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평범한 사내의 얼굴을 하고 돌아왔다. 2월2일 개봉한 영화 에서 그는 비리 세관 공무원 출신인 최익현을 연기한다. 영화 의 악마 같은 역할에서 인간의 얼굴로 돌아온 그지만 영화에서는 그만이 펼칠 수 있는 존재감이 가득하다. ‘올드보이’ 최민식이 현실의 남성배우로 돌아온 것일까? 물론 배우로서의 중량감은 여전하다. _편집자주
1989년 데뷔한 뒤로 지금까지 최민식은 만만치 않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는 그의 경력 중 오로지 영화에서만 추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박찬욱 감독의 가 섞여 있는 통에, 그는 지난 10년 가까이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그 이후로 나온 한국 영화를 소개하는 외국 언론 중 에 나온, 선글라스를 쓴 최민식의 얼굴을 화보로 수록하지 않은 기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는 건 최민식의 연기에 대한 국내와 국외 관점의 차이다. 양쪽 모두 극도로 과장된 감정이 폭발하는 오버액션을 보는 건 같다. 하지만 의 최민식을 그리스 비극이나 오페라에서 튀어나온 정형화되고 거의 추상적인 괴물로 이해하는 해외 관객들과는 달리, 한국 관객들은 그의 괴상한 연기를 훨씬 현실적이고 친근감 있게 받아들인다. 그가 박찬욱이 쓴 이상한 문어체 대사를 읊으며 도끼로 17명의 악당들을 스크롤 게임 하듯 처치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괴물 같다고 보지만 우리는 그냥 친근하게 보는 그 오묘한 간격 사이에 최민식의 연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아마 그것은 산 낙지를 씹어먹는 최민식을 보며 양쪽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의 차이와 같을 듯하다.
최민식은 ‘한국식 명연기’를 한다. 그것은 최민식이 캐릭터가 안에 품고 있는 감정을 조금의 찌꺼기나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엄청난 에너지로 폭발하듯 표출하는 배우라는 뜻이다. 종종 그의 에너지와 감정 표출은 정도에서 벗어나고 아슬아슬하게 신파의 근방을 맴돌거나 넘어선다. 물론 그는 ‘메소드 배우’이기도 하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의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이런 식의 연기를 어느 정도 편애하는 성격이 있기에, 여러분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런 불균형을 지적하기 위해 최민식의 연기를 반대되는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식이다. “관객은 아마 최민식의 요란한 연기를 명연기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는 동안 영화에 완벽히 어울렸던 아무개의 절제된 연기는 무시된다.” ‘아무개’의 자리에 들어갈 이름은 많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정말 재평가될 가치가 있는 배우들일 것이다.
이런 비유는 올바른 자리에서 쓰인다면 적절할 수 있겠지만, 배우 최민식만 평가하는 데 사용할 만큼 공평하지는 못하다. 우선 그는 절제된 연기도 잘한다. 과 같은 영화들은 과장되지 않은 최민식 연기를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그의 정적인 연기는 드라마틱한 주름진 얼굴과 적절한 조화를 이뤄 오히려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과장된 연기는 그냥 과장이 아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한국 관객들은 그의 요란한 연기에서 친근함을 느낀다.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 최민식의 과장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연기는 지독하게 한국적이다. 최민식의 연기는 그의 세대를 사는 한국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며 그곳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남성배우의 연기다. 아마 여기에서 조금 모자라는 점이 있다면, 그런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고 초월할 수 있는 통찰력이겠지만, 아직까지 최민식은 그런 것이 필요한 역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늘 한국 사회에 살면서 그 한계 속에 갇혀 사는 한국 남자를 연기한다. 심지어 처럼 극도로 과장된 만화책 복수극을 연기하는 동안에도 그는 한국 남자다. 자칫 허공에 뜬 괴물처럼 보일 수 있었던 인물이 적절한 무게와 너무 적절해서 오히려 황당한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뉴웨이브 영화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너무나 친숙한 중년의 꼰대는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모든 장점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최익현을 연기하는 배우로 최민식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연기력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연기력만으로 최민식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배우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1980년대의 지저분하고 타락한 시대를, 그가 아는 유일한 생존 방법과 상식으로 뚫고 나가는 저질스럽게 타락한 한국 남자의 이미지로 최민식의 얼굴만큼 어울리는 피사체는 찾기 힘들다. 그가 최익현처럼 타락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는 최익현이라는 남자를 알고 그런 남자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깡패질을 하면서도 종친회를 끌어오고 항렬을 따지는 중년의 꼰대. 영화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처럼 그려지지만, 이게 절대로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걸 관객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로 그런 남자. 아마 최민식에 대해 관객이 품고 있는 애증, 특히 ‘증’의 감정은 그들이 그 얼굴의 친숙함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할 것이다. 그 감정만큼 의 감상에 필수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듀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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