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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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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우아함, 익숙한 위엄

위태로운 환경과 낯선 언어도 막을 수 없었던 ‘미친 존재감’의 배우, 탕웨이… 신작 <무협>의 한정된 비중 안에서도 힘 잃지 않아
등록 2011-11-18 19:59 수정 2020-05-03 04:26
중국 여배우 탕웨이에 대한 한국인의 친근감과 호감이 각별하다.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탕웨이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자기 색깔을 남겼다. 봄비 제공

중국 여배우 탕웨이에 대한 한국인의 친근감과 호감이 각별하다. 배우로서의 자의식이 충만한 탕웨이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자기 색깔을 남겼다. 봄비 제공

언제부터인가 한국 관객은 탕웨이를 우리나라 배우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이상하지만 이해되는 걸 어찌하랴. 탕웨이는 현빈과 함께 한국 영화를 찍었고, ‘현빈 왔숑!’ 같은 유행어도 할 줄 알고, 텔레비전에서는 스마트 TV와 화장품 광고를 한다. 얼마 전 임수정과 함께 찍은 화장품 광고는 탕웨이의 목소리에 덧입힌 성우 대사를 지우고 배우의 원래 목소리를 입힌 자막판을 방영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에 몇 초 동안 헛갈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맞아, 탕웨이가 외국인이구나.

강력한 현존성을 가진 배우

이 친근함은 단순히 탕웨이가 한국 영화에 한 번 출연했기 때문일까. 여기에는 뭔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이후 중국 정부가 탕웨이에게 가한 부당한 탄압 때문일 수도 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아무리 그들의 마음에 안 드는 (사실 나도 그 영화의 내용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서 배우를, 그것도 주연배우 한 명만을 골라 두들겨 팬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이것을 기본적으로 성차별적 태도라고 본다. 이런 성차별적 태도가 섹스와 정치, 애국주의와 결합하면 대중이 습관적으로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온갖 유치한 결과가 나온다. 탕웨이의 수난은 그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짜 이유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국 관객도 그런 문제에 완벽히 무죄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가장 간단한 이유는 라는 영화의 단순한 매력에 있다. 평범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체위가 서커스처럼 연달아 나오는 섹스신들. 탕웨이는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한국 관객이 이런 영화에, 이런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에 얼마나 쉽게 넘어가는지는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단지 여기엔 차별성이 하나 존재했다. 탕웨이는 이런 성인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나는 맨 처음 예고편을 인터넷으로 보았을 때, 감독 리안이 ‘제2의 장쯔이’를 만들려고 캐스팅한 이 배우가 그리 미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배우처럼 예쁘지는 않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묘하게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1930년대 중국 상하이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몇 달 뒤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리안 감독이 이 무명 배우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강한 육체적 현존성이었다. 단순히 몸매나 외모가 예쁘다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 속 섹스신이 곡예 같은 불가능한 동작의 연속이었는데도 탕웨이가 그 일부가 되자, 그 장면들은 일반적인 영화가 보여주는 무미한 2차원의 화면이 가지지 못한 또 하나의 차원을 얻었다. 탕웨이에게는 쉽게 분석할 수 없는 지상의 느낌이 있었다.

이 영화를 살린 탕웨이의 매력이 하나 더 있었다. 이 배우는 그런 장면을 찍는 동안에도 결코 값싸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섹스신만을 보려고 영화를 찾은 관객이라고 해도 탕웨이가 이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발산한 스타로서의 위엄을 가볍게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레타 가르보나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같은 고전영화 배우들의 전통적 위엄에 견줄 만했다. 아마 탕웨이의 안정된 중저음의 목소리도 한몫했으리라. 탕웨이는 한국 관객이 목소리를 구별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중국어권 배우들 중 한 명이다. 탕웨이의 목소리 연기에는 중국어라는 언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있다. 갑자기 원래 목소리로 돌아온 화장품 광고에 몇 초 동안 놀란 시청자도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맞아, 이 사람이 진짜로 탕웨이지.

오드리 헵번을 닮은

탕웨이를 잠시나마 ‘우리 배우’로 만든 의 리메이크 영화는 이 배우의 위엄 있는 우아함이 어느 선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건 이 영화가 다소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위태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완전히 익숙지 않은 언어로 미완성 상태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여기서 일대일로 비교하는 건 부당하지만, 그래도 낯선 환경과 언어 속에서 불안하게 부유하는 상대 배우 현빈과 그 안에서도 여전히 스타다운 위엄을 잃지 않는 탕웨이를 한번 비교해보라. 이 배우의 장점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우아함이란 상황이나 대사 때문에 쉽게 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나는 이 배우를 외모 면에서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오드리 헵번과 비교하게 된다.

곧 개봉될 천커신 감독의 은 탕웨이 팬을 만족시킬 만한 구석은 별로 없는 영화다. 일단 그의 비중이 작다. 섹스신이 안 나온다. 로맨스 장면도 없다. 이 영화에서 탕웨이가 맡은 역은 후반부의 주인공 견자단의 아내로, 마리아 벨로가 에서 맡은 역을 딱 반으로 줄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배우로서 특별히 몸을 움직일 구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제한된 조건 안에서도 이 배우가 여전히 익숙한 위엄을 갖고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린 안심이 된다. 그건 앞으로 우리가 따라가며 보게 될 이 배우의 미래가 아직 창창하게 열려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듀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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