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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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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 같잖은 깡패의 운명

깡패들의 주먹 다툼으로 소개된 <개들의 전쟁>, 기실 청춘의 한순간 함께 노는 게 즐거운 패거리 이야기
등록 2013-01-11 02:21 수정 2020-05-02 19:27

영화 이 개봉 일주일 만에 2만 명 관객을 넘기며 장기 상영에 들어갔다. 이후 조폭 장르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폭력을 당연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은 기존 장르와는 다른 자세를 취한다. 이 한 편의 매서운 독립영화는 기존의 ‘조폭 영화’와 어떻게 다르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어느 찌질한 양아치들의 싸움, 그뿐이다. 영화 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폭력을 당연시하는 기존 조폭 영화와 달리 깡패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느 찌질한 양아치들의 싸움, 그뿐이다. 영화 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폭력을 당연시하는 기존 조폭 영화와 달리 깡패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심각한 싸움, 한심한 구경거리

에는 두 명의 두목이 나온다. 시골 마을을 현재 휘어잡고 다니는 상근과, 왕년에 형님으로 군림하다 몇 년 만에 귀환한 세일이 그들이다. 깡패의 세계에 두 명의 두목은 존재할 수 없기에 둘은 일전을 벼른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신경전이 먼저다. 세일은 상근의 기를 꺾고자 인사를 받아내려 애쓰고, 실세임을 증명하려는 상근은 몸을 굽히지 않으려고 바동거린다. 두 파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키려는 공간은 다방 앞의 빈터다. 남자들의 영역 싸움이 그렇지만서도 부질없는 일에 자존심을 거는 두 남자의 다툼이 한심스럽다. 과거의 지위를 회복한 세일은 속칭 ‘빠따’로 상근 패거리를 다스린다. 행인들이 볼 수 있게끔 트인 곳에서 의식을 펼치며 지위를 자랑스럽게 알린다. 때리고 맞는 양쪽 인간들은 심각한데, 동네 사람들은 한심한 구경거리 정도로 쳐다본다. 두 명의 두목 탓에 조용한 마을에 헛된 먼지만 날린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앞장서서 지휘하기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이 있다. 남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에 복종하는 친구들을 보는 걸 즐기는 골목대장에게 적당한 미래는 첫째 정치인이요, 둘째는 깡패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학생회장 선거에 떨어져 분하다고 며칠을 내리 결석했던 아이가 옆 반에 있었다. 우두머리의 꿈을 버리지 않은 녀석은 결국 대학에서 총학생회장으로 뽑혀 오매불망 지도자의 꿈을 이뤘고, 졸업 뒤에는 국회의원 비서관이 돼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그가 지금 뭐하는지 나는 모른다. 부리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곁의 누군가를 괴롭히며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영화 는 세관공무원으로 일하다 조직폭력배의 세계로 진입한 남자 최익현의 이야기다.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성격 탓에 두목으로 행세하던 그는 결국 진짜 두목 형배에게 덜미를 잡힌다. 부산 깡패 형배는 익현에게 “다시는 이쪽 세계에 발 들이지 마이소”라고 충고한다. 깡패는, 익현처럼 나이 든 남자가 선택할 만한 직업이 못 된다. 싸움에 나름의 영재 기질이 있는 아이들이 꿈을 안고 도전하는 직업이 깡패인데, 그런 자들이 뒤늦게 뛰어든 익현을 진짜 형제로 취급할 리 없다. 익현의 실패는 예고된 것이다.

악당은 죽어야 한다?

은 ‘걸작’ 조폭 영화와도 결을 달리한다. 시리즈는 갱스터를 다룬 걸작으로 불린다. 콜레오네 가족의 연대기는 우아하고 정교하며 드라마틱해서 미국 현대사와 권력의 본질을 읽는 텍스트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야기는 갱스터 혹은 깡패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비단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갱스터 영화들이 실패한 부분이기도 하다. 진한 아우라를 풍기는 지하세계의 인간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인물이지 현실과는 동떨어진 존재다. 그런 점에서 갱스터의 정체를 저급한 비즈니스로 읽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들은 차별화된다 하겠으며, 스코세이지를 넘어 재평가해야 할 작가는 아벨 페라라다. 페라라는 아예 ‘악당은 죽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깡패는 모순을 타고난 존재다. 깡패의 품성은 위계질서를 부정하기 마련인데, 그런 치들이 구성한 지하세계는 위계가 가장 극악한 곳이다. 내재한 모순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의리’ 따위를 내세워보지만, 모순 앞에 답은 없다. 또 하나, 노동하지 않고 자본을 부당 획득하는 갱스터는 선한 사회의 악을 대표한다. 주먹으로 군림하며 성장한 깡패들이 노동하기를 바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므로, 그들의 악은 반복 재생산된다. 결국 페라라의 답이 맞다. ‘악당은 정말로 죽어야 한다.’

은 당의를 입힌 감동적인 깡패 영화의 길을 걷지 않는다. 페라라처럼 어린 깡패들에게 심각한 운명의 무게를 얹지도 않는다. 동네 사람의 빚을 정리해주는 과정에서 상근은, 수많은 영화의 선배 깡패들이 했던 행동을 답습한다. 그러나 상근과 그의 친구들은 깡패의 속성인 쾌락에 잠시 몸을 맡긴 아이들이며, 은 같잖은 드라마에 기대며 아이들에게 깡패의 운명에 관해 가르칠 마음이 없다. 깡패들의 주먹 다툼으로 소개된 은 기실 청춘의 한순간에 함께 노는 게 즐거운 패거리의 이야기다.

“어디 갈까” “좋은 데요”

영화 에서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아름다운 이야기’ 중 어느 것을 믿느냐고 묻는다. 당연히 답은 전자이지만, 스크린을 앞에 두었을 때의 선택은 다르다. 관객은 스크린에서나마 아름다운 이야기를 원한다. 에서 비 오는 날, 둑 위에서 오줌을 누며 장난질하는 아이들에겐 어떤 무거움도 느껴지지 않으며, 영화는 아이들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선에서 끝을 맺는다. 그게 옳다. “어디 갈까”라는 상근의 말에 막내는 소리 높여 “좋은 데요”라고 답한다. 좋은 미래를 선택하는 건 영화가 아닌 청춘의 몫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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