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술마시며 영화 보실래요?

술과 주먹밥 먹거나 1인 혹은 ‘여자만’을 위한 색다른 시사회 열려… 돈이 아닌 아이디어로 홍보하는 작은 영화들
등록 2011-07-29 16:13 수정 2020-05-03 04:26
지난 7월19일 '여성만 시사회'를 찾아온 여성관객들. 한겨레21 정용일

지난 7월19일 '여성만 시사회'를 찾아온 여성관객들. 한겨레21 정용일

감독도 떨리고 관객도 떨린다. 한 영화가 처음 세상으로 나서는 시사회다. 행여 새 영화에 낯을 가릴까 시사회 아이디어가 분주하다. 관객과 밥을 나누거나 영화 속 캐릭터가 직접 출동하기도 한다. 는 8월17일 ‘음주 시사회’를 열어 관객에게 술을 돌린다.

관객과 나눠먹는 꿈

한국인의 음주문화 보고서 는 문화방송 창사 50돌 특별기획 시리즈로 지난 6월16일 전파를 탔다. 영화는 방송되지 못했던 30분 가까운 촬영분을 더해 8월25일부터 독립영화 전용관 필름포럼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필름포럼 임재철 대표는 “최근 몇 년간 많은 제작비를 들인 TV 다큐들이 극장에서 개봉됐지만 문화적 문제를 담은 다큐는 드물었기에 상영을 결정했다”며 “돈이 영화 홍보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상황에서 작은 영화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한테 좀더 기억되도록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가 택한 전략은 개봉 일주일을 앞둔 8월17일부터 술 냄새 폴폴 풍기는 시사회를 열어 술꾼들을 불러모으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영화에도 출연했던 애주가들과 함께 술 마시며 영화 보는 정도의 자리를 생각했다가 기왕 영화의 뜻을 살릴 바엔 일반 관객도 참여하는 음주 시사회를 열자는 기획으로 커졌다.

나눠먹는 것은 공감을 키우는 일, 아예 밥을 나누는 시사회도 있었다. 영화 는 지난 5월 광주와 서울에서 주먹밥 시사회를 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영화를 개봉하며 당시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을 도왔던 기억을 30년 만에 되살리려는 의도였다. 이 시사회는 당시 서울과 광주의 객석을 모두 채우며 큰 호응을 얻었다.

핵심 관객 위한 작은 시사회들

영화사가 시사회를 여는 건 입소문 마케팅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와 궁합이 잘 맞는 핵심 관객이라면 적은 수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은 핵심 관객을 위한 작은 시사회에도 공을 들인다.

7월7일 개봉한 공포영화 은 1인 관객 특별시사회를 열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극장에서 혼자서 영화를 본다면 두려움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공포물의 특성을 이용한 특별시사회였다. 7월20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는 초등학교 교실들을 찾아가는 ‘스쿨어택’ 이벤트를 열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주 관객층인 어린이들을 찾아가 영화를 알리는 행사다.

영화 는 여자들만 참석하는 ‘여성만 시사회’를 열었다. 는 포르노라는 소재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남자들이 들여다보는 여자의 은밀한 사생활이 아니라, 여자 스스로 깨달아가는 성과 몸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다. 지난 7월19일 ‘여성만 시사회’를 찾은 유인숙(41)씨는 “여자들끼리는 야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겠다는 기대를 안고 난생처음으로 독립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유씨는 “막상 시사회장에는 커플로 온 몇몇 남자들이 눈에 띄어 함께 보기 쑥스러웠다”는 평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의 타깃 관객을 찾다 보니 그동안 독립영화를 보지 않던 관객을 얻은 셈이다. 는 7월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임범 감독과 필름포럼 임재철 대표 인터뷰
애주가와 무주파가 벌이는 술 파티

는 시사회만 특이한 것이 아니다. 술 칼럼니스트가 연출했다는 점도, 45분짜리 감성다큐라는 낯선 형식도 눈길을 끈다. 음주 시사회를 앞두고 임범 감독(사진 왼쪽)과 필름포럼 임재철 대표(오른쪽)를 만났다.
을 쓴 임범 감독은 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영화는 술에 대한 박학다식보다는 ‘우리에게 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한다. 그 덕분에 술을 못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음주문화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임재철 대표 눈에 들었다. 영화속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인 ‘무주파’라 할 수 있는 임 대표는 “술을 말하다 보면 자칫 교훈적이기 쉬운데, 영화는 그런 함정을 피하면서 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포장하고 장식해왔는지 문화적 함의를 추적했다”고 평했다. 꼭 술을 잘해야 술맛을 알까. 방송본과 달리 영화에서는 술을 못 마시면서도 술 마시는 젊은 사람들 소리가 듣기 좋아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는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이야기 등이 보태진단다. 임범 감독은 영화 속 1980년대 학번처럼 “술이 나약함을 이기게 해주고 젊음의 울분을 달래던” 시절을 보냈지만 술 예찬론을 펼 생각은 아니었다고 했다. “영화 보다가 냉장고 뒤져서 술 찾아 먹고 싶어지는, 정서적 공감을 부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장선우 감독 같은 이는 영화 보니까 이제 술 좀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던데요.”
영화는 술이 주눅 든 20대를 그나마 위로해주는 걸까 묻지만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 임 감독은 “굳이 세대를 나눠 추적해볼 의도는 없었다”면서도 “지난 30년 술의 의미를 찾다 보니 술이 열정과 노동의 동반자였던 때에 비하면 점점 기호품으로 변해가는 요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음주 시사회를 찾는 20대가 있다면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