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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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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기적인 기럭지들

‘비율’로 기회를 잡고 개성 있는 마스크로 자리잡아가는
‘모델 동네’ 배우들 이수혁, 홍종현, 김우빈, 성준
등록 2013-12-11 15:13 수정 2020-05-03 04:27
경기도 가평으로 함께 여행을 간 김영광, 홍종현, 이수혁, 김우빈(왼쪽부터). 모델 활동을 하며 친분을 쌓은 이들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다. 온스타일 화면 갈무리

경기도 가평으로 함께 여행을 간 김영광, 홍종현, 이수혁, 김우빈(왼쪽부터). 모델 활동을 하며 친분을 쌓은 이들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다. 온스타일 화면 갈무리

“우리가 이 조합으로 아이돌 그룹을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성준이 묻자 모두들 “망했어” 한다. 그러면서도 이수혁이 “(홍종현과) 안 그래도 어제 그 이야기 했어”라고 하자, 아이돌식 이름 짓기가 이어진다. 홍종현을 두고는 “미키종현”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수혁이 김우빈한테 “유노우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자 김우빈은 “혁수수혁”이라고 답한다. 이수혁이 재빨리 “불평을 담당하는 혁수수혁”이라고 말을 잇는다. 홍종현이 자리에 없던 김영광을 두고 “영광을 담당하는 영광이형”이라고 하자 누군가 “굴비영광”이라고 말을 맺는다.

강동원·조한선의 이후

동네 친구들의 농담 같다. 그러나 이런 농담을 하는 청년들의 ‘기럭지’는 그냥 동네에서 보기 힘들 만큼 ‘우월’하다. 외모도 개성이 넘친다. 이런 비주얼이 이들의 말을 농담으로 들리지 않게 하고 정말로 그랬으면, 상상하게 만든다. 이 장면이 나온 프로그램은 온스타일 . 이수혁과 홍종현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Play Boyz’라는 꼭지가 있다. 이날의 주제는 ‘친구들과의 여행’. 성준이 먼저 경기도 가평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고, 김우빈이 합세했다. 이날 내내 이수혁은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가를 올리는 김우빈을 보고 “톱스타, 톱스타” 하면서 놀렸다. 성준은 가위바위보에서 진 홍종현의 어깨를 치며 “이 바보야!” 하기도 했다. 오랜 친분이 브라운관에 고스란히 배어났다. 예전부터 부르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을 통해 이수혁의 본명이 이혁수, 성준의 이름이 방성준인 것을 알았다. 이들이 놀던 동네는 ‘모델 동네’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수혁·홍종현을 치면 김우빈·방성준이 연관검색어로 따라 나온다. 김영광·이수혁을 치면 홍종현·김우빈이 따라 나온다. 이름들 사이의 접점은 모델 출신이란 것이다. 정우성, 이정재, 차승원, 강동원, 소지섭, 공유 그리고 이종석. 모델 출신 배우는 적잖다. 그러나 이렇게 한 세대의 패션모델들이 한꺼번에 배우로 자리를 잡고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한 때는 드물다. 모델 출신인 강동원·조한선이 영화 에서 함께 주연을 했던 시절 이후로 다시, 모델 출신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수혁이 “톱스타의 위엄”이라고 짓궂은 농담을 했던 김우빈은 드라마 , 영화 에서 두 마리 토끼를 낚았다. 이수혁은 드라마 에서 비밀을 간직한 수사관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동굴 같다’고 하는 저음의 목소리를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낯설어했다. 성준은 은근히 화제를 모았던 JTBC 드라마 에서 자상하지만 우유부단한 주인공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홍종현은 드라마 등에 잇따라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가장 먼저 굳혔다.

이들이 ‘떼’로 출연한 작품도 있었다. 2011년 KBS 연속 단막극 에는 김우빈, 이수혁, 홍종현이 출연했다. 이들은 MBN 시트콤 에도 같이 나왔다. 뱀파이어 왕자 이정을 호위하는 무사 역이었다. 한결같이 키가 180cm가 넘는 모델들은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고전을 거듭하는 사이, 주연배우로 성장하고 있다.

키는 크고 얼굴은 작은, 이들의 비율은 먼저 기회를 주었다. 강명석 편집장은 “지난 10년간 캐스팅 기준이 바뀌어 이제 모델 같은 체형과 외모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달라진 캐스팅 기준과 더불어 변화한 방송 환경도 기회를 더했다. 케이블·종합편성채널 드라마가 늘면서 연기를 연습할 기회가 많아졌다. 강명석 편집장은 “예전에는 한 작품을 잘못하면 도태됐지만, 이제는 조금만 가능성을 보여도 다음다음 작품으로 넘어간다”며 “한두 작품에서만 눈에 띄어도 아이돌처럼 고정 팬이 생겨 다음 캐스팅에 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단역과 조연 거치며 연기력 키워

예상외로 이들은 단역부터 시작했다. 처음부터 주연으로 연기를 시작해 오히려 연기력 논란이 발목을 잡은 아이돌과 달리 이들은 단역과 조연을 거치며 연기력을 키웠다. 이들이 떼로 출연한 에서도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외모도 전형적 미남과 거리가 있다. 김선영 TV평론가는 “소지섭·강동원 같은 모델 출신들은 누가 봐도 미남이었지만, 차세대 모델 출신 배우들은 개성 있는 마스크를 가졌다”고 지적했다. 강한 인상의 김우빈은 처음엔 거친 역할을 맡았고, 이수혁은 ‘딱 봐도 모델’이라고 할 만한 마른 체형과 낯선 외모를 지녔다. 이런 개성은 전형적 외모와 연기가 넘치는 브라운관에서 오히려 장점이 된다. 김선영 평론가는 “배우로 훈련받은 신인들과 달리 전형적인 연기를 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연기를 잘하지는 못해도 모델 활동을 하면서 익힌 즉흥성이 묻어나는 연기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핸디캡’으로 여겨졌던 강한 개성의 외모가 적절한 배역을 만나고, 조금 낯선 외모가 눈에 익으면서 김우빈처럼 주연급을 넘어 주연배우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과연 누구의 미래가 더 밝을까. 김선영 평론가는 “흔하지 않은 마스크의 김우빈은 드라마 을 통해 초반에 반항적 이미지, 나중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강명석 편집장은 “악역도 선한 역할도, 일상적 드라마도 판타지물도 가능한 성준이 주목할 만하다”고 꼽았다. 성준은 곧 시작하는 드라마 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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