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새나라택시 운전기사였다. 신작로를 누비던 위세 당당한 택시의 주인답게 안방에는 운전할 때만 입는 제복을 항상 걸어두었다. 아버지가 개인택시 운전대를 이어 잡을 때까지 가업은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렸다. 외환위기로 성장에 제동이 걸릴 때까지는 그랬다. 3대째 장손은 생계에 떠밀려 돌고 도는 운전대를 잡았다.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군생활을 보냈고 대리운전, 배달운전으로 들쑥날쑥한 화가의 생계를 메우다가 아예 ‘아트택시’란 걸 차렸다. 2009년 충북 청주에서 벌인 홍기사 대리운전 프로젝트와 2011년 제주도 가시리 마을 홍반장 아트택시 프로젝트, 그리고 경북 영천, 서울 창동, 경기도 파주 등에서 건수만 잡으면 공짜 택시를 몰았다. 타는 것은 공짜지만 이야기값을 치러야 한다. 주민들이 택시 기사와 말을 섞고 가끔 내심을 털어놓는 장면은 영상으로 유튜브에 올랐다. 택시 기사 노릇을 한 홍원석 작가는 운전할 때 보이는 풍경을 그린 등 회화 작품으로 데뷔한 화가다. 홍 작가의 아트택시는 요즘 서울 문래동에 장기 정차 중이다.
홍원석 작가의 설치·영상전 ‘문래 일기’가 1월4일부터 28일까지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린다. “경기도 파주의 작업실 근방에 아웃렛이 들어선 뒤 사라지는 파주의 풍경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시회가 지난해 열린 ‘시발 뉴 아트택시 프로젝트’다. 파주 전시가 끝나고 욕심이 생겼다.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더 깊이 개입해서 확성기 노릇을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찾은 곳이 예술가들에게 익숙하고 동시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공간, 문래동이다.”
사실 홍 작가가 ‘확성기 노릇’을 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 용산의 남일당 참사를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2009), 강정마을을 그린 (2010), 그리고 연애와 공존하는 살벌한 세상의 풍경을 담은 (2012) 등에서 그를 스친 사회적 이슈를 그림으로 남겨왔다. 아트택시가 강정마을에 지나치게 자주 들락거린다고 해서 가시리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를 윗세대 민중화가와 한데 엮는 것은 곤란하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전시가 없을 때는 땅거지처럼 사는” 가난한 그의 젊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다. 현장을 중시하지만 그 현장도 생계를 위해 고속도로에서 막노동을 하는 그의 일상과 그리 다른 곳은 아니다. “문래동은 아버지를 닮았다. 1960~80년대에는 철제상, 제조공장 등이 몰려들어 산업 발전의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대규모 공장들이 시외로 빠져나갔지만 아직도 문래동의 중심은 근현대를 상징하는 철공소 거리가 차지하고 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신 뒤 일도 못하고 동생 집에 얹혀 사는 아버지 팔자처럼 이 거리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문래동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재개발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각색하고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까, 출발은 그랬다.”
‘문래 일기’는 홍원석 작가와 그의 아버지 홍규호(66)씨가 출연하는 3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중심이 된 전시다. 재개발을 앞두고 문래동에 사는 예술가들과 철공소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을 이사시킬 목적으로 젊은 택시 운전사와 나이 든 택시 운전사가 문래동으로 파견된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서 만난 두 택시 기사 부자는 “쇠 만지는 놈들은 단순무식하기 때문에 섣불리 손대면 뜨거운 맛을 볼 것”이라거나 “갈 데도 없고 철공소 정리하면 거지 되는 것”이라는 작은 공장 사장님들 말에 망연자실하다가 “재개발이야 언젠가 하긴 하겠지만 우리가 있을 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대책 없는 예술가들 말에 더욱 대책이 없어진다. 애당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나 벙커가 기념비적인 공간을 차지하는 이 이상한 거리에 발을 들인 것이 잘못이었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뒤집힌 아트택시는 작가의 운명일까, 아니면 문래동의 운명일까.
다음 프로젝트는 평양행 아트택시“가난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속수무책이면서도 ‘재개발은 금방 안 된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러나 강정에서 겪어보니까 순식간이었다. 어쨌든 철공소와 예술가들이 한데 섞여 사는 이 불안한 공동체마저 재개발되는 순간에 깨질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지난해 9월부터 문래동 철공소 거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시작했다는 홍원석 작가는 사라질 문래동과 아버지를 동시에 영상으로 담아 우리가 잃게 될 것에 대한 기념비를 세우려 한다.
국가적인 정치 풍경과 개인의 역사를 한데 짜맞추는 특유의 작업 방식을 거듭해온 작가는 벌써 다음 작업을 준비 중이다. “평양행 아트택시를 운행할 예정이다. 지난 전시에서 평양행 아트택시 승객을 모집했다. 사연을 읽어보니 짐작했던 것과 달랐다. 어떤 중학생은 평양 여행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이혼한 부모님과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당장 실현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신청서를 작성해서 통일부에 내려고 한다. 거절을 당하더라도 세련되게 당하고 싶다.” “예술적 상상력도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못하는 게 답답하다”는 홍 작가는 상상력을 넓히는 것을 무기로 삼는다. 그리고 그의 붓은 4개의 바퀴가 달린 발 빠른 택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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