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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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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자리’를 위하여

노래패 ‘꽃다지’에 기증된 쌍용차 해고자 조립차 ‘H-20000’ 동행 르포… 꽃다지 피는 길에 쌍차 이야기도 활짝 피길
등록 2013-07-18 15:53 수정 2020-05-03 04:27

“에어컨 빵빵, 오디오 양호, 안전벨트 굿, 창문 정상….”
시동을 걸자마자 성능 점검이 요란했다. 태 평양을 건너는 국제선 항공기에 준하는 사전 체크였다. 실제론 서울 구로에서 경기도 일산 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점검 절차라기보다 ‘자 랑의 순서’였다. ‘우리 차’라는 자부심이었고, 차를 만든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이었다. 차 창 밖에서 구름 낀 여름 햇빛이 순했다.
“오케이? 그럼 출발!”
노래패 ‘꽃다지’ 정윤경 음악감독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7월9일 오후 민들레 홀씨가 더운 바람을 탔다. ‘쌍용 H-20000’이 묵직 한 몸을 움직여 비탈길을 올랐다. 온몸에 민 들레꽃을 새긴 ‘코란도 86어4199’는 한 달 전 꽃다지의 ‘문패’가 됐다. 일부러 땅속으로 숨은 듯한 서울 구로의 간판 없는 지하 연습 실은 오직 차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무슨 노래 듣고 싶어요?”
정 감독이 물어왔다.
“ 틀어주세요.”
그가 음악 파일을 뒤적였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 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 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 라~.
인수 예정일에 철거된 분향소
“듣고 있어요?”
나흘 전(7월5일) 꽃다지 콘서트(서울 마포 구 롤링홀) 무대에서 정 감독은 고동민씨를 찾았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연 장에 와 있었다. “네.” 좌석을 꽉 채운 관객 속에서 고동민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연 은 6월10일 서울 중구청의 대한문 쌍용차 분 향소 강제 철거 영상으로 시작했다. “믿음은 사라지고 고립된 희망만 남은 2013년”이란 자막이 스크린에 떴다. 꽃다지는 고동민씨의 신청곡(김민기의 )을 열창 했다. 정 감독은 “울 것 같다”고 했다.
공연에 꼭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있었 다. 그는 영상 속에서 경찰에게 끌려가고 있 었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약 속을 지키지 못했다. 6월12일 그는 구속됐다.
분향소 철거 당일은 꽃다지의 ‘H-20000’ 인수 예정일이었다. 6월7일 모터쇼에서 쌍용 차 해고노동자들은 모처럼 웃었다. 땀을 뻘 뻘 흘리며 조립한 ‘H-20000’을 꽃다지에 기 증한다는 사실도 발표했다. 해고 4년여 만에
손에 기름을 묻힌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의 복직을 희망(Hope)하는 시민 2만 명의 마음(Heart)을 모아 만든 차였다.

7월5일 ‘꽃다지’ 콘서트를 관람하러 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 조합원 등이 공연장 앞에 주차된 ‘쌍용 H-20000’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7월5일 ‘꽃다지’ 콘서트를 관람하러 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 조합원 등이 공연장 앞에 주차된 ‘쌍용 H-20000’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차가 지닌 의미 너무 무거웠다”

민정연 꽃다지 대표는 “20년 활동(1992년 3월 창립)하면서 받은 가장 큰 상”이라고 했다. 전국을 누비며 공연하는 꽃다지였으나 8년 동안 차가 없었다. 큰맘 먹고 산 승합차를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2005년 팔았다. 가수들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악기를 들고 기차나 택시를 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울컥한 민 대표가 기증 공모에 응했고, 멤버 모두가 “믿을 수 없는” 선정 소식을 들었다. 잔치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남들에게 자랑하려고 홍보 계획까지 짰으나” 차를 받기로 한 날 ‘가난한 분향소’가 사라졌다. 차를 인수한 날은 이틀 뒤인 6월12일이었다.

마지막 앙코르 곡까지 들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공연장 앞에 주차된 ‘H-20000’에 기대 담배 한 대씩을 피웠다. 짧은 외출을 마치고 그들은 ‘날마다 위태로운’ 대한문으로 되돌아갔다.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H-20000’ 자체가 수많은 사람이 참여한 프로젝트여서 관계자도 한두 명이 아니에요. 서류상 명의자는 이종희(진보네트워크 대표)인데, 열쇠는 박래군(인권중심 사람 소장)이 갖고 있고, 서류는 신유아(문화연대 기획자)가 보관하고 있었어요. 모두 모인 자리에서 차를 넘겨받았는데 배터리가 방전돼서 시동이 안 걸렸어요.”

정 감독이 웃었다. “마냥 기뻐하며 받기엔 차가 지닌 의미가 너무 무거웠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흘 만(7월9일)에 다시 찾은 연습실은 약간 어수선했다. 관객에게 나눠주고 남은 포스터가 연습실 한쪽에서 공연의 여운을 붙들고 있었다. 공연 결산 중이던 민 대표는 “400여만원 적자”라고 했다.

공연은 ‘성황’이었다. 이틀째 공연 땐 관객 수가 좌석 수를 훌쩍 넘겼다. 성황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적자는 예상한 바였다. 공연은 늘 적자였다. 대관료와 세션 연주비를 지불하고 나면 ‘만석’이어도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 해고노동자와 지방 관객 무료 초청으로 꽃다지는 스스로도 ‘즐거운 적자’를 키웠다.

어느덧 무대엔 세 사람(정윤경·정혜윤·홍소영)만 남았다. 한때 30명이 넘던 멤버 수는 몇 번의 고비를 겪으며 3명의 가수와 1명의 기획자 겸 대표(민정연)로 줄었다. 지난해엔 15년간 함께한 가수 조성일씨가 새 길을 찾아 떠났다. 대학 공연 감소로 재정이 악화되면서 거리에 공연 홍보 포스터를 붙이지 않은 지도 꽤 됐다. 멤버가 줄고 적자를 내면서도 꽃다지는 1년에 한두 번은 꼭 공연 시설이 갖춰진 무대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민 대표가 이유를 설명했다.

“현장 가수들에겐 음악 실력을 묻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과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은 별개의 작업이 아닙니다. 현장성과 음악성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길입니다.”

정 감독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퇴근 시각에 일산으로 가는 도로는 자주 막혔다. 한 대안학교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통기타 강습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열악한 꽃다지 재정 탓에 그는 5가지 개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정 감독은 “신호등 앞에 ‘H-20000’를 세우면 괜히 사람들 시선을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은 무심히 쳐다봤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느껴요. 차가 예쁘잖아요.”

그는 “꽃다지가 ‘H-20000’을 타고 가는 길마다 쌍용차 이야기가 전파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동의 자리’가 일상을 되찾을 때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꽃다지는 들에서 피는 야생화다. 햇볕만 들면 토질과 관계없이 자란다. 들과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 틈마다 꽃다지는 피었다. ‘노동의 자리’를 빼앗긴 해고자들 속에서 꽃다지는 ‘노래의 자리’를 찾았고 ‘노래의 뿌리’를 내렸다. 복직 투쟁 2천 일을 넘긴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심정을 담아 노래(4집 앨범 수록 )를 만들며, 꽃다지도 자신들의 ‘노래가 있어야 할 자리’를 고민했다. 추운 거리에서 떨며 농성하는 사람들과 그조차 봐주지 않아 철탑을 타고 하늘로 올라야 하는 사람들의 시린 마음 곁이다. ‘노동의 자리’가 일상을 되찾을 때라야 꽃다지가 지켜온 ‘노래의 자리’도 온기를 머금을 테니까.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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