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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서울을 공유하다

개발 광풍에 휩쓸린 서울에 대한 아쉬움이 만든 지역문화 발굴 프로젝트 ‘서울을 큐레이팅하다’
등록 2011-08-12 16:57 수정 2020-05-03 04:26

서울은 거대한 전시장이다. 605.28㎢의 면적에는 행정구역으로 25개 구, 426개 동이 자리한다. 구와 동은 전시장 안에 자리잡은 작은 방과 같다. 미로처럼 자리한 각각의 방에 들어가면 동네가 지나온 역사의 흔적과 지역과 사람, 집, 길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작품처럼 걸려 있다. 오래된 작품은 오래된 대로, 새로운 작품은 새로운 대로 그 존재 이유와 가치를 드러낸다.

도시 큐레이터가 되어

70여 곳의 점집이 들어서 있는 서울 미아리 점성촌. 시각장애인들의 일터이자 보금자리이다. 한겨레 류우종

70여 곳의 점집이 들어서 있는 서울 미아리 점성촌. 시각장애인들의 일터이자 보금자리이다. 한겨레 류우종

사람 냄새와 이야기가 쌓이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이 거대한 전시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그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중이다. 재개발과 도시정비를 목표로 내건 지금의 서울은 그 작은 방들을 모두 없애고 벽을 터 하나의 거대한 쇼윈도를 만드는 작업에 몰두해 있다. 중장비가 쓸고 간 풍경마저 그 지역이 감내해야 할 변화겠지만, 그래도 남겨두고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사라진다는 점은 안타깝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 어딘가에 변하는 서울에 대한 아쉬움 한 자락쯤 품고 있을 테다.

있는 그대로의 서울을 좋아하고, 또 어쩔 수 없는 변화에 아쉬워하는 이들이 서울이라는 전시장의 큐레이터로 나섰다. 서울문화포럼은 올해 지역문화 발굴 프로젝트의 하나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6주 동안의 워크숍 ‘서울을 큐레이팅하다’를 진행한다. 서울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워크숍은 참가자 스스로가 도시 큐레이터가 되어 서울 고유의 이야기를 찾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지역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지역문화 발굴 프로젝트다.

워크숍에 지원한 60여 팀 중 10개 팀 44명이 선발돼 지난 7월28일 첫 번째 모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고등학생부터 건축학·인류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생, 문화예술계 종사자, 10년 경력의 건축 실무자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팀별로 선정한 주제로 서울의 이야기를 큐레이팅한다. 팀별로 멘토도 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궁선영 대우교수, 경희대 김일현 교수, 디자이너 양요나, 독립 큐레이터 최재원 등 7명이 멘토로 이들의 프로젝트를 도와준다.

8월4일 저녁 7시, 서울 명동에 위치한 서울글로벌문화관광센터 해치홀에서 워크숍의 첫 번째 크리틱이 열렸다. 팀별로 구체화한 프로젝트 내용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멘토의 조언을 받는 시간이다. 이들은 각자 서울의 다른 면을 주목한다. 노량진 학원가, 지하철 1호선, 서초동 악기거리, 한강 나루, 마을 프로젝트, 청량리, 해방촌, 미아리 점성촌이 이들이 점찍은 서울이다.

청량리 시장의 터줏대감을 아나요

팀별로 지금까지 진행해온 프로젝트의 과정을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소개했다. 지하철 1호선을 주제로 한 ‘블루포크’팀은 석관 초·중·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4개 학교가 운집해 있는 석계역~신이문역 구간, 고시촌과 주거구역으로 단절돼 있는 노량진역~대방역 구간 등을 다니며 해당 지역 소통의 필요성을 찾아냈다. 서초동 악기거리를 주제로 한 팀은 1960년대 낙원상가에서 시작해 1990년대 예술의전당 앞으로 옮겨간 클래식 악기 거리의 역사를, 한강 나루를 주제로 한 팀은 서울 전체 면적의 7%를 차지하는 공유지지만 지금은 개발로 인해 역사적 맥락을 잃어버린 나루의 문화·역사적 의미를 짚었다.

서울의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팀들도 눈에 띄었다. ‘청량리의 힘’팀은 청량리를 집·사람·역·움직임 등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을 통해 청량리를 재구성하면서 그 한가운데 재개발이라는 화두를 놓았다. 청량리 시장의 소리를 채집하고 상인들의 동선을 촬영해 지역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기록했다. 사람뿐 아니라 지역의 동물에도 주목했다. 청량리 시장에 터줏대감으로 자리한 세 마리의 개 개똥이·얼룩이·누렁이가 있고, 그들 사이에 영역 다툼이 있다는 이야기는 직접 발로 다녀야만 찾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해방촌을 주제로 삼은 팀은 ‘책임 있는 제안가’와 ‘진동젤리’ 두 팀이다. 하나의 공간에 대한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다. 도시 전문가가 속한 ‘책임 있는 제안가’는 2050년에 해방촌은 어떻게 변할 것이며 지금 해방촌이 갖고 있는 매력은 어떻게 지켜질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크리틱에서 남산에 위치한 해방촌이 갖고 있는 지역적 특색과 그로 인한 매력을 지역 사람들의 삶과 연계해 세밀하게 관찰한 기록을 펼쳐놓았다. 극작과 졸업생과 ‘수유+너머’ 연구원이 함께한 ‘진동젤리’는 해방촌의 주차장을 하나씩 찾아다니는 과정을 적어 내려갔다. 그 공간에서 두 사람의 시선과 움직임은 다큐멘터리나 단편영화나 다름없는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지역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팀은 ‘미아리 처녀보살 찾기’팀이다. 미아리 점성촌의 이야기를 찾아내기 위해 역술인들의 많은 수를 차지하는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지역에 다가갔다. 시각이라는 감각을 잃었지만 청각이나 후각 등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거주하는 이 지역을 시각장애인처럼 시각을 뺀 다른 감각으로 살피고 그곳에 관한 지도를 만들겠다는 설명이다.

“서울 발굴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

워크숍 참가자들은 앞으로 남은 4주 동안 관찰과 기록을 통한 지도 제작이나 웹사이트를 통한 네트워킹 등 대안을 만들어내며 각자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워크숍을 주최하는 서울문화포럼은 결과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서울문화포럼 권소영 사무국장은 “지역 창조성 지수를 만드는 등 서울 지역문화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이번 워크숍을 통해 일반인들과 이어졌다고 본다”며 “단지 아이디어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서울 지역 행정 실무자들과 연계해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또 “1기를 시작으로 2기와 3기 등 워크숍을 이어가면서 계속 서울을 발굴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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