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청(소)년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온 김경묵 감독의 네 번째 장편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그는 이번에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소수자에 초점을 맞춘 영화를 선보였다. KT&G 상상마당 제공
“8관, 왼쪽으로 입장하세요.” ‘우리 모두는 어딘가의 알바생이었다’라는 메인 카피의 영화를 안내하는 영화관 알바생은 같은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8관은 입장하는 관객의 기준에서 오른쪽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알바생의 말을 듣고 왼쪽으로 가는 사람이 없었다. 영화표에 8관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고, 붉은색의 큰 글씨로 적힌 ‘8’이라는 숫자가 절대 길을 잃지 않게 안내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 그 누구도 알바생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전국에 편의점 수가 2만5천 개가 넘고, 하루에 880만 명이 편의점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95% 이상의 편의점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편의’라는 단어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깔끔하게 진열된 매대에서 편리하게 물건을 구입한다. 편의점의 알바생들은 “어서 오세요. 1만원 받았습니다. 거스름돈 얼마입니다”와 같은 나름의 규칙적인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들에게 심드렁하기 마련이다.
김경묵 감독의 네 번째 장편 는 영화관의 알바생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무심히 지나쳐가는 편의점 알바생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강변하지도, 최저임금 문제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시선을 편의점 상품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조용히 일하는 젊은 청년들에게 돌리고 있다. 영화 속 알바생들은 익숙한 공간을 지나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계산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그게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영화 속 애경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생 8명은 동성애자, 인디 뮤지션, 자퇴생, 구직자, 탈북자, 중년 실직자로 사회에서 ‘왜 그렇게 사느냐’고 손가락질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알바생들은 사회를 가장 치열하고 살고 있었다. 단돈 1천원짜리 음료수 하나 사면서 손님이라는 이유로 왕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을 차분하게 응대한다. 다음 알바생이 오지 않아 중요한 오디션에 늦어도 알바생은 담배를 팔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편의점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돈 몇천원 가진 손님들은 손님 역할을 넘어 알바생의 일상을 침범한다. 그렇게 영화는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살아도 되고, 돈이 없으면 인간적인 것도 존중받을 수 없는 사회의 규칙에 대해 ‘그런 것도 몰랐느냐, 서울 촌놈처럼’이라며 비꼬고 있다.
김경묵 감독의 영화 의 힘은 바로 ‘현실성’에 있다. 민희 역할을 맡은 배우 김새벽은 이번 영화를 어떻게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따로 준비할 것이 없었다. 영화관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었고, 그때의 느낌을 살렸다”고 했다. 그리고 김 감독 본인과 함께 작업을 한 시나리오작가 모두가 편의점 알바를 했다. 그래서 감독은 알바생과 손님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비현실적인 설정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재미있고, 또 먹먹하다.
편의점에서 알바생에게 성희롱을 하고 일한 알바비를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사장이 오히려 당당한, 가맹점 계약이 헌법의 원칙을 위배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웃긴 세상에서 감독은 현실을 영화로 만들었다. 장사가 안 돼 매장을 닫고 싶어도 사장 마음대로 닫을 수 없는 사회, “에어컨 빵빵하게 켜놓고, 하는 일 없이 알바 따위나 하는 주제에”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당장의 생계 때문에 알바로 내몰리는 현실은 때론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영화 같다.
하지만 군기 센 군대의 열병식처럼 줄지어 서 있는 정돈된 매대,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하얀색 바닥의 편의점에서 그곳을 이용하거나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련되지 못하고 상처받고 있었다. 고귀한 척 예의를 차리지만 화장실이 급한 “사모님”처럼 우리는 발버둥치며 살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쿨’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게 사람들은 진흙탕에서 일상을 견디고 있지만 사회는 여전히 세련되고 공정하다고 말하는 웃긴 세상이기에 영화는 속된 말로 ‘웃프다’.
누구나 갈 수 있는 편의점에 대한 이 영화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라서 야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들어보지 못한 창의적인 욕설을 기대했지만 실제 영화는 무척 현실적이었다. 영등위의 등급 판정에 따르면 앞으로 전국 2만5천여 개 편의점은 청소년 위해시설로 지정하고 출입을 막아야 할 것이다. 에 대한 영등위의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으로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웃프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영화는 6월2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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