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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듯 음악을 썼어요”

정태춘·박은옥, 10년 만의 새 음반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강렬하고 내면적인 정서적 공명 불러일으키는 노래들

제899호
등록 : 2012-02-24 15:41 수정 : 2012-02-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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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박은옥의 새 음반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집어들었을 때 모종의 ‘메시지’를 떠올리는 건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다. 노숙인의 죽음을 다룬 <서울역 이씨>와 ‘이 땅의 순정한 진보 활동가들과 젊은 이상주의자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녹음한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음반의 양 끝에 배치한 구성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9곡이 담긴 40분 남짓한 음반을 다 듣고 나서 다른 무엇보다 여기 담긴 ‘음악’이 마음을 잡아끈다. ‘저항’이나 ‘투사’ ‘메시지’ 같은 어휘로 이 음반을 충분히 수식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음반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하고 내면적인 정서적 공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월14일 정태춘씨가 소속된 다음기획 사무실에서 10년 만에 음반을 낸 그를 만났다.

가수 정태춘(오른쪽)·박은옥씨가 “사적인 독백 같은 이야기”를 담아 10년 만에 새 음반으로 돌아왔다. 음반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강렬하고 정서적인 공명을 일으키는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뒤통수를 치는 듯한 서사의 가사

<서울역 이씨>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제외한다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중반부 7곡은 2010년 7~12월에 작곡되었다. 이 곡들의 핵심적 이미지는 ‘물’이다. ‘물’이라는 테마가 계속 반복되면서 하나의 흐름을 구성하는 가운데 가사 속의 화자는 배를 타거나, 버스를 타거나, 혹은 오리배를 타고 날아서라도 그 물을 건너 ‘땅 위에 올라가 일하고 별들과 하나가 되는’ 곳(<날자, 오리배…>)에 도달한다. 정태춘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곡을 쓰면서 계속 물 이야기가 나오는데, 쓰면서도 이렇게 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물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다시 물가로 가기도 하고…. 하지만 당시 나에게 물은 어떤 도정의 끝에 와 있는 상징, 도정 너머로 가는 통로 같은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적절한 테마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가자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도정의 끝이자 시작인 ‘물’의 이미지는 그가 ‘스스로 자신을 유배했다’고 표현하는 ‘시스템’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부적응자 혹은 이상주의자이고, 그것도 완고한 편입니다. 몇 년 전부터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고 표현해왔고, 이 음반은 그렇게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의 독백 같은 이야기입니다. 몸은 여기 있고 생활도 하지만 관념적으로는 여기에 없는 존재라는, ‘나는 여기에 부재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상주의자로서의 고민 또한 남아 있고요. 음반에 수록하려던 곡 중에 <문명열차>라는 곡이 있었어요. 결국 싣지 않았지요. 그런 이야기를 섣부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음반은 사적인 독백의 형태로 나왔고, 그 독백의 매개체가 ‘물’입니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들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가사다. <서울역 이씨>의 “어느 봄날 누군가의 빗자루에 쓸려/ 소문도 없이 사라져주듯이”라는 대목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한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숲’과 ‘심해’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병치한 <저녁 숲 고래여>나 영종도에서 티티카카 호수까지 종횡무진하며 ‘서사적’인 위엄을 풍기는 <날자, 오리배…>는 또 어떤가. 정태춘씨는 “곡을 쓰면서 음악적으로 크게 욕심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존에 하던 음악적 어법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지만 가사에는 다른 때보다 욕심을 냈죠. 노랫말의 문학성이랄까… 그런 부분들을 조금 더 충실히 해보자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노래가 붙지 않더라도 글 자체로서 완결성을 가진 가사, 튼튼한 상징과 허술하지 않은 스토리 구조 등을 가진 가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작업하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었고요. 가장 애착이 가는 곡 중 하나는 <저녁 숲 고래여>입니다”라고 가사에 고심했음을 고백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크게 욕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은 정말일까?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정태춘이 처음으로 컴퓨터 음악 프로그램인 ‘로직 프로(Logic Pro) 9’를 사용해 작업한 음반이며, 두 곡(<강이 그리워>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태춘이 직접 편곡 작업을 했다. “이 캔버스(컴퓨터 프로그램)에 어떻게 해야 풍부한 컬러와 깊이,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면서 재미있게 매달렸습니다. 샘플 음악을 폭넓게 섭렵하면서 내가 꿈꾸는 그림을 그려내기 위해 고민도 많이 했고요. 처음에는 예산이라는 면도 고려를 했어요. 일종의 ‘기념 음반’으로 만들 생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녹음은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스튜디오에서 실제 악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예산이 더 든 셈이지요.”


자진 유배는 계속된다

가사와 음악 사이의 두꺼운 점착성 또한 그의 작업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가사와 음악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가사 테마가 잡히고 멜로디 테마가 잡히면 1절을 같이 작업해요. 후렴구도 노래의 흐름과 가사의 흐름을 맞추며 패턴을 짜고요. <저녁 숲 고래여> 같은 경우 편곡 과정에서 ‘물속’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물속의 투명한 공간감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평범한 스리 핑커 포크 스타일의 곡이긴 하지만 여기에 어떻게 ‘심해’를 담을 것인가. 중간에 ‘쾅, 쾅, 쾅’ 하는 소리가 나오는데 그게 가사 속의 컨테이너를 때리는 소리입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컨테이너를 두드리는 소리지요. <날자, 오리배…>도 좋은 오디오로 들으면 2절이 시작될 때 ‘콰광’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그 역시 2절에 나오는 바이칼 호수의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연출해보려고 넣었던 겁니다.”

음반에는 강산에, 윤도현, 김C 등이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다(<날자, 오리배…>). “같은 기획사라는 인연으로 알게 됐지요. 모두 데뷔 때부터 알았습니다. 음악 쪽으로는 교분이 얇은 편입니다. 요즘 음악은 딸을 통해 조금씩 듣는 정도입니다. 거의 안 들어요.” 정태춘은 여러 곳에서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 음악 활동을 재개하는 음반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왔다. 3월6~11일 서울 KT&G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최민우 음악웹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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