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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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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노래 신드롬

가수들이 예능하던 시대에서 예능인이 가수하는 시대로… 정형돈, 유재석, 용감한 녀석들 등 부르는 이의 캐릭터와 취향이 반영된 노래들
등록 2012-07-14 14:01 수정 2020-05-03 04:26
MBC every1 제공

MBC every1 제공

시작은 UV였을까, 아니면 이었을까. 개그맨들이 부른 노래의 역사를 따지자면 영구가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 고민하던 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개그맨들의 노래가 아이돌의 신곡이나 드라마 OST에 버금가는 음원 성적을 올리며 대중적인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은 UV의 데뷔와 의 가요제 특집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UV의 와 출연자들이 뮤지션과 짝을 이뤄 부른 노래가 음원 차트를 점령한 지 1년이 지났다.

‘형돈이와 대준이’를 아시나요?

다시 여름이 찾아오자 정형돈은 데프콘과 ‘형돈이와 대준이’를 결성해 를 히트시켰고, 유재석과 이적은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특집을 마무리지은 지 딱 한 돌이 되는 날 ‘처진 달팽이’의 신곡 의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유세윤은 UV 활동을 이어오다 최근 솔로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의 한 코너인 ‘용감한 녀석들’ 멤버들도 동명 그룹을 만들어 가수로 활동 중이다. 가수들이 예능을 하던 시기를 지나, 예능인들이 가수가 되는 일 또한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개그맨들의 음반·음원 발표가 대개 기존 뮤지션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는 이벤트 성격을 띠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의 노래를 음악 자체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형돈이와 대준이’나 ‘용감한 녀석들’의 경우 스스로에게 ‘신인가수’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부여해 예능에서 응용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음악이 웃기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독적인 후렴구를 반복하며 밤에 온 전화를 “김미영 팀장이니까 받지 마”라고 경고하는 의 가사는 코믹하지만 갱스터랩이라는 장르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용감한 녀석들’의 <i care>도 유치한 웃음보다는 가사를 통한 풍자에 충실하다. 이런 작업은 협업을 하는 뮤지션에게도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다. 힙합 음악을 하는 데프콘은 대준이가 돼 대중과 더 친밀해지고, 가요제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그랬던 것처럼 음악이 예능을 만났을 때의 파급력을 얻을 수도 있다. 개그맨이 가수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긍정적 작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획의 맛이 오히려 덜한 노래
무엇보다 음악적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 개그맨들의 기존 캐릭터, 취향에서 출발하는 것은 흥미롭다. ‘형돈이와 대준이’의 1집 은 가요제에서 ‘아빠·엄마 1200원 주세요’를 외쳤던 정형돈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처진 달팽이’가 불렀던 는 유재석의 젊은 시절 별명이자 그가 다른 여러 특집들에서 소화했던 캐릭터다. 그리고 유재석의 취향인 복고풍 댄스음악은 그대로 노래에 반영됐다. 뮤지션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가요제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이라는 예능의 기획이지만,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는 개그맨들 개인의 취향이 개입되는 것이다. UV는 먼저 노래를 선보인 뒤 이후 그들의 캐릭터에 맞춰 <uv>이라는 예능이 생겨났는데, 이들 또한 자신의 취향을 기준으로 음악을 만든 것은 동일하다.
UV는 듀스로 대변되는 1990년대풍의 힙합 장르뿐 아니라 의상과 분위기까지 따왔고, 그것을 동시대의 가수와 자신들을 차별화하는 특징으로 만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이야기와 취향이 우선시되는 이런 과정은 철저한 기획으로 만들어지는 가요계의 일반적인 방향을 거꾸로 가는 것이다. 아이돌 중심으로 비슷한 음악이 유행처럼 양산되거나 경연과 서바이벌로 기존 가수들도 ‘다시 부르기’를 반복하는 상황 속에서 뚜렷하게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개그맨들의 노래가 좀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중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TV, 그것도 예능으로 제한된 기형적인 상황에서 그 창구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그맨들의 성공은 당연하다. 리얼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오디션 할 것 없이 예능이 음악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흐름을 탄 것도 맞다. 이들의 성공을 시작으로 그 틀에 맞춘 기획이 유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도,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다.

“가수보단 음악이 하고 싶네”
“그런데 이번엔 또 음악이 하고 싶네 뮤지션이 되기보단 음악이 하고 싶네” 에 출연하며 발표한 솔로곡 에서 유세윤은 이렇게 노래했다. 정형돈과 유재석은 이 23주째 결방되는 상황에서도 의 캐릭터를 이어가며 음원을 냈다. 유세윤이 ‘도대체 뭐가 예술이야’를 묻는 예술가의 길을 간다면, 정형돈이나 유재석은 예능으로 쌓아온 이야기를 노래로 또 이어가며 음악까지 포함한 엔터테이너의 길에 있다. 뮤지션이 아니어도 하고 싶은 음악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며. 그들은 웃기지만 우습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도 그렇다.
윤이나 TV평론가</u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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