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학 교수의 는 2010년 독일 에서뿐 아니라 지난해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었다. 와 함께 ‘연작’으로 묶일 수 있는 는, 독일에서는 보 다 한 해 먼저 출간됐으나 한국에서는 보다 한 해 늦은 올해 초 에 소개됐다. 원래 지은이가 펼치는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두 작품을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에서는 이처럼 뒤바뀐 순서가 의외의 효과를 낳기도 했다. ‘피로사회’라는 문제의식을 접한 뒤 ‘휴 식’이나 ‘느리게 살기’ 같은 도피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뒤이어 찾아온 는 그 꿈이 얼마나 얄팍하고 공허한지 알려준 것이다.
시간의 속도가 문제가 아닌 ‘시간혁명’는 서구 근대의 끄트머리에서 시간의 의미를 묻는 책이다. 지은이는 서구 근대의 계몽주의적 시간관이 늘 끝이 아닌 ‘새로운 것’을 향 해 가는 것을 강요해왔으며, 이 때문에 시간의 ‘안정성’이 무너지고 시간의 고유한 향기가 사라졌다고 진단한다. 원래 시간은 존재의 처음에서 시작해 끝까지 흘러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모든 것을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한 서 구 근대의 세계관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매진할 뿐 ‘주어진 것’으로서의 끝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간은 적절한 시 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곧 이런 시간관은 ‘주어진 것’ 없이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시간을 노동과 소비에만 붙들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시간은 왜 노동과 소비에만 붙들려 있는가? 지은이는 헤겔이나 마르크스 등 세계를 인간의 의지에 복속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을 ‘자유’로 인 식했던 서구의 철학자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시간이 아니라 남
에게 주는 시간, 사물을 관조하고 사색하는 시간, 목적 없이 배회하는 시간 과 같이 노동과 소비에 붙들리지 않는 완전히 ‘다른 시간’을 창조해내야 한 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시간혁명’이라고 부른다. 곧 시간의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소비에 빠져들지 않는, 고유의 향기를 지닌 시간을 재창조해 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과 소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간관은, 무한정한 자 유가 결국 자신을 착취하는 폭력이 되어버리는 ‘피로사회’의 배경이다.
“에서 말하려 했던 건 ‘분노’”올해 초 이 책의 출간 기념차 방한한 지은이는 가 한국 사회에 서 불러일으킨 논란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마저 한국 사회에서 ‘힐링’ 담론으로 소비됐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내가 에서 말했 던 것은 ‘분노’다. 나를 치료하겠다는 ‘힐링’은 ‘킬링’일 뿐이며, 문제는 사회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혼자서 휴식이나 느리게 살기를 해봤자, 그것을 노동과 소비를 위한 ‘재충전’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에선 아무런 의미를 지 닐 수 없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한겨레 오피니언부 circl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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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