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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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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민주주의를 모른다

정치적 힘은 어떻게 아래로부터 허물어졌는가
등록 2014-01-30 16:2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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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시대다. 자기 이익만큼은 알토란같이 챙기던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정치’는 돌아올 줄 알았다. 상대의 말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정치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 정권은 상대를 인정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불통이 문제가 되는 것은 ‘소통’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의 장에서 말을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사꾼의 시대를 지나 ‘천상천하유아독존’, 지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말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학습하는 공간

말을 무력화한 이 지존의 시대에 맞설 정치적 힘이 우리에게 있는가? 나는 단적으로 말해 정치적 힘이 어떻게 아래로부터 허물어졌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견(異見)을 의견(意見)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을 통해 토론은 시작되고 공론이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가 가진 정치적 힘이란 각자의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의견으로 얼마나 활발하게 만들고 제시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정치가 활성화된 사회는 끊임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의견이 경청되어야 한다. 아무리 하잘것없는 의견이라도 말이다.

내가 이 책에서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학교가 말의 힘을 배우고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공간이 아니라 말이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학습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교는 말이 얼마나 철저하게 위계화돼 있는지를 학습하는 공간이다. 모범생의 말은 말로 인정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말은 말 취급도 못 받는다. ‘학교화된 언어’가 아닌 말로 말하거나 질문하면 교사들은 대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꽥 소리를 지른다. 인간은 말을 하고 동물은 소리를 낸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존재, 인간이 아니라 ‘소리’만 내는 존재, 즉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동물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침묵하게 된다.

교무실 역시 다르지 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만들어지고 교사들이 ‘침묵의 교단’을 넘으려고 했을 때 아주 반짝 교무실이 공론의 장이던 때가 있었다. 교장이나 교감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던 ‘벌떡 교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교무실은 다시 침묵의 공간이 되었다.

교육 현장에는 이것이 교육인지 아닌지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가지만 오히려 교사들은 결코 공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견을 의견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검열하고 단속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교사에 대해서도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고 못 본 척한다. 그게 교사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 결국 교무실을 공론의 장으로 만들려고 노력할수록 교사들 사이에서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소외감을 느낀 채 소진돼가고 있다.

무기력과 소진의 반복. 그런데 이것이 어디 학교만의 문제인가? 우리 사회 전체가 타자를 회피하고 자기를 단속하며 사적인 세계에 자신을 은닉한다. 이렇게 본다면 위기에 빠진 것은 학교와 학교 안에서의 교육이 아니다.

‘성장’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

근대사회를 통해 인간이 기획하고 꿈꾸었던 성장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나와 다른 존재, 타자를 만나고 타자를 통해 배우며 자신의 경험을 확장하고 그 경험을 말로 표현하며 공적인 세계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의 성장 말이다. 이런 성장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항구적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엄기호 덕성여대 겸임교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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