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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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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대한 생각 그 소중한 씨앗

번역자 프루스트, 혁명가 에밀 졸라, 저널리스트 디킨스를 보는 재미
등록 2014-07-18 17:45 수정 2020-05-03 04:27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읽을 때 친구가 와서 같이 하자는 놀이, 페이지에서 눈길을 돌리게 하거나 자리를 바꾸게 만드는 귀찮은 꿀벌이나 한 줄기 햇빛, 우리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손도 대지 않은 채 옆에 있는 벤치 위에 밀어둔 간식, (…) 만약 지금도 다시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척이기라도 하면 그 책들은 묻혀버린 날들을 간직한 유일한 달력들로 다가오고, 그 페이지들에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저택과 연못들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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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독서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기억을 되살려낸 이 문장은 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산문 의 앞부분이다. 주인공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 냄새에 촉발돼 유년기로 기억 여행을 떠나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는 프루스트가 1906년 영국의 문호 존 러스킨의 연설문집 을 번역하고서 쓴 역자 서문이다. 프루스트는 미술비평가 러스킨에게 매료돼 그의 책 두 권을 번역했다. 과, 그에 앞서 1904년에 번역한 일종의 여행 안내서 가 그것이다. 프루스트는 이 책들에 제법 긴 분량의 역자 서문을 붙였는데, 그 안에는 1909~22년에 쓴 그의 대표작 의 씨앗이 곳곳에 박혀 있다.

새롭게 번역 출간된 책 는 출판사 은행나무가 기획한 고전 산문선 ‘은행나무 위대한 생각’의 제1권으로 나왔으며, (에밀 졸라), (랠프 월도 에머슨), (찰스 디킨스), (샤를 보들레르)가 1차분으로 함께 출간되었다.

보들레르의 는 ‘현대적 삶의 화가’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진, 신문 삽화가 콩스탕탱 기스에 관한 글에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사망에 즈음해 쓴 추도문을 더한 책이다. 지난 시대 예술의 기준과 형식을 좇느라 자기 시대의 유행과 풍속을 붙잡지 못하는 당대 예술에 대한 비판을 담은 이 텍스트는 특히 ‘현대성’에 관한 보들레르의 정의를 담고 있어서 모더니즘 논의에서 중요하게 취급된다.

에밀 졸라의 은 저 유명한 격문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비롯해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졸라가 쓴 글과 드레퓌스 사건 연보 및 해설, 졸라의 인터뷰 등을 한데 묶은 책이다.

“나를 중죄재판소로 소환해주십시오”

“저들이 감히 사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나 또한 감히 말하려 합니다. 사건이 정식으로 제소된 상태에서 정의가 명명백백하게 행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진실을 소리 높여 말할 것입니다. (…) 부디 나를 중죄재판소로 소환하여 공명정대하게 수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에 실린 산문 여덟 편은 국내 초역으로, 디킨스가 스스로 발행하던 잡지 과 에 실렸던 것들이다. 작가로서 자리잡기 전에 기자로서 현실을 관찰하고 기록했던 ‘저널리스트 디킨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준 초절주의자 에머슨의 은 표제작을 비롯해 긴 산문 다섯 편을 묶은 책이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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