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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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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 너무 쉬웠던 남자의 사랑

<완득이> 작가 김려령의 ‘강도 센’ 첫 성인소설,
폭력은 가혹하고 사랑은 농도가 짙네
등록 2013-07-18 14:26 수정 2020-05-03 04:27
김려령 지음/창비 펴냄/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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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만들어진 를 비롯해 같은 ‘청소년소설’로 인기를 얻은 작가 김려령(42)이 어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첫 소설 를 내놨다. 청소년소설 작가의 첫 성인용 소설은 생각했던 것보다 강도가 세다. 소설의 큰 주제 둘을 폭력과 사랑이라 할 수 있을 텐데, 폭력은 가혹하고 사랑은 농도가 짙다.

사막 같은 남자, 단비 같은 여자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잘나가는 남자 작가 정수현. 문학잡지를 내는 출판사의 편집자기도 한 그는 여자한테서 ‘예쁘다’는 말 을 들을 정도로 준수한 외모를 지녔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사막처럼 메마르고 거칠기 짝이 없다.

그 사막의 바탕에 있는 것은 순탄하지 못한 가족사. 자식 끼니를 챙기기보다는 뭇 사내들과 보내는 열락의 시간을 소중히 여 기는 어머니, 그리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형. 가정 내 폭력이라고는 하지만,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셌고 견디다 못한 형 제는 술에 취한 아비를 죽음 쪽으로 떠민다. 시궁창이라 표현되는 환경에서 수현은 타고난 재능 덕에 탈출했지만, 여전히 그 속에 서 허우적대는 형과 다툼 끝에 형을 때려 죽인다.

수현을 둘러싼 사막 같은 환경이 부모와 형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사랑 없는 결혼 끝에 자살한, 역시 작가인 아내의 그림자 또한 짙게 드리워져 있다. 주변에 냉기와 적대감을 뿜어대는 것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삼았던 아내의 자살을 조장 내지는 방조했다는 자책감이 수현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이토록 어둡고 삭막한 수현의 삶에 찾아온 햇볕 혹은 단비 같은 존재가 후배 여성 작가 서영재다. 일을 핑계로 만난 두 사람 은 순식간에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고, 그 사랑은 애틋하면서도 격렬하다. 그렇지만 이미 마음속에 사막을 키우고 있는 수현에게

그것은 결코 순탄하거나 행복할 수 없는 사랑. 수현은 사랑의 한가운데에서 그 종말을 예감한다.

“사람을 죽이는 게, 사람이 죽는 게 너무 쉬웠다. (…) 아버지와 형, 내가 죽인 것일지 모르는 아내. (…)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우리가 지 금 하는 것이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재가 아프지 않았 으면 좋겠다.”

“당분간은 일반 소설에 집중할 생각”

사랑의 절정이라 할 무렵, 수현이 영재를 상대로 갑작스럽고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는 대목은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재의 얼굴을 향하는 제 손을 두고 수현은 “누군가 내 손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는 어쩐지 에밀 졸라식 자연주의의 냄새가 난 다. “일하며 사랑하는 삶을 원했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고 토로하는 수현을 자연주의가 말하는바 유전과 환경의 포로라 할 수 있지 않겠나.

내용을 요약하고 보면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 같지만, 작가는 문단 안팎의 우스갯소리와 작가들에 관한 풍자로 균형을 맞춘다. 책을 내고 지난 5월25 일 기자들과 만난 김려령은 “내 원래 전공이 소설인데 청소년물을 먼저 발 표하다보니 청소년물 작가로 굳어진 느낌이 있다”며 “앞으로는 성인물과 청 소년물을 가리지 않고 쓰겠지만 당분간은 일반 소설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재봉 기자 한겨레 문화부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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