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토끼 꼬리만큼 짧아진 겨울 해는 길을 가야 하는 객의 사정을 외면하고 서둘러 고개를 넘어버렸다. 어둠 역시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자동차 전조등에 모습을 드러낸 길은 하얗게 빛을 내었다. 얼어붙은 그 길은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를 따라 이어졌다. 길을 등지고 다리를 건너서야 작은 산에 기대고 작은 산을 앞에 둔 마을에 들었다. 이미 잠이 든 덕천마을 송소고택에서 하루를 묵어야 했다. 주인은 혹시 누군가가 찾아들지 몰라 방 하나에 군불을 지폈다고 했다. 큰 사랑채로 불리는 그 방은 이름답지 않게 작았다. 조선 후기 만석지기 송소 심호택이 지은 집이라 했다. 9대에 걸쳐 만석지기의 부를 지켜온 집안의 99칸의 큰 집임에도 방은 작았다. 이렇다 할 장식도 없는 방은 부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야 할 정도로 검소했다. 주인은 하루 내 온돌을 달궈놓고도 못 미더운지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온기를 확인한 뒤에야 서울에서 내려온 동창들을 만나야 한다며 객을 홀로 두고 청송읍내로 마실을 나갔다.
삽살개와 지새운 그 겨울의 긴 밤주인마저 비운 그 큰 집에서 객은 삽살개 한 마리와 긴 겨울밤을 지내야 했다. 외롭지 않았다. 밤하늘마저 파랗게 질려버린 그 추운 겨울밤. 달빛은 녹지 않은 눈과 화답이라도 하듯 하얗게 빛났다. 넉넉한 군불에 방은 여닫이창을 활짝 열어도 될 만큼 충분하게 따듯했다. 솜이불의 적당한 무게는 오히려 낯선 곳의 하룻밤을 위무하는 듯하고, 긴 회색 털로 겨울을 이기는 삽살개는 마치 수문장처럼 툇마루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객의 기척을 살펴주었다.
여기저기 고속도로가 뚫렸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먼 길에 속한 청송으로 가는 길 내내 3년 전 겨울 우연하게 맞았던 호사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얀 달빛에 겨워 잠들지 못하고 걸었던 송소고택의 마당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각사각’ 화답하고 겨울을 이기는 나뭇가지는 바람과 손잡고 수없이 많은 그림을 눈 덮인 마당에 그려주었다. 그 추억을 더듬으며 “동쪽에 있는 불로장생의 신선세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에 적합한 땅” 청송으로 간다. 고속도로가 온 국토에 거미줄처럼 깔린 요즈음에도 멀기로 소문난 경상북도 청송군·영양군·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의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잇는 외씨버선길을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다.
옛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가려 다시 이은 200km의 외씨버선길은 청송군의 주왕산과 강원도 영월군의 관풍헌을 잇는다. 주왕산에는 신라시대 명주군왕으로 불렸던 김주원이 신라의 왕위를 잇기 위해 칩거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영월 땅은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단종의 아픔이 지워지지 않는 땅이다. 사실은 글로 기록돼 역사가 되고 말로 이어지면 전설이 된다. 글로 기록되지 못한 사실을 말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리움이 큰 탓이다.
김주영, 조지훈 그리고 김삿갓의 길13개 주제로 나눈 길의 이름은 김주영 객주길, 조지훈 문학길, 김삿갓길 등 작가의 이름을 빌려왔다. 그들의 본향이 길과 함께하는 탓이다. 외씨버선길이란 이름 역시 영양이 본향인 조지훈의 ‘승무’의 시구를 빌려왔다. 길을 이어 걸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길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만났다고 했다. 그 길을 엿보기 위해 청송 운봉관에 섰다. 찬경루가 단청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데 비해 운봉관은 하얀 회벽과 나무 본래의 색으로 세월을 이겨낸다. 처마 역시 하늘로 ‘스스로를 존중’하려면 ‘스스로에 만족’해야 한다는 진리를 말하는 듯 완고하고 굳건해 보였다. 사신이나 관리들이 머무는 객사였던 운봉관의 넓은 마루에선 마을 아이들이 한창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 한 귀퉁이에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 아무런 칠도 없이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서까래가 굳이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청송의 자연을 상상하게 한다. 들머리의 소헌공원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세종의 정비이자 가장 후덕한 왕후로 꼽히는 소헌왕후의 본향이 청송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운봉관에서 송소고택을 지나 김주영 객주길로 이어지는 ‘슬로시티길’ 구간은 외씨버선길의 두 번째 구간이지만 가장 먼저 열린 길이다. 첫 번째 길 ‘주왕산 달기약수탕길’이 오롯한 자연의 길이라면 11.5km의 두 번째 길은 소박한 삶과 마을, 역사를 품은 자연을 만나는 길이다.
소헌공원을 뒤로하고 용전천을 건너면 이내 외씨버선 조형물을 만난다. 조지훈의 ‘승무’를 새긴 나무 간판을 안고 돌면 길은 이내 수달이 산다는 생태관찰로로 이어진다. 느릿하게 흐르는 용전천을 따라 걷는다. 해가 나지 않았는데도 억새가 아름답다. 나고 자라고 결실을 맺어야 하는 생명의 의무에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던 탓이리라.
31번 국도를 잇는 다리 아래로 태연하게 이어지는 걷는 길에서 느림이 주는 선물을 만난다. 자동차로 달려갈 때는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은 삶이 기억해야 할 것들이다. 벽절정으로 오르는 비탈에서 만나는 나무 한 그루가 마치 온통 근육질투성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나무가 간직한 근육은 오랜 세월 겹겹이 더해진 상처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은 훈장이다. 비말을 오르면 이내 벽절정이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둘러싼 정자 앞에 서면 왔던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6칸에 지나지 않는 크지 않은 정자를 인근 사람들이 자랑스레 지켜온 것은 정자의 주인인 심청의 절개와 용기를 기억하는 덕이다. 정자의 주인인 심청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무수한 전공을 세우다 끝내 숨졌다고 한다. 왕은 이를 기려 충·용·의·열 네 글자를 내리고 벽절(碧節)이라 호를 내렸다. 벽절이라는 이름에서 칼날의 파란빛이 느껴지는 이유다. 길은 솔잎이 융단처럼 깔린 소나무숲을 지나고 때로는 아스팔트를 건너며 송소고택이 있는 덕천마을을 지나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심었다는 증평솔밭을 지난다.
외씨버선길로 이름 붙여진 길은 새로운 길이 아니다. 길에는 제 할 일을 다하고 스러져가는 정미소가 있고 300년이 넘도록 오가는 길손에게 그늘을 제공하던 느티나무도 서 있다. 길은 산을 넘기도 하고 강을 건너기도 한다. 산을 넘는 비탈길에서 차오르는 숨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에서 만나는 작은 물고기는 함께 살고 있다는 상징이다.
산과 강을 넘고 뭇 생명의 발자국을 만나는 길다시 겨울이 오고 있다. 바람 찬 외씨버선길에 나서면 겨울이 생명의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눈 덮인 작은 길에서 뭇 생명들의 작은 발자국을 만날 수 있고 메마른 나뭇가지도 봄을 준비하는 새 움을 키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엄혹한 추위가 예고되는 겨울, 사람과 삶, 역사와 자연이 함께 있는 외씨버선길을 걸어볼 일이다. 혹은 파랗게 빛나는 절개를 지켜낸 이를 키운 고택에서 겨울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볼 일이다.
윤승일 기획위원외씨버선길에 대한 상세한 안내는 www.beosun.com, 혹은 전화 영양객주(054-683-0031), 청송객주(054-872-0116), 봉화객주(054-672-0803), 영월객주(033-374-6830)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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