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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미국이 자국의 군사행동으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를 기묘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이라크전쟁의 민간인 사망도, 한국전쟁 때 노근리 민간인 학살도 ‘부수적 피해’라고 했다.
같은 저작을 통해 현대사회의 속성을 파헤쳐온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88·영국 리즈대학 명예교수)은 2011년 작 에서 사회 불평등과 부수적 피해의 상관관계를 조망하는 입론을 시도한다.
에서 우리 문명이 고도로 발전한 단계, 곧 합리적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사회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태동·실행시켰다고 지적했던 바우만은 에서 오늘날 지구적인 차원으로 구조화된 불평등이 ‘부수적 피해’를 낳고 있다고 파악한다. “부수적 피해자가 될 가능성은 오늘날 사회 불평등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가 보기에 ‘부수적 피해자’라는 말은 한 사회가 그들을 주변부로 밀어둔 채 중요한 정치 의제로 끌어들이지 않았음을, 권리와 기회 자체가 이미 불평등하게 배분되었음을 드러낸다. 그런 피해자가 될 개연성은 사회의 불평등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낮아질수록 높아진다. 사회의 이른바 ‘밑바닥 사람들’은 군사행동이든 정책결정이든, 그것의 실행에 수반되는 위험과 비용을 계산하고 평가할 때 고려 대상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민주주의를 “사적 이해의 언어와 공적 이해의 언어 사이에서 ‘양방향 번역’을 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민주주의, 곧 정치 행위는 “사적인 관심과 욕구를 공적인 쟁점으로 재구성하고, 역으로 공적인 관심사를 개인의 권리와 의무로 재구성하는” 부단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한 정치체제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이런 ‘번역’의 성공과 실패, 곧 그 주된 목적을 달성한 정도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 흔히 오늘날 대의민주주의 나라들에서 선거참여율·투표율이 민주주의 자체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이용되지만,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투표율이 아니라 의사 표현의 자유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시민들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드러낼 수단을 제공하고 그들이 목표 삼은 청중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며, 그 체제의 주권 영역에서 벗어날 권리가 주어지는 것, 그것이 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대의제 민주주의를 표방한 현대 국민국가는 대부분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불평등의 장이 되고 있다. 신흥 현대 국가는 국민과 국가의 영토적 결합 속에서 당연히 요구되는 권력과 정치의 병합 수단으로 정치제도와 지배제도를 발전시켰지만, 그런 주권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국민국가에서 오늘날 권력과 정치가 단절됨으로써 “권력은 정치로부터 자유롭고 정치에는 권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권력의 일부는 몰정치적인 (글로벌) 시장으로 흘러들고 일부는 사이버공간으로 증발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국가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력은 이미 전 지구적인데, 정치는 애처롭게도 지방적이다.” 이렇게 지구화된 세계에서 사람들이 더는 민주주의를 한 나라에 국한해서, 혹은 유럽연합(EU)처럼 한 지역 국가군에 국한해서 따로 떼어놓고 지킬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의 지구화는, 한 나라의 시민을 떠나 세계시민의 대다수를 ‘부수적 피해자’로 내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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