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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강박 투애니원, 무리수를 두다

두번째 미니앨범에서 처연한 자기고백 ‘어글리’ 등 설득력 아쉬운 실험 시도해… 바뀐 것과 나아간 것은 다르다
등록 2011-08-12 16:10 수정 2020-05-03 04:26
여자 아이돌 가수 <투애니원>.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여자 아이돌 가수 <투애니원>.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여자 아이돌은 때때로 여성팬을 공략한다. 물론 노골적으로 오빠를 찾는 경우가 더 흔하지만(아이유의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소녀시대의 “오오오오~ 오빠를 사랑해”), 이따금씩 언니에게 구체적으로 연애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에프엑스의 “나 어떡해요 언니”). 최근에는 또래 여성과 더 깊숙하게 교감하려는 통 큰 시도가 있었는데 의도가 잘 전달됐는지 의문이다. 하나는 천상지희의 로, 노래 속의 화자는 날씬하지 않아 느끼는 스트레스를 털어놓는다. 대다수 여성의 현실적인 고민을 다루지만 ‘백분토론’ ‘허리 통뼈’ ‘갈비뼈’ ‘막걸리’ 등 무리수를 둔 강도 높은 어휘 선택이 전반적인 서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렸다. 또 다른 하나는 투애니원의 다. “난 예쁘지 않아 아름답지 않아”라 노래하는 것처럼 그들도 외모에 불만이 많다. 그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과연 세상은 그들에게 ‘열폭’ 혹은 ‘자폭’을 기대했을까.

<font size="3"><font color="#006699">위풍당당하다 갑작스런 ‘자폭’</font></font>

직전까지 그들은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주장했다. 성과는 떠들썩한 보도가 말해주는 대로 독일의 한 온라인 사이트 ‘비바 클럽 차트’ 1위를 기록했다. 한편 과거의 히트곡 와 는 ‘너 같은 놈 없어도 잘만 산다’는 후련한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상대를 조롱하며 얻는 쾌감은 사실 가사 이전에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가 공고하게 구축해놓은 빌보드 기반의 파워풀한 사운드, 노래 실력이 뒤져서가 아니라 랩의 미학을 조금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수준 높게 쏘아붙이는 구성원들의 위풍당당한 퍼포먼스에 있었다. 섹슈얼하거나 귀여운 기획으로 승부하는 기존 여자 아이돌과 다르게 그들은 중성적인 캐릭터로 무장해 밉지 않은 허세의 무대를 연출했고,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과감하게 ‘쌩얼’을 드러냈다. 때로는 공격적으로 때로는 무장해제로, 남들과 다르다는 뻔한 아우성을 꽤 쿨하게 표현한 셈이다.

그런데 는 마침내 속내를 드러낸 슬픈 커밍아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막무가내로 우기던 일과에 이제는 지쳤다는 듯, 먼 길을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투애니원은 보잘것없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한다. 그러나 그들 자아의 추락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외모처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실력처럼 연마하고 태도처럼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사랑받았던 그들이 무언가 단계를 생략하고 급히 슬프게 무너지는 순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면해야 할 전환의 시점에 투애니원은 절절한 가사와 긴장 없는 사운드라는 애원의 카드를 썼다. 음원 차원에서는 사운드가 아닌 리얼한 이야기로, 무대에서는 춤이 아닌 연기와 표정으로 승부하는 전략이다. 이런 호소는 투애니원을 비롯해 기존 YG 소속 가수들에게도 친숙하지 않은 방식이다.

말고도 투애니원이 두 번째 미니앨범에서 취한 몇 가지 실험의 양상이 있다. 이를테면 하루 한 곡씩 싱글 공개하기, 사진이 아닌 캐리커처로 등장하기, 또 다른 수록곡 와 처럼 아프리카 대륙의 토속 리듬으로 새로운 사운드 요소를 약간 덧붙이기 등이다. 유지되는 윤곽도 있다. 와 는 소속사 YG가 미국 차트 상위권의 작품들을 참고하면서 부단히 연구해온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의 안정적인 결합이다. 그리하여 투애니원의 새 앨범은 안전한 선곡을 토대로, 이색 리듬과 설득력이 아쉬운 처연한 자기고백을 전환의 아이템으로 추가했다고 요약할 만하다.

사실 변화에 대한 강박은 경쟁하는 또래 가수들이 겪고 있는 진통으로 보인다. 이 방면의 국제급 레전드 를 소환했던 정열의 시크릿은 템포를 늦추고 안무를 대폭 축소한 와 으로 친근한 옆집 소녀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했다. 포미닛의 현아는 ‘걸스 힙합’ 대신 차세대 이효리를 상정했을 보편적인 섹슈얼 콘셉트로 복귀했다. 입학과 졸업 제도로 애초부터 언제나 신선한 등장을 약속한 애프터스쿨은 최근 ‘레드’와 ‘블루’라는 분열로 변화를 꾀했다. 외형적으로는 바뀌었지만 이런 아이디어의 나열이 그들 이력의 전환에 큰 보탬이 되었는가 묻는다면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바뀐 것과 나아간 것은 다르고, 진전을 목표로 했다 한들 언제나 훈훈한 결과물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바람직한 모델이 있다. 듀오 프로젝트로 장르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며 명예를 획득한 빅뱅의 지드래곤과 탑이다. 5인조 풀에서는 억눌러야 했을 재능이 제대로 물을 만난 경우다. 한편 슈퍼주니어의 , 브라운아이드걸스의 , 카라의 처럼 해당 그룹이 취하던 기존 관습을 바꾸는 노래로 크게 호응을 얻은 사례를 우리는 기억한다. 신뢰를 쌓은 가수가 팬들의 단결로 음원 공개 직후 이른바 ‘지붕을 뚫는’(음원 사이트 멜론의 음원 성적 그래프 곡선이 최상위까지 갔다는 것을 뜻한다) 기록은 한시적이다. 이상적인 성과는 팬덤 이상이 반응할 때 나타난다. 그때야 비로소 세상이 두루두루 따르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강화된 기량과 납득 가능한 무대 선보이길</font></font>

까다로운 척하지만 청중은 사실 아이돌에게 무리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해외 진출을 찬양하는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그것이 허인지 실인지 제대로 살펴볼 만큼 예민하지는 않다. 그룹 구성원이 작사를 시도하고 작곡에 참여하며 ‘폭풍성장’하는 과정은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흐뭇한 미담에 불과하지, 아무도 그들에게 뮤지션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되레 자의식이 터지는 캐릭터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다만 복귀할 때 공백 기간에 얼마나 열심히 노래와 춤을 연습했는지, 곧 얼마나 강화된 기량과 개성으로 무대를 장악하는지 따진다. 그리고 새롭게 들려주는 사운드와 이야기가 얼마나 납득 가능한지를 가린다.

이민희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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