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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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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로맨티시즘’의 귀환

이슈메이커로 하나의 전설이 된 리버틴스의 재결성 앨범 <앤섬스 포 둠드 유스>
등록 2015-09-19 23:01 수정 2020-05-03 04:28

영국 밴드 리버틴스(The Libertines)를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최적화 방식을 다르게 할 수 있기 때문.

로큰롤 팬에게: “전형적인 ‘배드 보이’ 스타일의 로큰롤이고 끼도 많아.” 문학 팬에게: “사드와 윌리엄 블레이크를 아는 놈들이지.” 패션잡지 독자에게: “모델 케이트 모스랑 한참 시끄럽게 사귀던 애가 여기 있어.” 신문 사회면 독자에게: “엄청 잘나가던 밴드가 약 때문에 완전 박살났다니까.”

마지막 저 말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리버틴스가 ‘1차로’ 망가졌던 과정을 따지고 보면 약만이 아니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뼛속까지 들여다보려 들었던 언론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그 외는 대충 조합하면 그들의 소개문으로 완성된다.

펑크의 좌충우돌과 섬세한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풀어내는 리버틴스는 1997년에 결성, 2002년에 낸 첫 앨범 (Up The Bracket)으로 자국 내 스타덤에 올랐다. 밴드명은 사드의 에서 따왔고, 4인조 멤버 중 주축을 담당하는 피트 도허티와 칼 바렛은 나름 문학청년이라 할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점점 커져간 도허티의 약물 문제가 둘 사이의 불화로, 나아가 밴드의 와해로 이어졌다. 2집 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파괴 과정을 낱낱이 담은 앨범이 되었고, 걸작으로 등극했다. 이후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와중에도 도허티는 케이트 모스와의 기행 같은 연애를 이어가며 언론 연예면과 사회면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끝.

적어도 영국 인디에서 리버틴스의 이름과 일생은 하나의 작은 전설이 되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저렇게 끝나는 것이, 그것이 초래한 (영광만큼이나 찬란했던) 파괴의 생채기들에도 불구하고, 분명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설보다 가혹해서, 그들은 결국 재결성을 했(하고야 말았)다.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이도 많다. 리버틴스의 재결성은 그들이 남긴 위상을 필연적으로 재평가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던 그들을 2015년으로 데려와서 다시 털어보면 어떤 먼지가 날지 냉소적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리버틴스의 성공에는 낭만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믿어왔다. 그들에게는 음악만이 아니라 젊음·아름다움·형제애·에로티시즘·무모함·악덕·기행 등이 적절한 스토리라인을 형성하며 특정 아우라를 만들어주었고, 이는 ‘밴드를 결성한다’는 행위에 내재된 고전적인 로큰롤 로맨티시즘을 그리워하는 이들과 (이 밴드로) 처음 만나는 이들을 모두 만족시켰다. 밴드에게도, 밴드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모두 노스탤지어가 작용했던 것.

그랬던 이들이 새 출발을 하고 새 앨범을 만든다 하니, 혹시나 옛날에 멋지게 차렸던 밥상을 제 발로 엎어버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재활원을 제 발로 갔다왔다고는 하지만, 도허티의 상태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밴드의 지속성에 조건부로 기능한다는 점을 팬들은 인정해야만 한다.

새 앨범의 제목 (Anthems For Doomed Youth)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 군인이자 전쟁 시인인 윌프레드 오언의 시 ‘운이 다한 젊은이들을 위한 노래’에서 따왔다. 원시에서의 전장의 비참함과 비장함은 이 앨범의 타이틀 곡에서는 (3인칭으로 처리됐으나) 리버틴스 자신들에 대한 애가로 치환된다. “형제 같다 생각했던 그들이/ 서로를 반쯤 죽여놓더니/ 그다음엔 생각지도 않은 가라오케스러운 짓을 해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을 죽여버렸어.”

리버틴스가 과거의 이슈메이커 능력을 유지한다면, 이들의 부활이 노래의 부활로 이어질지 아니면 ‘이미 죽은 말을 채찍질’하는 공연한 짓이 될지, 그 과정과 여부를 지켜보는 재미가 앞으로 한동안 이어질 듯하다. 단 앨범의 노래들로만 판단한다면, 후자는 아니다. 바라건대, 그래야만 한다.

성문영 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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