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돌 서바이벌 서사는 탈락해도 생존경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Mnet 제공
2011년 방영된 KBS 드라마 는 독특한 10대 학원물이었다. 극중 배경이 되는 기린예고는 아이돌 사관학교로 불리며 재학생들은 ‘국영수’가 아니라 춤과 노래를 주로 배운다. 입시와 진로에 대한 고민은 ‘글로벌 스타’라는 궁극의 목표를 향한 도전기로 대체된다. 유치한 아이돌 드라마일 것이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의 성공기는 아이돌을 동경하는 요즘 10대들의 판타지를 반영하며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속편 는 좀더 어두워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린예고는 거대 연예기획사에 흡수됐고 일반 학생만이 아니라 아이돌 스타들까지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할 만큼 서바이벌 서사는 더 강력해졌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전보다 뚜렷해진 서열 구도다. 입시반, 예술반, 데뷔반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됐던 전작의 등급 체제는 에 이르면 우열반으로 더욱 확실한 수직적 계급 구도를 형성한다. 열반 학생들은 스스로를 ‘B급 인생’으로 칭하며 현실을 자조했다. 와 의 이같은 간극은 아이돌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한층 가혹해진 생존경쟁의 현실을 드러낸다.
눈여겨봐야 할 이름은 두 작품의 제작에 모두 참여한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박진영이다. 2001년 SBS 에서 원더걸스의 선예, 2AM의 조권 등을 일찌감치 발굴했던 그는 말하자면 국내 아이돌 서바이벌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몸소 증언하는 존재다. 그가 2006년에 선보인 SBS 은 이제는 아이돌의 데뷔 공식으로 자리잡은 기획사 주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 격이었다. 이 시절과 당시까지만 해도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이들의 성장 미담은 경쟁이 주는 자극적 갈등보다 강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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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아이돌 서바이벌 서사들은 갈수록 심화되는 경쟁 구도와 더욱 공고해지는 서열 구도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가령 박진영이 지난해 선보인 걸그룹 선발 프로젝트 에 이르면 의 우열반 구도보다 노골화된 계급 차별 구도가 전개된다. 연습생들은 대결 결과에 따라 메이저와 마이너 그룹으로 나뉘고 숙소에서부터 식사, 이동 수단까지 철저하게 차등 대우를 받아야 했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는 현재 방영 중인 Mnet의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각 연습생이 차지하게 될 등수가 크게 적힌 피라미드 모양의 의자 세트와 레벨 테스트에서부터 노골적이다. 테스트 결과 A등급에서 F등급까지 구분된 연습생들은 각자의 등급이 적힌 표를 옷에 붙이고 방송 내내 자신의 서열을 확인당한다. 트레이너는 ‘F등급이 곧 너희 삶까지 낙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첫 가요 프로그램 데뷔 무대에서 ‘F클래스’ 연습생들을 지칭하는 “백업”이란 용어나 무대 밑 그늘 속의 자리 배치는 그 말이 공허한 위로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한다. 승자독식 구도도 심화됐다. 배틀에서 이긴 팀에게는 1천 표 이상의 표를 몰아주고, 이른바 팀의 ‘센터’로 선정된 연습생은 무대 조명과 주요 파트를 독차지한다.
여기에는 그동안의 아이돌 서바이벌 서사가 애써 강조하고 포장하려던 성장의 판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낙인찍기와 탈락의 공포만이 극대화될 뿐이다. 공교롭게도 이 프로그램의 1위 후보로 경쟁 중인 전소미는 에서 최종 탈락한 멤버이기도 하다. 전소미 외에 많은 연습생들이 ‘슈퍼스타K’ ‘K팝스타’ 등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 탈락한 뒤에도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삶의 축소판이다. 아이돌 서바이벌 역사 속 ‘B급 인생’에서 ‘F반’으로의 등급 변화는 아이돌의 생존 환경도, 우리의 삶도 그만큼 퇴보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선영 TV평론가※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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