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타계한 블루스 뮤지션 비비 킹은 실연의 순간을 이렇게 노래했다. ‘스릴이 떠났다.’(The Thrill Is Gone) 그녀가 떠났다거나 사랑이 떠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스릴이라는 감정 자체가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거다. 영화, 만화, 드라마 등 모든 대중문화는 이 스릴을 먹고 산다. 원시인들이 모닥불 주위에서, 아낙들이 빨래터에서 남의 연애사를 소곤댈 때부터 그랬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과연 연인이 될까? 이 궁금증은 삶의 잡다한 고뇌를 잊게 한다.
나는 최근 에서 이 스릴을 느꼈다. 광희가 짝사랑하는 유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유이 역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따뜻한 두근거림은 나 자신에 대한 배신이었다. 시간을 조금 되돌려보자. 광희가 새 멤버가 되면서 자신의 이상형이 유이라고 했다. 기존 멤버들은 막내를 놀리며 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이 밥 한번 먹지 그래?” 장난 같은 말이 오고 갔다. 불편했다. 저들은 왜 또 오지랖 넓게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려 할까? 게다가 그런 쪽의 재주가 전혀 없잖아. ‘홍철아, 장가 가자’에서 곤장을 제대로 맞지 못했던 걸까? 그런데 나는 어느새 하하와 정형돈 사이에 앉아 맞장구치고 있었다. “쟤들 진짜 같다. 어떡하냐?”
드라마 8회는 ‘러브 라인의 이해’라는 제목을 달았다. 멤버를 바꾼 의 시청률이 저조하게 나오자, 제작진은 러브 라인 만들기라는 꼼수를 생각한다. 그러곤 가수 신디와 막내 PD 승찬을 엮으려는, 남의 속도 모르는 어설픈 시도를 한다. 그래, 두근두근 사랑의 작대기는 마법봉이다. 로맨스 드라마만이 아니라 예능에서도 마법을 톡톡히 발휘한다. <x>의 ‘한 남자’ 김종국과 윤은혜, 의 월요 커플 송지효와 개리를 보라. 정신없게 진행되는 게임 속에서 둘이 우연히 손이라도 마주치면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뿅뿅 솟아난다. 가상의 커플에 대한 ‘놀림’, 커플 스스로 뻔뻔하게 나오는 ‘역놀림’은 정말 끊이지 않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관전하는 연애는 밀당 때문에 재미있다. 커플 사이의 밀당만큼이나 프로그램과 시청자 사이의 밀당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작위적이지 않아야 한다. 는 분명히 짜고 치는 러브 라인이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그 안에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케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일인 양 두근두근해한다. 를 전후로 홍진호와 레이디 제인 역시 그런 밀당을 즐겼다. “쟤들 짜고 치네.” “아니야, 진짜 같은데?” “짜고 치다가 정들었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그런데 인기를 위해서라면 알 듯 말 듯 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런 러브 라인을 적절히 이용하고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것도 연애 매니지먼트의 중요한 테크닉이 되었다.
광희와 유이도 많은 이를 두근거리게 하는 러브 라인을 탔다. 내 눈에는 소박하면서도 진실해 보였다. 유이도 광희에게 마음이 있는 게 분명하니 둘이 손 꼭 잡고 예쁜 사랑 하라는 게 아니다. 친구로만 알았던 남자의 고백을 듣고 혼란스러워하는 여자의 마음이 전해졌다. 만약 아니라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내가 쓸데없이 고민이 된단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의 시도 자체는 여러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만약 이걸 따라한다며 전국의 형님·언니들이 무작정 소개팅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많은 솔로에게 지옥의 저녁을 선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좋게 해석하자면, 우리가 그런 시행착오를 저지르지 않게 하려고 TV가 먼저 일을 벌인 것이다. 다행히 광희-유이에겐 두근거리는 저녁이 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3 대 3의 재활용 미팅은 한숨만 쏟아지게 했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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