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물자처럼 공출됐던 조선인들

정혜경의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등록 2011-07-10 20:11 수정 2020-05-03 04:26
정혜경의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정혜경의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저질러진 ‘강제동원’의 얼굴과 그 참혹한 피해상을 피해자들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이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일본은 1938년 4월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자기네 침략전쟁에 식민지 민중의 신체와 노동력을 무제한 ‘사용’하겠다고 공포한다. 식민지 조선인의 처지에서 보면, 내선일체를 내세워 ‘황국 신민’이 되라고 했던 일제의 명령은 ‘권리 없는 의무’만을 강요당한 것이다.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일본은 ‘전시체제’를 구축했다. 그 전시체제기에, 그러니까 1938∼45년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일본 당국의 통계로 연인원 800만 명이 넘는다. 전수조사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수는 실체적으로는 ‘의문부호’에 싸여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시기 일본과 사할린, 남양군도, 만주, 동남아시아로 동원된 조선인은 150만 명, 한반도 안에서 노역에 동원된 수는 650만 명이다. 두세 번씩 동원된 사람들을 고려해 연인원 800만여 명을 환산해보면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3만~4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위안부는 빠진 수치다.

전쟁 책임 뒤집어쓴 ‘조선인들’

이 책은 10년 넘게 줄곧 일제 치하 ‘강제동원’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온 역사학자 정혜경(50)씨가 썼다. 그는 현재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데, 2004년 말 이후 5년 동안 실태 조사와 문서 수집은 물론 피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녹취했다. 이 책은 그 소산이다.

조선인들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물자처럼 공출’당했다. 전쟁의 시궁창 속에서 뒤치다꺼리를 강요당하다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은 패색이 짙어지자 위안부와 포로감시원 등 조선인들을 총알받이로 몰아세우고는 자신들은 전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 정부는 자국민을 제 나라로 귀국시켰지만, 강제로 동원한 300만여 명의 조선인들에 대해선 무책임과 부인으로 일관했다.

책은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흔적을 좇는다. 그 흔적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과 눈물이 담겨 있다. 일본 땅을 비롯해 동토의 땅 사할린과 항일운동의 터전 간도, 동남아시아, 저 먼 태평양의 남양군도에 이르기까지다.

그중엔 일본의 전쟁 책임을 ‘대신’ 뒤집어쓴 이들도 있다. ‘포로감시원’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에 대해 전후 일본 당국은 책임을 회피했다. 명령을 내린 일본군 장교는 조선인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도쿄전범재판에서 조선인 포로감시원 20명이 사형당했다. 타이와 버마를 잇는 철도인 태면철도(영화 에 나오는 철도) 공사에 투입된 조선인 포로감시원 800명 중 살아서 귀국선을 탄

사람은 300명뿐이었다.

사할린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전후 소련과 일본이 벌인 (일본인) 귀국 협상에서 배제됐다.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희생과 눈물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운 좋게 일본 귀환자에 포함된 박노학의 평생을 바친 노력이 컸다. 그는 일본에 귀환하자마자 사할린 동포들의 귀국 운동을 시작했다. 1966년 5800명의 귀환 희망자 명부를 한·일 양국 정부에 제출했고, 사할린 동포와 한국 가족 간에 편지 배달부 구실을 했다.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한 원혼

저자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군부와 일부 우익이 결탁한 전쟁일 뿐 일왕과는 무관하다는 일각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다. “당시 일본 헌법에 따르면 일본군 총수는 ‘천황’이다. 일왕이 일본군의 모든 지휘권을 갖고 있었다.” 히로히토 일왕은 상징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1942년부터 도조 수상이 건의한 항복을 거부한 주인공”이자 “태평양전쟁이 난 이후부터 대본영에서 직접 전쟁을 지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은 패전 뒤 ‘성스러운 결단’으로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칭송하며 그에게 평화주의자의 옷을 입혔고, 히로히토는 천수를 누렸다.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수백만 강제동원 피해자의 원혼은 어찌할 것인가”라고 이 책은 묻는다.

허미경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carmen@hani.co.kr"_top">carmen@hani.co.kr

* 정혜경 지음, 서해문집 펴냄, 1만3900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