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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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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보라, 결혼도 이혼도 끝이 아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따뜻한 말 한마디>, 오랫동안 드라마를 통해
세속 욕망의 진풍경을 그려왔던 작가들이 선보이는 현자의 윤리
등록 2014-01-02 11:54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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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위쪽)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인간의 세속 욕망이 여실히 드러나는 결혼의 현실을 보여주고 결혼의 윤리를 되묻는다.SBS 제공

결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위쪽)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인간의 세속 욕망이 여실히 드러나는 결혼의 현실을 보여주고 결혼의 윤리를 되묻는다.SBS 제공

(tvN)가 인기를 끄니 드라마 속 나정이 누구와 결혼하는 것이 나은지 스펙과 연봉을 비교하는 기사가 에 실리기도 했다. 이 시대의 로맨스는 결혼정보회사가 작성한 등급표나 기대수익률로 환산되는 것임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사가 또 있으랴. 하기야 지금 이 시대는 결혼을 오직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것을 ‘현실적’이라 말하고, 부자 남자와의 결혼을 ‘보편적’ 욕망으로 간주해버린다. 하지만 가장 통속적이라 여겨졌던 드라마들 중에 오히려 결혼의 다채로운 ‘현실’을 보여주며, 결혼의 윤리를 말하는 작품들이 있다. SBS 드라마 와 다.

신데렐라, 그 이후

김수현 작가의 는 ‘신데렐라, 그 이후’를 그린다. 은수(이지아)는 부자 남자와 결혼하는 행운을 얻지만, 윤회처럼 이혼을 반복한다. 드라마는 일종의 사고실험처럼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부장적 결혼의 ‘현실’을 비춘다. 은수는 착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천박한 졸부에다 억센 홀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혼 4년 만에 딸 하나만 데리고 이혼한다. 2년 뒤 은수는 재벌 2세와 결혼하는데, 이번 시댁은 고상하고 안정된 가정이지만 하루 종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데다 사랑하는 딸과 헤어져야 한다. 게다가 남편은 불륜이 발각되고도 뻔뻔하게 나오는 등 신뢰가 깨졌다. 주인공은 첫 결혼의 실패를 시어머니의 인품 탓으로 생각했지만, 시월드는 인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다. 권력의 원천인 경제력이 시월드에 있는 이상 자유롭고 평등한 결혼생활은 환상이다. 두 번째 시월드는 고상해 보여도 계급차가 더 벌어진 이상 불평등은 심화됐고, 이혼과 재혼으로 앞의 인연들이 악업처럼 쌓여 사태는 더 복잡해졌다. 은수는 재혼에 앞서 자신의 욕망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며 결혼으로 얻고 싶은 최소한의 행복이 무엇인지 되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나 자기 욕망에 대한 반성 없이 상대만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해 재혼했고, 이제 두 번째 결혼의 실패를 앞두고 있다.

는 (KBS)을 10년 이상 집필하고 (JTBC)를 쓴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다. 드라마는 작가가 십수 년간 천착했던 결혼과 이혼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드라마는 불륜이 일어났고 관계가 정리되는 국면에서 시작된다. 이후 불륜이 밝혀지고 분노와 죄의식에 휩싸인 네 남녀가 각자의 심리적 지옥을 맛보는 광경을 스릴러 형식에 담는다. 은진(한혜진)은 오랜 연애 끝에 성수(이상우)와 결혼하지만, 몇 년 전 성수의 외도로 부부 사이에 금이 갔다. 은진이 사업가 재학(지진희)과 사랑에 빠지자, 미경(김지수)은 재학에게 미행을 붙이고 은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재학은 자신의 불륜보다 미경의 행위에 분노한다. 은진은 불륜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죄책감으로 남편에게 털어놓으려 하고, 성수는 은진을 다독이며 가정을 지키려 하지만 한번 품은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상대인가보다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가

드라마는 짧은 대사 안에서 네 남녀가 처한 현실은 물론이고 과거사까지 응축해 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가령 남편의 불륜 앞에서 미경은 “엄마! 엄마!” 하며 악을 쓴다. 이를 통해 미경은 현재의 사건을 통해 불륜으로 괴로워했던 엄마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가족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억눌러왔던 무의식을 폭발시킨다.

드라마는 불륜을 둘러싼 네 남녀의 선악을 분별할 수 없는 파란을 통해, 결혼의 윤리를 되새긴다. 결혼은 어떤 상대와 하는가보다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가령 미경처럼 잘난 남자와 결혼해 현모양처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는 삶은 위태롭다. 이는 남편의 불륜을 통해서든 갑자기 튀어나온 내 안의 무의식에 의해서든 언제든 파탄날 수 있는 삶이다. “불륜은 배우자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라는 대사처럼, 불륜은 자기 밑바닥을 내보이며 결혼을 파탄낼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긴 하지만 불륜이 곧바로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불륜이 일어나고 확인되는 과정이나 이후에도 여러 ‘윤리적인 국면들’이 존재한다. 불륜은 분명 헬 게이트를 여는 일이지만, 그 지옥의 와중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순간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점을 드라마는 말한다.

부자와의 결혼을 곧바로 성공으로 등치시키는 비현실적이고 아둔한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오랫동안 드라마를 통해 세속 욕망의 진풍경을 그려왔던 작가들은 오히려 현자처럼 결혼의 현실과 윤리를 일깨운다. 저 사람들을 보라. 결혼도 이혼도 끝이 아니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삶은 계속된다. 오직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 이것이 세속 욕망의 계명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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