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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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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아 있는 이 기분, 캬~ 사이다

강동주, 곽상원, 오희원, 윤향로, 진정윤 등
작가 69명의 148점의 회화가 전시된 커먼센터 개관전 ‘오늘의 살롱’
등록 2014-04-19 15:52 수정 2020-05-03 04:27
마치 영등포역 주변 새것과 낡은 것이 혼재하는 서울의 모습과 같았다. 커먼센터에 놓인 148점, 젊은 작가들의 회화는 오래된 건물 벽에 남은 낡은 흔적과 분리되지도, 섞이지도 않은 채 그림 자체로 서 있다.커먼센터 제공

마치 영등포역 주변 새것과 낡은 것이 혼재하는 서울의 모습과 같았다. 커먼센터에 놓인 148점, 젊은 작가들의 회화는 오래된 건물 벽에 남은 낡은 흔적과 분리되지도, 섞이지도 않은 채 그림 자체로 서 있다.커먼센터 제공

아주 많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이런 의문이 든다. 왜 난 이 많은 음식을 먹었지? 어디서부터가 ‘많다’의 시작이었을까. 소화를 시키든 시키지 않든 간에 일단 배가 좀 가벼워지면 생각나는 음료가 있다. 바로 사이다. 이렇게 길게 속의 더부룩함과 청량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커먼센터에서 열리는 ‘오늘의 살롱’전이 갖고 있는 의외의 청량함을 말하고 싶어서다. 사이다 같기도 하고 콜라 같기도 하고 시대를 풍미한 맥콜이나 오란씨 같기도 하지만 이 오묘한 맛의 섞임은 흥미롭다. ‘오늘의 살롱’이라는 전시의 형태는 지금 여기에서만, 과장되게 말하면 오늘만 볼 수 있는 회화 전시다. 여기는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미술공간 커먼센터(www.commoncenter.kr)고, 오늘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작업이 모인 4층짜리 전시장을 돌고 있는 관람객의 시간들이다. 커먼센터는 2013년 11월 말 이은우·김영나가 참여한 개관준비전 ‘적합한 종류’로 문을 연 미술가가 운영하는 공간(Artist-run Space)이다.

예측할 수 없는 영등포역 야생미 그대로

‘오늘의 살롱’전엔 회화를 매체로 하는 작가 69명이 참여한다. 비엔날레나 미술제가 아닌 모종의 합의를 거쳐 특정 형태를 갖춘 전시에 속하는 작가 수로는 분명 많다.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오늘의 살롱’이라는 하나의 전시를 이루는 형태가 가능했던 것, 그리고 반대로 말해 이렇게 많은 작가들의 입장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커먼센터라는 방대하지만 비대하진 않은 공간의 물리적 요건 때문이다. 4층짜리 검은 건물인 이곳은 얼마 전까지 여러 상가와 사무실이 입주해 있었다. 전시장으로 변화한 건물 지하에는 여전히 휴게실이 운영되고 있다. 들어가기 전엔 예측할 수 없는 영등포역 근처의 야생미와 상응하듯, 커먼센터의 벽과 방도 전시를 하기엔 결코 호락호락한 공간이 아니다.

69명의 페인터가 같은 타임라인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한 커먼센터는 말하자면 커다랗고 둥근 중국식 테이블이다. 이 테이블을 순차적으로 돌려 맛보는 음식의 풍미는 제대로 하나씩 음미하기엔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테이블의 속도감에 탑승하다보면 커먼센터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강동주, 곽상원, 오희원, 윤향로, 진정윤, 호상근, 최윤희 등등에 이르는 69명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 2~3점을 커먼센터의 벽과 방으로 옮겼다. 검고 묵직한 사각형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벌집처럼 분절된 사각형의 방들이 각 층마다 나타난다. 걸어서 올라 들어가면 닫힌 문과 통로로 구획된 개별적 룸(갤러리)들이 포진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커먼센터의 방 자체가 외부와 격리된 형태가 아닌 외부와 계속해서 굴절되는 구조를 취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커먼센터까지 걸어가는 영등포역의 길에 대한 시시하거나 특별함이 섞인 감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생생하게 터져나온다. 백화점과 우체국에서 시작해, 뼈를 붙이는 가게가 옆에 있고 분홍 조명을 켠 성매매 업소와 노숙자의 목격들. 커먼센터의 옥상에 올라가서 보이는 자글자글한 서울의 장면, 날선 영등포역 주변의 갖은 요건들에 대해 많은 이들은 커먼센터 전시를 출입하는 전후의 시공간으로 포섭된다. 그렇기에 여기 놓인 148점의 회화는 오늘의 서울, 영등포, 거리와 완벽하게 격리되기 힘들고 수많은 벽과 방에 남아 붙은 옛 건물의 오종종한 벽지들과 100%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깨끗하다기보다는 더럽다면 더러운, 혼종 상태의 눈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

‘세심하게’보다는 ‘우연히’

‘오늘의 살롱’은 커먼센터의 개관전으로 건물 4층 전관을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 그리는 회화들로 채웠다. 오늘날 미술제도가 늘 아픈 이처럼 끼고 있는 ‘젊은’ ‘작가’라는 개념을 ‘오늘의 살롱’전은 세심하게 구현하는 대신, 젊다고도 노쇠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현대미술의 몇 장면을 한꺼번에 발췌하려는 부감의 시선을 꺼낸다. 파편적으로 분절돼 제대로 읽히지도 말해지지도 않는 오늘의 상황을 ‘아주 많은’ 그림으로서 말하려는 시도는 커먼센터 운영진들이 밝히듯 “우연히 채집된 화가들의 목록”을 회화라는 물질로 덩어리째 드러낸다. 트인 공간인 1층에 한꺼번에 등장하는 너무 다르고 또 한편으로 비슷한 그림들의 집합, 그리고 2층으로 올라 4층까지 각 층마다 문이 열린 6개의 방으로 들어가 그림과 주변을 둘러볼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작가와 작품의 정보 등이 아니라 여기 눈앞에 존재하는 ‘그림’의 존재 자체다. 흰 벽 위에 붙은 조희영의 그림, 벽 한쪽을 차지한 이우성의 작업, 그리고 벽에서 살짝 떨어져 붙은 오희원의 그림은 ‘오늘의 살롱’이 아니었다면 한 건물 안에서 몇 분 차이를 두고 마주하기 힘들었을 테다. 방마다 드문드문 자리한 148점의 회화 작품들은 이것이 어떤 젊은 작가의 어떤 작품인지 설명하는 대신, 벽지가 뜯겨졌거나 아직 몇 남아 있는 헐벗은 벽 위에서 자신의 그림 자체로 서는 데 집중한다.

‘오늘의 살롱’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한 이는 커먼센터의 디렉터 함영준과 멤버인 그래픽디자이너 김영나, 그래픽디자이너 김형재, 미술가 이은우다. ‘오늘의 회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 앞에 ‘여기쯤 와 있습니다’라고 외칠 순 없지만 적어도 ‘오늘’이 살아 있는 기분이 들게끔 하는 전시는 상쾌한 공기임이 분명하다. 내일도 살아 있을 젊은 미술가들의 “생태계를 직접 설계”하려는 첫 의례다. 5월18일까지.

현시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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