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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의 거짓말 “또 다른 세계는 불가능하다”

저성장의 원인은 불평등이라는 스티글리츠… 가진 것 지키려는 1%의 ‘이념전쟁’에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정책 반대로 하면 된다” 역설
등록 2013-07-18 13:47 수정 2020-05-03 04:27
조지프 스티글 리 츠 지 음, 이순희 옮김/열린책들 펴 냄/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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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더는 빚(학자금 대출)을 내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극심한 절망감과 환멸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유한 부모의 도움을 받아 무보수 인턴으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있는 또래 학생들을 볼 때면 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서민층 자녀들은 무보수 인턴 자리를 유지할 경제력이 없었고, 장래성을 따질 여유도 없이 닥치는 대로 임시직 일자리를 잡아야 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가 신작 에서 묘사한 미국 대학생들의 상황이다. 너무 비슷해 한국이라 착각할 정도다.

한국이라 착각할 것 같은 비슷한 미국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때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1%의, 1%를 위한, 1%에 의한’ 나라로 전락한 미국의 불평등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재 미국 상위 1%에 속하는 가구가 소유한 부는 미국인 표본가구가 소유한 부보다 225배 많다. 이는 1983년보다 2배나 심해진 것이다.

불평등은 단지 도덕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그는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내총생산이 감소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 불안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돈이 상위 1%에게만 집중되면서 서민층이 쓸 돈이 줄어들고, 그 결과 소비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저성장의 원인은 분배가 아니라 불평등인 셈이다. 상위 1%의 소득 가운데 5%포인트만 하위계층이나 중위계층에게 이동시켜도 국내총생산(GDP)은 1.5~2%포인트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 스티글리츠 교수의 분석이다.

하지만 불평등을 완화시킬 책무가 있는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부추기고 있다. “오늘날 정치라는 싸움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상위 1%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게임의 규칙’을 정하기 위해 정치권에 막대한 선거자금을 대고, 정치인이나 관료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좋은 자리를 제공해 금전적 보상을 해준다.

하지만 미국은 민주주의 사회이고,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99%가 뭉쳐서 이런 상황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그들은 부지런히 ‘관념 전쟁’ ‘이데올로기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상위 1%에게 이로운 것은 만인에게 이롭다” “상위 1%가 원치 않는 일을 하면 나머지 99%가 피해를 입게 된다” 같은 관념을 99%에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런 관념들은 “상위 1% 쪽에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일갈한다.

1%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어떤 정책이 1%의 이익에 부합하고 어떤 것이 99%의 몫을 키우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부자 감세, 작은 정부, 민영화, 규제 완화, 복지 축소를 통한 재정 적자 감축, 노동시장 유연화, 중앙은행 독립성과 물가 안정의 절대시 등은 전형적인 1%를 위한 정책이다.

‘전문가’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상위 1%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열심히 99%를설득하지만,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일반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는 민주주의를 확보하고 지금까지 해온 경제정책을 반대 방향으로 바꿔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이런 의문들에도 답을 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왜 계속 낮아지는지, “경제민주화를 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전문가’가 왜 그렇게 많은지, 경제관료들이 왜 민간기업이나 은행의 고위직으로 척척 들어앉는지.

안선희 기자 한겨레 문화부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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