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의자를 사는 걸 고민하나. 그리고 침대를, 책상을, 화장대를. 디자이너 이석우(34)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평생 두 번 가구를 산다. 결혼할 때, 그리고 그 가구를 버리고 새로 살 때.” 가만 보니 그랬다. 우리가 공간과 용도를 고민하며 가구에 몰두할 때는, 생애 여러 번 되지 않는다. 늘 앉고 기대고 만지는 물건인데 그동안 너무 소홀했는지 모르겠다. 가구를 선택하는 한국인들의 생각은 보수적인 편이다. 어르신 방에는 자개농이, 젊은 커플 방엔 희고 반듯한 가구가, 학생 방에는 책장 딸린 책상이 공식처럼 놓여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파트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하자 새로운 공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관심은 자연히 공간을 채우는 가구로 옮아왔다. DIY(Do It Yourself) 열풍이 보수적인 가구시장의 틈을 여는 듯하더니, 오래 두고 쓰는 물건인 만큼 사람들은 전문가의 손을 거쳐 좀더 단단하게 가공된 제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젊은 가구 디자이너들의 등장과 맞물린다. 이들 중 헌 재료에 담긴 이야기를 재해석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2~3년, 디자인업계에서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이 유행이다. 업사이클링은 오래된 제품을 그 기능 그대로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창의성과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디자인 컨설팅 회사 SWBK를 운영하는 이석우·송봉규(33) 대표는 가구 브랜드 ‘매터앤매터’를 론칭하며 ‘본의 아니게’ 업사이클링 시장에 뛰어들었다.
두 디자이너의 본래 업무는 고객이 의뢰한 콘셉트에 맞춰 디자인 서비스를 제시하는 일이다. 마감에 쫓겨 일을 하다 숨 돌릴 틈이 필요하면 가끔 낙서처럼 가구 스케치를 하곤 했다. 드문드문 쌓이는 낙서는 자기만의 것이었다. 디자인을 제시하는 공간에 한국적 정서가 녹아 있는 가구를 채워 넣어보고 싶었다. 직접 제작에 나서기로 했다.
제작에 뛰어들어 첫 번째 고민은 머릿속으로만 그려온 가구를 어떤 재료로 구현할 것인가였다. 업체에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견본으로 받았다. 그중 눈에 띈 것이 오래된 폐목재다. 인도네시아의 낡은 집, 헌 배 등에서 뜯어낸 나무를 가구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시간과 역사를 품은 소재에 구미가 당겼다.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미 집이나 배로서 20~30년 동안 숨을 쉰 나무는 새로 자른 나무와 물성이 다르다. 습기와 짠 기운을 견뎠고 그러면서 더 탄탄해졌다. 새 나무로 짠 가구는 기후가 다른 한국에 와서 틀어질 수도 있는데, 폐목재를 이용하면 그런 가능성이 적어진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가지고 재료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업사이클링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것. 사실은 디자이너로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착한 디자인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먼저는 아니었다.” 송봉규씨의 말이다.
폐목재를 가구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매터앤매터가 처음은 아니다. 네덜란드 출신 산업디자이너 피트 헤인 에이크는 가장 자주 예시로 활용된다. 그는 전통 주택이 철거된 현장에서 나온 목재 등을 이용해 의자며 테이블 등을 만든다. 이석우씨는 자신들의 작업이 피트 헤인 에이크 등의 작가와 비교해 좀더 많이 대중과 공유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피트 헤인 에이크가 예술적 경지의 소규모 작업을 한다면, 우리는 대량생산에 가치를 두고 최대한 많은 제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민주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산업디자이너다.”
지난해 처음 라인업을 하고, 매장도 없이 출발한 매터앤매터는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입은 현상 유지 수준이다. 자신들의 컬렉션을 이어나가려면 부지런히 컨설팅 업무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구에 도전한 이유는 한국에서 가구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 갔을 때 놀랐다. 수입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의자나 찻주전자 등 일상에서 자주 쓰고 중요한 물건은 가치 있는 것을 사더라. 가치 있다고 비싼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그곳 사람들은 유명한 제품을 복제한 의자에 앉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시민 의식이 부러웠다. 한국에서도 이제 새로운 개성을 인정하는 세대가 나타난 듯하다. 물론 이미 훌륭한 가구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가구를 물었을 때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머무르고 생활하는 곳의 정서가 녹아 있는 가구를 만들고 그런 것에 대한 담론을 키워나가고 싶다.”
이석우·송봉규씨가 대량생산을 통해 민주적 디자인을 추구한다면, 서울 용산구에서 길종상가를 운영하는 박길종씨는 소비자와 1대1로 만나며 새로운 소통을 시도한다. 그는 목수라기보다 잡다한 일을 마다 않는 전방위 디자이너다. 그는 ‘걷다 사진관’을 통해 일상의 다양한 재치를 포착하고, ‘간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을 때나 일손이 부족할 때 언제든 나타나 해결에 나선다. 동시에 몇몇 상인들이 입점해 있는 길종상가 관리일지를 쓰는 관리인이기도 하고, ‘한다 목공소’를 통해 가구를 제작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저명한 의자 디자이너인 레이 임스는 “모든 것은 다 연결되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아이디어와 아이디어, 소재와 소재… 결국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상품의 질이 판가름 난다”고 말하지 않았나. 박길종씨 또한 다양한 작업을 통해 어떤 연결 고리를 찾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하는 많은 일 중 가구 만드는 일은 5%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박길종씨는 새로운 감각의 가구 디자이너로 슬금슬금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서양화를 전공한 박씨는 졸업 뒤 화가 어시스턴트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DIY 공방에서 일하게 됐다. 1년 가까이, 나무를 나르고 작업을 도와주는 등 그야말로 ‘잡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가구 만드는 것을 배웠다. 그러다 자연스레 동네에서 버려진 물건을 하나둘 주워와 새로운 물건으로 재가공하는 자신이 있더란다.
그는 여러 곳에서 주목받는 신예 가구 디자이너로 꼽히지만 정작 본인은 ‘가구’라는 말을 쓰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가구라는 단어보다 어떤 용도나 기능을 가진 장치나 물건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예컨대 책상도 책상이라 하지 않고 ‘책상 용도’라 부르면 어떨까. 의자도 ‘의자 높이’라고 부르는 거다.” 그러면 이런 물건들이 본래 기능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넓은 범위로 활용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씨는 사용하지 않아서 버려진 물건이 다른 기능과 용도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특히 흥미롭다. 그가 처음 가구 비슷한 물건을 만들었을 때, 선택한 것은 어떤 종류의 나무가 아니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길에서 얻어온 사물들이다. 지금은 한 달에 한두 건 작업을 할 정도로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는 편인데 여전히 폐자재를 자주 활용한다. 예컨대 한 사무실의 가구 리모델링을 의뢰받았다면 책상과 책장을 새것으로 짜맞추기보다 사무실을 치우며 나온 목재를 모아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드는 식이다. 번쩍하는 새로움은 없더라도 새 숨을 얻은 헌 가구는 본래 공간에 녹아들게 마련이다.
혼자 재료를 찾고 디자인하고 심지어 배송까지 하는 박씨는 가구를 만들 때 서두르지 않는다. 대부분 주문 제작이어서 느려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제작 과정은 이렇다. 가구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약속을 잡고 가구가 놓일 곳을 방문한다. 의뢰인과 대략의 사이즈, 어떤 기능과 용도로 쓸 것인지를 의논한다. 의뢰인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테이블이더라도 밥 먹을 때 자주 쓸지 컴퓨터를 할 때 자주 쓸지, 서랍이 있으면 좋겠는지 없으면 좋겠는지 등 기능적인 사항까지 시시콜콜 물어본다. 매번 이런 식이다 보니 금액은 대중없다. 비슷한 크기의 의자를 만들더라도 들어가는 재료와 공이 다르니 가격이 2~3배까지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단다. 만들다가 아이디어가 더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물건을 다 만든 뒤 가격 책정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데, 고객에게도 예산이란 것이 있으니 그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곤혹스럽다. 그런 현실적인 불편함이 있음에도 그는 똑같은 모델을 만들어 대량생산해 가격을 매겨두는 방식보다는 하나씩 다르게 만드는 것이 훨씬 즐겁다. “2010년 말부터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몇십 년 동안 이런 작업을 한 분들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됐다. 내 것이라고 특징지을 것도 꼭 집어서 말하기 힘든데. 뭐랄까, 아직은 사춘기라고 본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과정을 지나고 있다.” 박길종씨의 말이다.
매터앤매터의 이석우·송봉규씨는 9명의 스태프와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 의자며 책장을 만든다. 그리고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많은 고객들이 공유한다. 그들이 생각하고 선택한 가장 민주적인 방식의 디자인이다. 박길종씨의 경우는 반대다. 혼자서 작업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든다. 그러나 그 또한 여럿에게서 도움을 얻고 있었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에 살고 있는 그는, 동네 어르신들이 버려진 물건을 어떻게 재가공해 사용하는지를 언제나 눈여겨본다. 등판이 떨어져나간 의자를 주차금지 표지판으로 쓰고, 맥주 박스 위에 푹신한 쿠션을 얹어 의자로 사용하는 재치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의 디자인은 독특하지만 한편으론 가장 대중적인 방식의 디자인인 셈이다.
를 쓴 살로트와 피터 필은,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꽃이라 일컫는 자동차 품목을 빼면 실제로 가장 속 썩인 골칫덩이는 가구, 특히 의자였다고 한다. 지난 150년 동안 의자는 진화를 거듭해왔고 동시대의 건축과 기술의 진보에 발맞춰 형태를 발전시켰고, 사회의 변화무쌍한 요구와 이해를 발 빠르게 충족해왔다. 그러니 의자의 역사는 미시적 의미에서 디자인의 역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2012년 한국의 젊은 가구 디자이너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의자 혹은 의자 높이의 무언가를 만들며 그런 역사를 쓰고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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