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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청년이 만든 예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 설립 요구로 시작된 예술행동… ‘727now!’ 빈 강의실 이용한 시간차 공격형 퍼포먼스로 이어져

제1052호
등록 : 2015-03-1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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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은, 2014년 12월28일, 청년 예술인들의 미술 공간 ‘교역소’에서 열린 좌담회 ‘안녕 2014, 2015 안녕?’에서 처음 제안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개혁안을 마련하고 공표해 청년 미술인들을 위한 변화를 촉구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트위터에서 해시태그(#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를 달아가며 다양한 의견 표출이 이어졌고,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연대체 구성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 과정의 투명화를 요구하고,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젝트 스페이스와 개인전 프로그램 등을 신설하고 청년들을 기획 파트너로 삼을 것을 요구하는, 포괄적 서울관 개혁 담론 형성을 위한 상징어로 ‘청년관’을 내세웠지만, 애초부터 이 운동은 세대 교체의 가시화와 본격화에 더 방점이 놓여 있었다.

등대처럼 빛나던 727호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의 첫 행사는 발의자 가운데 한 명인 중년 평론가·필자인 임근준의 초청 강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관’을 요구한다: 좀비-모던의 위기 상황과 인식, 그리고 해법’이었다. 1월24일 토요일 오후 2시 홍익대 미술대 조형관에서 열린 행사엔 3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였는데, 더 핵심적인 것은 이후의 라운드테이블이었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의 첫 행사를 위해 홍익대 미대 학생회의 협조도 긴요했지만, 진짜 성취는 727now!라는 이름의 한시적 작업 공간이 해냈다. 그래픽디자이너 윤지수와 김은희 듀오는 1월1일부터 홍익대 홍문관 강의실 727호에 기생형 작업실을 차렸더랬는데, 이들이 라운드테이블 등 여타 활동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냈던 것.

‘727ndw!’를 기획한 청년예술가들은 도미와 수영장 이미지를 통해 부조리극 같은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청년관을위한예술행동 제공
727now!의 정식 이름은 727나우인프로덕션으로, 학생 신분을 이용해 방학 중 비어 있는 강의실을 매일 빌려 해당 공간을 다목적 작업실로 활용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727now!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모아 지속적으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사전에 세운 계획에 따라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디자이너 김영나, 디자이너 듀오 신해옥·신동혁 부부를 순차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고, 또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의 강연 프로그램 포스터를 실크스크린 프린트로 제작해 부착하는 작업을 맡기도 했으며, 크리틱을 포함한 디자이너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727now!는 홍대의 정문이기도 한 홍문관 7층을 차지한 채 창문에 종이를 붙여 ‘727NOW!’라고 메시지를 적었는데, 밤마다 불이 켜진 강의실 727호의 모습은, 마치 시대를 밝히는 등대 같았다. 727now!가 활동상을 트위터에 중계하면서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에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727now!에 들러 책자를 기증하고, 커피를 기증하고, 회합을 여는 등 지속적으로 예상 밖의 일들이 전개됐다. 일종의 공공 작업실이자 아카이브로 공간 정체성이 형성되며, 727now!는 내일을 모색하는 무연고 청년 예술인 여행자들이 들르는 산장 혹은 안내소처럼 기능했다.


이와 함께, 2월9일 드디어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의 웹페이지(SAVETHEMUSEUM.NET)가 문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 선발 과정 공개화에 대한 서명운동’이 전개됐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 선발 과정 공개화 요구 성명이 발표됐다.

황당하게 새로운 예술행동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은 2월11일 두 번째 강연 프로그램 ‘두 명의 조언자들’을 전개했는데, 연사는 미술평론가 심상용과 작가 오석근이었다. 이번에도 강연 이후 727now!에서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했고, 제목은 ‘다수의 발언자들’이었다. (이 라운드테이블의 속기록은 웹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총 30명이 참석한 이 집담회에서 무연고 청년 예술가들은 ‘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청년관인가?’ ‘청년이란 무엇인가?’ ‘청년 예술은 무엇인가’ 등 원론적 부분에서부터 토론을 시작해, 무엇을 할 것인지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고 실현 가능한 행동 프로그램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나눴다. 학맥과 위계에서 자유로운 청년 예술가들의 새로운 개방형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장 드라마틱하게 청년 세대의 새로운 동역학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727now!에서 벌어진 시간차 공격형 퍼포먼스-전시 ‘#1-7’이었다. 미술가 밈미우와 강재원이 벌인 협업 전시는 황당하게 새로웠다. 2월22일 일요일 하루 동안 15분짜리 퍼포먼스가 7회에 걸쳐 전개되는 형식이었는데, 작가들은 짬짬이 제 소감 등을 트위터로 알렸고, 기타 관계자와 관객들이 이 퍼포먼스-전시를 실시간 중계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특화한 것처럼 뵈는 작업은 더욱 기묘한 흐름으로 전화했다.

727now!의 풍경은 마치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았다. 강재원은 다양한 크기의 대형 풍선 도미 네 마리(7m 도미 한 마리, 5m 도미 두 마리, 3m 도미 한 마리)로 공간을 지배했고, 직접 3m짜리 도미에 들어가 퍼덕거리는 도미 활어를 연기했다. 밈미우는 수면의 이미지가 프린트된 출력물을 책상 위에 깔아 수영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소형 풍선 수영장을 함께 설치해 물을 채웠다. (강의실 기둥엔 ‘24시 초밥’이라고 가짜 간판을 내걸었고, 바닥엔 동선을 지시하는 백색 화살표를 부착했으며, 어두운 강의실은 이미지를 투사하는 빔프로젝터 넉 대로 밝혔다.) 수영복을 입고 몸매 과시형 퍼포먼스를 진행한 그는, 전 애인들에게 받은 연애편지를 불태우며 사적인 사건의 서사적 공연을 시행했는데, 727now!를 찾은 관객들은 본인들이 풍경의 일부가 되는 바람에 이게 다 뭔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을 테다. 즉, 이 퍼포먼스-전시는 어느 시점에서도 온전히 조망·파악할 수 없는, 혹은 다양한 시점에서의 고찰을 종합해야 이해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였던 셈.

더 흥미로운 것은, 공공 작업실에서 전개되는 퍼포먼스-전시인 만큼, 사진 기록을 담당한 세 명의 조역이 있었고, 또 그들의 기록 사진과 트위터에 올라온 글과 사진을 취합해 그래픽디자이너 윤지수와 김은희 듀오가 실시간 도록을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즉, 도록 디자인도 공연이자 전시의 일부였던 것.) 당일 실시간 현장 제작된 도록은 타임라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초안은 2권 제작됐지만 앞으로 200권을 추가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습관적 봄에서 벗어나

결론적으로 말해, 727now!엔 새 시대에 부합하는 오프킬터 프로토콜을 제시하고, 비정상 작동이 정상 작동한다는 걸 입증해낸 공이 있다. (비고: 오프킬터란, ‘완벽한 균형에서 벗어난’ ‘일상적인 것 혹은 예상했던 것과 다른’이란 뜻.) 이러한 기생형 프로젝트 스페이스가, 방학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각 대학의 빈 강의실에서 확산·재발한다면 어떨까. 한국 현대미술계는 바야흐로 세대 교체의 계절을 맞았다. 오랜만에 진짜 봄이다.

추신: 727now!는 2월27일의 폐관 포틀럭+댄스파티로 막을 내렸고, 홍익대 홍문관 727호는 강의실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임근준 AKA 이정우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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