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논하는 뮤지션은 많다. 자기 이야기를 쓰니 젊은이가 살아가는 방법이나 태도를 노래하는 일에 익숙하다. 1970년대 캠퍼스 사운드 혹은 1990년대 가요로부터 영향받은 경우도 이제는 찾기 쉽다. 막 데뷔 앨범을 발표한 파블로프의 시작도 그렇다. 앨범 제목 은 그들의 나이이고, 로큰롤을 기반으로 20대 감수성의 연애와 난동과 몽상을 다룬 노래들이 실려 있으며, 수록곡 는 제목부터 가사까지 김현식에 대한 명확한 ‘리스펙트’가 있다. 2008년 EP 을 발표하고 많은 무대를 경험해온 덕분에 라이브에 능하지만 그건 밴드의 기본이지 특색은 아니다.
강변북로서 반드시 크게 들을 것기본을 갖춘 보편의 밴드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키워드가 있다. 파블로프는 ‘강북 사운드’라 소개된다. 강남이 스타일이라면 강북은 사운드라는 것, 즉 강남이 주류 음악을 빠르게 흡수하는 구역이라면 강북은 다양한 음악이 시작되는 창의의 땅이라는 것이다.
한때 밴드 음악은 서울 홍익대 앞에서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 홍대 인근 지역의 미친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여러 뮤지션들이 강북 각지에 합주실과 작업실을 얻어 뿔뿔이 흩어졌다는 배경에서 비롯된 통찰이다. 거기에 더해 파블로프의 음악은 청년들이 만드는 힘과 흥과 땀의 노래이기에 드라이브하면서 듣기에 최적인데, 여기에는 드라이브 코스에 대한 강북 청년들의 특별 지침이 따른다. 강남의 올림픽대로에선 느낌이 안 난다. 그러니 강북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그들은 권한다.
파블로프의 데뷔 앨범은 패키지 상품으로도 판다. 피크, 성냥 그리고 콘돔이 딸린 버전이다. 청춘이라면, 청춘을 표현하고 청춘에 불을 지피고 청춘답게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그들이 전하는 방식이다. 고교 동창으로 구성된 파블로프의 네 청년이 수없이 나눈 가끔 뜨겁고 대개 허망한 이야기들은 결국 음악과 여자로 요약되기에,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음악은 곧 섹스다.
대표곡 은 그 관심사의 생생한 반영이다. 노래 제목은 야릇하고(사실 ‘조여진’은 보컬 오도함의 첫 여자친구 실명이다), 뮤직비디오는 ‘야동’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파블로프는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의 뮤직비디오가 파일 공유 P2P 프로그램인 ‘토렌트’를 통해 유출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사실 의 뮤직비디오는 유출되지 않았다. 야동에서 힌트를 얻었으되 19금 딱지도 달지 못한 수위에 머물지만 ‘그냥 그렇게 됐다’며 있음직한 설정을 만들고 페이스북 구독자들을 웃겨준 것이다. 또 다른 대표곡 의 뮤직비디오도 거짓말을 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로 구성해 끝까지 자막만 길게 쏟아지는 영상인데, 본편은 따로 있으며 아직 극장을 못 잡아서 그렇지 개봉 임박이라고 포스터까지 만들어 홍대 거리에 붙여놨다. 영화는 찍지도 않았다. 그들의 귀여운 거짓말은 충분한 성과를 봤다. 앨범 발매 직전만 해도 200명에 지나지 않던 페이스북 구독자 수는 1천 명에 다가가는 중이고, 뮤직비디오는 유출과 개봉에 대한 무성한 소문 덕에 조회 수 3천 건을 넘어섰다.
음악을 만드는 것은 뮤지션의 몫이지만 전달과 홍보는 기획사의 업무다. 파블로프 소속사 러브락컴퍼니의 기명신 대표는 접근 가능한 매체들의 상이한 성격을 파악한 뒤 밴드 소개용 보도자료를 네 가지 버전으로 작성해 여기저기 돌렸다. 비슷한 시기에 새 앨범을 발표한 아이유와 경쟁하려면 단순히 준수한 음악과 그에 따른 순수한 설명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디 레이블 대부분이 영세하다. 밴드 관리 인력이 턱없이 적어 전략이니 혁신이니 하는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다.
소란 마케팅, 아이유와의 경쟁 무기결국 근본, 즉 좋은 음악으로 승부하거나 운을 기다린다. 러브락컴퍼니의 상황도 다르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소란의 마케팅을 준비할 수 있었던 힘은 밴드 자체에서 나왔다. 다듬어 퍼뜨릴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풍성한 아이템을 이미 스물여섯 살의 강북 청년들이 갖고 있었고, 실무자들은 그걸 토대로 작전을 짰다는 것이다.
그건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다. 파블로프는 1집이 늦었을 뿐 녹음과 공연에 대한 경험을 일찍이 쌓아왔다. 그러는 동안 각종 신예 밴드 선발대회에 부지런히 출전했지만 다 떨어졌다. 사우나 가운을 입고 경연장의 한복판에 선다거나 매트를 깔고 요가를 선보이곤 했는데, 심사위원과 청중을 웃기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그럴수록 수상과는 멀어졌다. 유머와 소동으로 소통하는 그들의 노하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결합해 서서히 반응을 얻기 시작했고, 정식 앨범 발매와 함께 소속사의 각색을 통해 체계를 이뤘다.
웃겨도 음악이 미달이면 의미를 얻지 못한다. 파블로프는 나이답게 까불고 나이답게 뜨겁다. 그리고 기본을 갖추고 돌파구를 모색한 끝에, 흔하거나 ‘싼티’ 나는 소재로 세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밴드로 나아간다.
이민희 음악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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