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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꿈꾸는 도발적 섹스?

등록 2002-01-30 00:00 수정 2020-05-02 04:22

에피소드 하나. 내가 몸담고 있는 잡지에서 남자들의 음경확대술을 메디컬 리포트로 다룬 일이 있었다. 여느 잡지에서 흥미 위주로 이 아이템을 다뤘던 것과 달리 우리는 임상과정을 꼼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사단은 거기서 생겨났다. 지나치게 섬세한 묘사법으로 이름높았던 여기자의 페니스 묘사를 놓고 독자들의 원성이 빗발쳤던 것. 항의내용 중 담당 기자를 가장 가슴아프게 했던 내용은 “감히 여자가 뭘 안다고…”였다. 물론 그 압도적인 불만의 변 사이사이에는 옹호의 변도 더러 있었다.
소설 을 읽고 나서 이 에피소드를 떠올렸던 건, ‘페니스와 관련된 여성 작가의 묘사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은 또 어떨까’라는 다분히 흥미본위의 성분이 강하게 뒤섞인 발상에서였다. 물론 메디컬 리포트에 묘사된 페니스와 소설 속에 묘사된 페니스가 엇비슷한 양상의 반응들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생각은 없다. 묘사의 출발 지점부터 다르니까.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불리한 성담론 구조 속에서 여자가 남성의 성적 아이콘을 노골적으로 발음하고 묘사하는 것은 낯선 일일 수 있다.
그것은 내게도 여전한 해당 사항이다. 성평등에 관한 빛깔 좋은 명제들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여전히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남과 여, 둘 사이의 모든 것을 서로 호명하는 관습이 전무한, 아니 왜곡된 호명을 즐겼던 성장 과정과 학습기를 지나온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의 숙명? 물론 내가 속한 직업군의 특징인,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성비율 속에서 수많은 성적 터부가 깨져나간 터이고, 가끔은 내가 여자가 아닌가 혼돈스러울 정도인 요즘은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이런 경우도 있었다. 김원우의 작품들을 탐독했던 시절, 이라는 작품 속에서 월경중인 여자와 섹스하던 남자가 피묻은 페니스를 부여잡고 욕실로 뛰어드는 대목을 읽은 일이 있다. 그뒤 한동안 나는 그 대목이 연상시키는 비릿한 냄새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런 섹스가 안겨줄 불쾌감으로까지 생각이 번졌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남성 작가의 시선이겠다 싶다. 소설 바깥에서 드는 의구심 하나를 더 언급하자면, 그때 그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전경린의 소설 속에 등장되는 페니스와 섹스는 여성 작가의 시선에 의해 꼼꼼하게 묘사된다는 점에서 정확히 남성 작가의 그것과 반대의 지점이다. 이때의 페니스와 섹스에 남성 독자로서 상대적인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묘사의 수위는 그리 파격적인 수준도, 위험한 수준도 아니다. 영화 에서 서른 즈음의 세 처녀가 식탁에 둘러앉아 펼치는 온갖 성적 수다를 재현한다는 의미쯤으로 받아들이면 무난한 수준?
중요하게 읽힌 대목은 여자가 남자와의 섹스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다. 심하게 말하면 수많은 남성들이-난 절대 안 그런다. 상상은 해봤을지언정!- 폭력적으로 진압해온 여성의 성기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진술들이 그것이다. 사실 남성 독자의 입장에서 그 진술들은 감정과잉의 혐의가 짙게 풍기지만, 그들이 어떤 섹스를 꿈꾸는지에 대한 섬세한 리포트로 읽히는 것까지 부인하기는 힘들다. “혀를 쩝쩝거리며 이리저리 집적대기만” 하거나 “체위라고는 오직 한 가지밖에 모르는 성급하면서도 따분하고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섹스치들에 대한 소설 속 미홍의 혐오는 종종 주변 여자들의 상담자가 되는 나로서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인간은 “처음으로 삶을 느낀 그 순간부터, 살기 위해 숨을 쉬는 순간순간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런 삶의 유한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섹스? 그렇다면 “어딘가에 우리가 꿈꾸는 좋은 섹스가 있나요? 과연 있을까요?”라고 끊임없는 묻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 디테일한 항목 중 하나가 바로 미홍이 남자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미홍은 “남자들을 숨소리로 기억한다. 그리고 체위로 기억한다.” 궁금하다. 다른 여자들은 남자를 어떻게 기억할까?
털어놓자면 난 상대를 냄새로 기억한다.

문일완/ 월간 &ltGQ&g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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