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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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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안에서 오지 발견!

스타들의 가족과 아이의 사생활을 엿보는 ‘CCTV 예능’ 인기의 비결
등록 2014-02-13 15:36 수정 2020-05-03 04:27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는 이들은 스타가 아닌 비예능인들이다. 연출되지 않은 아이들의 행동은 육아 예능의 인기를 추동하는 한 요소다.KBS 제공

육아 예능 프로그램을 빛나게 하는 이들은 스타가 아닌 비예능인들이다. 연출되지 않은 아이들의 행동은 육아 예능의 인기를 추동하는 한 요소다.KBS 제공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찾아왔다. 영화 에서 소니 쿠펙스(애덤 샌들러)에게 퀵서비스로 배달된 5살짜리 꼬마 줄리안이 소니의 삶을 흔들어놓았듯, TV를 점령한 아이들이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고 있다.

지난해 침체된 MBC 예능 프로그램의 구원투수였던 에서 출발해 KBS 가 육아 예능의 바통을 이어받았고, SBS에서는 3대 가족의 육아를 주제로 를 지난 1월부터 방영 중이다. 아이들을 향한 구애는 지상파를 넘어 종합편성채널로도 넘어갔다. TV조선은 지난해 10~11월 총 6부작으로 조부모와 손주들의 여행을 다룬 를 방영했다. 스타들의 가족과 아이의 사생활을 엿보는 프로그램이 이토록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션 수행 예능에서 관찰 예능으로

장면1. “저 포크 있어요.” 에서 김성주의 아들 민율이 이종혁이 만든 카레 라면을 맛보고는 작정한 듯 포크를 가지고 와 불쑥 끼어든다. 냄비에 고개를 파묻고 카레 라면을 흡입하다보니 이거 혼자 먹기 아깝다. 뜬금없이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호객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어른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지만 아이는 아랑곳 않는다. “카레 라면 먹어봐, 카레 라면 맛있어.”

장면2. 설을 맞아 출연진들은 다 함께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한 스튜디오로 이동 중이다. 그날 이미 요구르트 여러 개를 해치운 사랑이는 스튜디오에 도착해서도 내내 ‘먹방’ 촬영 중이다. “포도 먹고 싶어요.” 그렇게 먹고 또 먹겠다고? 음식을 챙겨주려고 아빠 추성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사랑이는 언제 넣어뒀는지, 주머니에서 포도알을 꺼내 입에 넣는다. 이토록 열정적인 식탐이라니.

아이들은 카메라가 요구한 적 없는 엉뚱한 상황을 만들어내며 웃음을 유발한다. 프로그램 제작 대본에는 괄호 치고 ‘민율이가 까치발로 서서 카레 라면을 맛있게 먹다 아이들을 불러들인다’는 지문 같은 건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 주머니에 포도알을 넣어둔다는 설정도 없다. 다만 수십 대의 카메라가 아이들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관찰 예능이 예능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현장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였다면 지금은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한 관찰 예능으로 유행이 옮겨왔다. TV평론가 김선영씨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미션이 점점 독해지고, 대본 조작 등 논란에도 휩싸이다보니 시청자가 서서히 질려가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 가운데 말 그대로 정말 리얼한, 다큐성이 있는데다 재미있기까지 한 관찰 예능에 신선함을 느낀 것이다. 이를 ‘CCTV 예능’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등 지난해 인기를 얻었던 예능 프로그램 대부분이 관찰 예능이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씨는 “돌이켜보니 오지로 가서 미션을 수행할 필요 없이 생활 세계 안에서의 오지(육아 체험)를 발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육아 예능의 인기는 비예능인인 아이들의 순수한 리액션, 예능 트렌드의 변화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있다.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전통적 가족상을 여전히 붙들려는, 가족에 대한 한국적 정서 또한 이들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다. 가족 회복에의 요구와 육아 결핍에 대한 위기의식이 육아 예능의 인기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 와 에서는 엄마가 부재하고, 에서는 엄마의 역할이 축소된다. 모든 것을 엄마 역할에 치중했던 한국식 육아가 한계에 봉착했고, 아빠를 포함한 다른 가족 구성원이 나서고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각성이 생긴 것이다. 예능을 보면서 다큐적으로 얘기하자면, 안간힘을 써서 사회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진화한 먹방 혹은 착시

그래서 육아 예능 붐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다. 서구나 이웃 일본에서도 아이와의 좌충우돌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 채널들처럼 엇비슷한 프로그램이 동시에 쏟아져 어깨를 겨루는 사례는 눈에 띄지 않는다. 김선영씨는 “일본에서 진작에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면서 이를 지켜보는 프로그램이 있긴 했지만 일종의 키즈 예능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이들 프로그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인 동시에 너를 향한 판타지다. 육아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리는 이휘재()나 이은( 1~3회 출연)을 보면서 스타든 대저택에 사는 처지든 결국 삶의 현장은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외부적 요인으로 결혼과 육아를 유보한 어떤 시청자에게는 이 모든 것이 먼 이상향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일종의 진화한 먹방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저들도 우리와 같이 박터지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경제적 결여가 하나도 없는 풍요로운 육아 세계를 보면서 착시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황진미씨의 말처럼.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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