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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면 악몽이 된다오

아빠 감정 교육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 부녀 사이 갈등을 너무 쉽게 다소 억지스러운 이벤트로 해결하는 모습은 환상일 뿐!
등록 2015-08-20 18:03 수정 2020-05-03 04:28
SBS 제공

SBS 제공

애니메이션 에서 감정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열한 살짜리 꼬마만이 아니다. 라일라의 아빠는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딸의 괴로움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엄마가 계속 눈치를 주자 겨우 낌새를 느끼지만, 어설픈 명령으로 딸을 통제하려 든다. 사춘기 딸은 반항의 기색이 역력하다. 아빠의 마음속에선 비상벨이 울리고 데프콘2가 발령된다. 분노들이 감정의 조종간을 장악한 채 딸과 전쟁을 벌이려 한다.

전쟁의 무대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바꾸자. 주인공의 연령대를 50대 아버지와 20대 딸로 올리자. 그러면 가 될 것이다. 네 쌍의 연예인 아빠와 그 딸들이 단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관찰카메라에 담는다. 이경규는 딸과 눈 마주치는 것도 두려워한다. 조민기는 딸의 운전 연수를 따라와 폭풍 잔소리를 쏟아낸다. 조재현의 딸은 아빠가 혹시라도 말을 걸어올까 방문을 열어둔 채 기다리지만, 아빠는 그 의미조차 모른다.

는 방송 초기에 집안의 가장이 아니라 가구로 전락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그래도 자유로운 직종의 사람들이니 생각도 젊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겠지 하는 예상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잘나가면 시간이 없었고, 일이 없으면 가장의 체면 때문에 대화를 피했다. 딸들은 애교가 없어 미안해하기도 했고, 촬영을 기회로 말문을 열어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그걸 받아줄 감정의 능력치가 너무 낮았다.

개인적 편차는 있겠지만, 요즘 30~40대 초반 아버지들은 이와는 좀 다르다. ‘프렌디’(Friend+Daddy)나 ‘플래디’(Play+Daddy)로 불리며, 자녀들과 놀아주는 데 열정적인 경우도 많다. 자신이 어릴 때 권위적인 아버지와 감정적 교류를 나누지 못하고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왔다는 사실에 대한 반작용도 크다. 자녀 수도 하나둘이라 서로 접촉도도 높고, 키덜트 취미까지 있으면 아이들 핑계로 본인이 더 즐기기도 한다. 의 아빠들이 이런 세대라 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아이들과 어울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이들도 유아이기에 같이 놀아주는 아빠가 그저 좋다.

의 50대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권위의식도 더 강하고 아이들과 접촉할 방법도 모른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도 무시 못한다. 그래도 카메라는 이들에게 변화를 강제한다. 이경규는 딸과 함께 어릴 때 등교하던 168개 계단을 찾아가 자기 딸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재현은 플라잉요가를 하며 천 속에 몸을 감춘 채 서투른 감정 표현을 한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감정 교육이다. 그러나 그 재빠른 변화가 모두의 공감을 사고 있을까?

템플스테이, 아빠 고향 찾기, 놀이공원 방문… 는 프렌디 교실의 실습 코스들을 안내한다. 아빠와 딸은 참으로 쉽게 서로의 벽을 허문다. 자극적인 갈등을 연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식으로 손쉽게 갈등을 봉합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딸들이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사실까지 덧붙여져, 그냥 적당히 감동을 연출하며 얼굴을 알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친한 척하는 쇼윈도 부녀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정하고 보기 좋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들을 따라하는 것만으로 부녀 사이가 순식간에 가까워질 거라는 환상은 곤란하다. 얼마 전 에서 과도한 스킨십으로 딸을 괴롭히던 아버지를 떠올려보라. 딸의 의사는 생각지도 않은 과도한 시도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논리와 흡사하다. 조민기처럼 딸의 친구들과 클럽에서 춤추면 친구 같은 아빠가 될까? 그건 판타지다. 무리하게 따라하면 악몽이 된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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