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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대답 충분한 재미

리들리 스콧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이유…

인류 기원과 외계 생명체 정체에 대한 답 미뤘지만 SF 호러의 스릴 충만하고 만듦새 뛰어나
등록 2017-05-26 15:02 수정 2020-05-03 04:28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등장하는 ‘제노모프’. 스위스 출신의 독창적 아티스트 H. R. 기거가 창조해낸 무섭도록 완벽한 생명체다.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등장하는 ‘제노모프’. 스위스 출신의 독창적 아티스트 H. R. 기거가 창조해낸 무섭도록 완벽한 생명체다.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42살의 리들리 스콧이 (1979)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누구도 이 작품이 걸출한 시리즈를 낳으며 40년 가까운 오늘까지 이어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무섭도록 완벽한 유기 생명체 ‘제노모프’(Xenomorph)의 가공할 도륙을 통해 우주의 핏빛 지옥도를 그려낸 이 수작은 단 한 편(, 1977)의 장르영화만을 연출했던 신출내기 감독을 일약 할리우드의 기대주로 만들었다. 공상과학(SF) 영화에 호러를 더하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했지만 이후 스콧은 장르의 바이블이 된 이 매력적인 시리즈와 무관해 보인 것도 사실이다. (1986)의 메가폰은 그가 아닌 로 묵시론적 세계관을 보여준 제임스 캐머런이 잡았고, 3편과 4편은 데이비드 핀처(1992)와 장피에르 주네(1997) 같은 스타일리스트 감독들에 의해 연출됐기 때문이다. 후속편들은 ‘여전사 리플리와 에이리언의 대결’이라는 뼈대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했지만 에이리언이 어디서 왔고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미지의 행성에서 온 이상한 신호 

“ 이후 등장한 속편들은 훌륭했지만 어떤 작품도 1편이 던진 질문에 답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시리즈를 되살리기로 했다.” 33년이 지난 2012년 리들리 스콧이 그 답을 내놓기 위한 여정의 첫발로 를 연출한 이유다. 그러나 제목에서 에이리언의 흔적을 지운 것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인류의 기원으로 묘사된 ‘엔지니어’에 대한 거대한 질문만 남겨놓고 서둘러 막을 내렸다. 10년 후를 다루며 제목에서 에이리언 시리즈의 적자라고 자임한 는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

우주화물선 커버넌트호는 ‘하이퍼슬립’(냉동수면) 상태의 인간 2천여 명과 인간배아들을 싣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식민지 개척을 위해 운항하던 중 알 수 없는 행성에서 보낸 신호를 접한다. 7년 남은 목적지(오리에가-6)에 비해 거리도 가깝고 인류 생존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커버넌트 승무원들은 신호를 따라 미지의 행성으로 탐사를 나선다. 지구와 자연환경이 흡사하지만 어떤 동물도 보이지 않는 행성. 인공지능(AI) 로봇인 월터(마이클 패스벤더)와 승무원들은 이곳에서 밀밭을 발견한다. 이 별의 주인은 누구였던 것인가. 발신 우주선을 찾는 과정에서 식물 형태의 생물과 접촉한 승무원들이 에이리언 포자에 감염된다. 자신도 모르게 숙주가 돼버린 그들의 등을 뚫고 유전자변형을 거친 새로운 에이리언 ‘네오모프’(Neomorph)가 튀어나와 승무원들을 살육하기 시작한다. 위기에 처한 부선장 다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와 승무원들 앞에 행성의 유일한 생존자로 보이는 한 사내가 나타난다. 그는 10여 년 전 실종된 프로메테우스호의 인공지능 로봇 데이빗(마이클 패스벤더·1인 2역)이었다. 거대한 원형 건물과 광장으로 이뤄진 그의 거처에는 인간을 창조한 엔지니어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에이리언 바이러스를 투하해 행성의 엔지니어들을 절멸한 데이빗은 커버넌트 승무원을 숙주 삼아 또 다른 에이리언을 창조하려 한다. 행성을 탈출하려던 승무원들은 하나둘 에이리언의 먹이가 된다.

성경 속 신화를 영화의 질료로 

의 크리처를 탄생시킨 스위스 출신의 독창적 아티스트 H. R. 기거 사후에 나온 유일한 에이리언 영화인 는 몇몇 뻔한 구성을 제외하면 SF 호러 장르의 창시자답게 평균 이상의 스릴을 선사한다. 큰 틀에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줄거리와 에이리언이라는 완전한 생명체가 벌이는 살육의 난무는 이 시리즈의 여전한 생명력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전작에 비해 엔지니어-인간-로봇으로 이어지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연쇄고리를 더 깊게 파헤친 점은 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류의 오랜 두려움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예술적 재능까지 지닌 데이빗으로 형상화된다. 승무원들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그는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교정된 후기 모델 월터에게 말한다. “천국에서 복종할지 지옥에서 지배할지 선택하라.” 존 밀턴의 시 ‘실낙원’에서 인용한 이 대사는 자신을 창조한 인간을 넘어 스스로 창조자·파괴자가 되려는 데이빗의 욕망과 광기를 보여준다. ‘커버넌트’로 변경되기 전까지 ‘실낙원’이 이번 작품의 부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잃어버린 낙원을 떠나 새로운 낙원을 찾기 위한 인류의 여정은 인류의 창조물에 의해 배반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로 커버넌트(covenant)는 ‘계약’ 또는 ‘약속’을 일컫는 말로 성경에서 하느님이 다시는 지구를 홍수로 쓸어버리지 않겠다고 한 인간과의 약속을 뜻한다. 에서 창조주인 엔지니어가 피조물인 인간을 바이러스라는 홍수로 쓸어버릴 계획을 세웠다는 점, 커버넌트호에 있는 인간과 배아들이 노아의 방주를 방불케 한다는 점, 전작에서 아이를 가질 수 없던 쇼 박사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애인을 통해 임신했다는 점 등을 보면 두 편의 시나리오에 성경 속 신화가 질료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중 ‘신들의 발할라 입성’으로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거나, 람세스 2세를 그린 바이런의 시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파괴의 수사로 인용하는 대목에서 웰메이드 영화를 넘어 ‘지적인 블록버스터’를 노리는 노장 감독의 디테일이 느껴진다.

다음 프리퀄에서 답 찾을 수 있나 

이러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창조한 엔지니어가 왜 에이리언을 통해 인간을 멸망시키려는지, 그들의 정체는 누구인지 등 전편에서 가장 강조한 궁금증을 통째로 누락한 점, 이를 알아내려 한 과학자 쇼 박사의 죽음을 데이빗의 실험 도구가 된 것으로 암시하고 넘어간 점, 전작들보다 사건 전개가 허술하고 거장답지 않게 진부한 설정이 여럿인 점 등은 치명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답을 주겠다는 스콧의 약속은 1년9개월 뒤에나 개봉될 세 번째 프리퀄 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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