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무엇으로 하는 걸까. 지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대답한다면 틀렸다. 그야 지식욕도 중요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논문을 내느냐’에서 ‘펀딩을 따느냐’로얼마 전 출간된 를 보면 과학 활동 에 대한 순진한 동경은 산산조각 난다. 값비싼 기자재가 중요해지면서 과학 자들은 지원금에 목매고, 대학은 교수들에게 상당한 초기 연구비를 제공해 일단 끌어들이고는 몇 년 뒤부터는 알아서 자금을 유치하라고 하는 ‘쇼핑몰 입점 모형’으로 무책임하게 규모만 키우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히 단기간 에 성과가 나는 사업에 집중하고, 연구원을 계약직으로만 채운다. 예전에는 ‘논문을 내느냐 학계에서 사라지느냐’가 과학자들의 강령이었다면 지금은 ‘펀딩을 따느냐 굶느냐’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아마추어들을 보는 것 이다. 아마추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랑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아마토르’에 서 왔다. 다행히 제한된 주제와 영역에서나마 아마추어의 활동이 과학에 도 움이 되는 분야가 아직 있다. 천문학이다. 은 그런 ‘밤 하늘의 파수꾼들’에 대한 책으로, 천문학자 조지 헤일이 ‘어떤 일을 하지 않 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아마추어들을 잔뜩 만나게 해준다. 제 일 먼저 만날 아마추어는 지은이 자신. 티모시 페리스는 11살에 시작한 천 체 관측 경험을 살려 많은 책과 기사를 쓰고 방송을 진행하며 미국 항공우 주국(NASA)의 자문위원을 지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호에 음반이 실렸 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때 27곡의 음악을 고른 사람이 페리스였다.
페리스의 말을 따르면, 천문학에서 아마추어가 전문가에게 밀려났다가 1980년대에 복귀한 까닭은 세 가지다. 값싼 반사 망원경, 전하결합소자를 쓴 빛 감지 장비, 인터넷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경험 많은 아마추어 가 전문가보다 10배는 더 많다는 점이다. 밤하늘은 너무나 넓어 전문가들이 다 맡을 수 없다. 전문가는 한 영역을 오래 관찰하기도 어렵다. 별 이유도 없 이 한곳을 몇십 년 관찰하는 것은 아마추어만의 사치다. 그래서 밝은 신성 은 대부분 아마추어가 발견했고, 화성의 모래 폭풍처럼 일시적인 사건도 아 마추어가 더 많이 목격한다. 아마추어도 동료들의 인정이라는 보상을 추구 하지만, 전문가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전문 천문학자로 경력을 쌓 는 것은 멋진 취미를 망치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지요”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다페리스는 1부에서 자신이 천체 관측에 빠진 사연을 이야기한 뒤, 2부에서 는 태양계에 대해, 3부에서는 바깥 우주에 대해 아마추어들이 지금까지 알 아냈고 앞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 사이사이 록그룹 퀸의 멤버 브라이언 메이 같은 유명 아마추어 10여 명의 애정 고백이 끼어든다. 사람들 마음속에 우주에 대한 낭만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한 칼 세이건의 역작 를 평생의 과학책으로 꼽는 독자라면 당장 이 아름다운 에 세이를 읽으시길.
물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아마추어는 어디까지나 아마추어다. 전문가의 세계에서 제대로 된 지원 구조를 수립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애정 타령 은 과학책을 번역하지만 과학 활동에는 문외한인 나의 팔자 좋은 소리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애정은 누구보다도 지친 전문가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멈춰 있던 내 가슴이 다시 뛰는 소리를 듣는다’는 천문학자 의 추천사가 빈말이 아니다.
김명남 과학책 번역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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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