전국의 돌+아이 모두 모여라!’ 그런데 지원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1차가 서류 심사였다. 심사 결과만 몇 달이 걸렸다. 서류 심사에 통과됐다는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뒷머리가 곤두섰다. 그래,망가져보자.
“왜, 여기에, 오셨나요?”
성심성의껏 공들여 ‘돌아이’ 짓을 했다. 심사위원 노홍철은 당황했다(저런 돌아이를 봤나…, 하는 표정이었다. 전혀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취재를 해야 했는데, 그냥 즐겼다. 너무 즐겼는지, 최종 면접을 앞두고 탈락했다. 결과를 보고 김태호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를 써야 했으니 당연한 절차였다. 그때 눈으로 확인했다. (지금은 너무 잘 알려졌지만) 유재석은 카메라가 돌지 않아도 겸손했고, 박명수는 까칠했다(재미있는 것은 당연). 정형돈은 수줍어했고, 정준하는 따뜻했다.
이후 한동안 ‘돌+아이 콘테스트’를 잊고 살았다. 습관처럼 고정한 채널, 여느 때처럼 나오는 에서 ‘돌+아이 콘테스트’ 편이 방송됐다. 초반 ‘하어영’ 기자가 탈락자로 등장했다. 저게 나인가, 내가 저 인간인가.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정말 돌아이군.’ 웃음이 나왔다. 만족스러웠다. 부끄러움은 남의 몫이었다. “오글거려.” “창피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기왕이면 잘하지….” 다들 걱정 일색이었다. ‘돌아이면 됐지, 돌아이가 돌아이지, 뭐….’ 훈장처럼 한동안 ‘하어영’이라는 연관검색어에 ‘돌+아이’가 떴다(지금은 ‘울컥’ ‘밉상’이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를 입력하면 당시 우승자가 아닌 하어영 기자의 이미지가 뜬다. 창피한 척하지만 실은 자랑스럽다(돌아이다). 오히려 의 추억을 나만 독점한 것 아닌가 하는 미안함마저 든다(정말 돌아이다).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서른 넘도록 취직을 못하고 옥탑방을 전전하던 취업준비생 시절, ‘망가져주는’ 그들은 나에겐 큰 위안이었다. ‘돌+아이’는 내가 할 수 있는 그들을 향한 최소한의 보답과 예의였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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