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퍼진 사진이 있다. 음반 녹음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여자의 화장에 빗대 설명한 사진이었다. 말미에 하나의 사진이 더 붙어 있었다. 완벽하게 화장(마스터링)한 여자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한 뒤 그것을 ‘MP3’라 이름 붙였다. 많은 이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며 그 사진에 공감했다.
2000년 독일에선 MP3와 CD를 구별하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있었다. 최고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고 음향 부분에서 잘 훈련된 애호가나 업계 종사자 등 12명의 신청자를 초대해 실험을 했다. 결과만 얘기하자면, 그들은 256kbps 이상의 MP3와 CD 음원을 구별해내지 못했다. 참가자 모두 자신의 귀를 자신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심지어 가장 낮은 수준의 128kbps MP3가 CD보다 더 좋게 들린다고 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지금껏 이런 블라인드 테스트는 많이 있어왔다. 늘 사람의 귀로는 256kbps 이상의 MP3와 CD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결과와 통계가 나왔지만 그럴 때마다 ‘난 구분 가능한데?’라고 하는 이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가운데도 그런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블라인드 테스트 참여자들도 누구보다 자신의 귀에 ‘확신’을 갖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를테면 이것은 ‘선풍기 미신’ 같은 것이다. 이제 그 수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선풍기를 켜놓고 자면 죽는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이 있다. 불과 8년 전 만 봐도 5명의 남녀가 동반자살을 하기 위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다가 너무 추워 선풍기를 끄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는 웃픈 기사가 있다. 아무리 실험을 하고 과학적인 통계를 내놓아도 “아몰랑~ 내 귀에는 들린단 말이야”라고 해버리면 더 할 말이 없어진다. 실험 결과와 통계에 개인의 경험을 들어 맞선다. 과학은 결코 믿음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황금귀’라고 부른다. 인터넷의 역사에서 이 황금귀들은 많은 사건을 일으키며 즐거움을 줘왔다. MP3 파일을 기존 폴더에서 다른 폴더로 옮길 때 음질이 떨어진다는 놀라운 주장도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바닥(?)에서 유명한 황금귀 선지자가 말했다는 이유로 정말로 그렇게 들리는 것 같다며 그 주장을 믿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믿음’이란 말로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건전지 상표(로케트·에너자이저)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리고,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원(풍력·화력·수력)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들리더라는 조롱이 붙는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또 다른 모습의 종교인 것이다.
비슷한 종교가 또 있다. ‘LP교’쯤이라고 이름 붙이면 될까? 요즘 부쩍 교세가 확장된 것 같은 LP교 신도들은 늘 소리가 따뜻하다는 교리를 전파한다. 이 역시 증명된 것은 없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다. 어떤 기자는 “LP가 CD보다 더 음악적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라는, 설명이 필요한 글을 썼지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한 음악 관계자는 LP로 재발매된 음악을 들으며 역시 LP가 중음역대가 훨씬 풍성하게 들린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그 LP는 마스터 음원이 없어 CD에서 음원을 추출해 만든 LP였다. 유식하게 말하자면 ‘플라시보 효과’고 시쳇말로 하면 ‘기분 탓’이다.
이 ‘소리’라는 종교의 세계에는 수많은 사이비들이 있다. 축구 경기에서 33골을 넣고 그 가운데서 5골은 13명의 골키퍼를 세우고 넣었다는 JMS 정명석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사이비답게 혹세무민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선풍기 미신을 믿는 이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이제 이 주장을 했다가는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소리 미신들이 선풍기 미신의 뒤를 잇기를 바란다. LP도 CD도 MP3도 모두 음악적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김학선 음악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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