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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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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서 만난 제각기의 가족 에세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로, 자식으로 산다는 것… <아빠가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 <비코즈 아이 엠 어 걸>
등록 2011-05-12 18:28 수정 2020-05-03 04:26
<우리 엄마야> 아니타 로벨의 그림. 사계절 제공

<우리 엄마야> 아니타 로벨의 그림. 사계절 제공

5월의 신간 중에는 유독 ‘어머니’ ‘아버지’란 단어가 들어간 책이 많다. 가정의 달이기 때문일 터이다. 부모 된 자가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한 탓일까, 매년 5월엔 시내 서점에서 유독 사모곡 등의 내용을 실은 책을 손에 든 독자가 많다. 서가 사이에 서서 몇 장을 읽다가 주책맞게 눈물이 나와 황급히 계산하고 나온 경험을 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위해 꾸린 어린이책 코너는 놀이터처럼 박작거린다. 어른이 봐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책이 많다. 한국 그림책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도서전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다섯 차례 우수상을 받고, 올해 처음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는 등 국제 그림책 시장에서 한국적 이야기의 힘을 뽐내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네 권의 책을 소개한다. 이제 막 부모 된 심정을 깨달은 초보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기를 그린 (신동섭 지음, 나무수 펴냄), 세상에 눈 뜨고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엄마’를 부르는 아름다운 그림책 두 권 (아리안나 조르지아 보나치 지음, 비토리아 파키니 그림, 고인돌 펴냄)와 (샬롯 졸로토 지음, 아니타 로벨 그림, 사계절 펴냄), 마지막으로 앞선 세 권의 책과는 한참 떨어진 이야기를 담은 책 (플랜 재팬 엮음, 에이지21 펴냄). ‘아빠’ ‘엄마’를 제목에 실은 세 권의 책이 말랑말랑한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면, 는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또 다른 가족의 거칠고 고단한 이야기를 실었다.

힘을 내요, 미스터 맘! : “밥 먹자.” 매일 낮 12시가 되면 딸에게 외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빠다. 아빠 신동섭씨는 직장에 나가 있는 아내를 대신해 아이를 키운다. 몇 개월 육아휴직을 낸 게 아니다. 10여 년 동안 해온 등 잡지사 취재기자 생활을 접고, 2007년부터 그는 그해 9월 태어난 딸 은지와 2009년 태어난 아들 민수의 ‘주양육자’가 되었다. 신씨는 최신 육아정보가 실린 책들을 하나씩 섭렵해가며 자기만의 아이 기르는 법을 만들어간다. 그가 ‘에코 육아’라 이름 지은 육아 방식은 ‘대범함’이 모토다. 엄마라면 꿈도 못 꿀 비위생적 행동을 감행하고, 몸으로 뛰고 체력으로 승부하며 오감을 이용해 서로의 몸과 마음을 교감한다. 책은 초보 아빠의 육아기이기도 하지만 한 남자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는 두 아이를 키워내며 “가르치는 사람에게 나중엔 더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듯, 나도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의 시선을 읽은 :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 주로 관찰되는 대상은 누구일까. 1차적으로 생각하기엔 엄마다.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살피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때로는 가슴에 새겨뒀다가 다음날 만나는 사람에게 “우리 아이가 이만큼 자랐어!”라고 자랑도 해야 하니까.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아이도 엄마만큼 상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어쩌면 엄마보다 더 면밀히. 가장 밀착한 존재에게서 세상을 통째로 배워야 하니까. 아이는 온몸과 마음으로 엄마의 행동을 읽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따라한다. 그림책 도 그렇다. 아이들의 성격이 제각각이듯 엄마들의 성격도 하나같지 않다. 직장 생활로 바쁜 엄마, 걱정이 많은 엄마, 장난기가 많은 엄마, 지나치게 깔끔한 엄마….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읽으며 아이를 세상의 틀에 맞춰 재단하려는 엄마들은 조금 반성해야 할지 모르겠다.

의 가장 큰 장점은 포근하고 온화한 그림이다. 수채 물감으로 불투명하게 채색한 그림은 적당히 두텁고 풍성하다. 마음을 둥글게 만드는 파스텔톤 그림들과 함께 이야기가 흐른다.

왼팔에 인형을 안은 소녀는 집안 곳곳의 낡은 액자와 앨범을 찾아다니며 인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기 침대에서 손뜨개 이불을 덮고 방긋 웃고 있는 이 아기가 우리 엄마야.” “쪼글쪼글한 바지를 입은 이 말괄량이 여자애가 우리 엄마야.” 아이는 노래하듯 ‘우리 엄마야’를 말하며 엄마 삶의 궤적을 찬찬히 훑는다. 딸은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 결혼과 임신의 과정을 거쳐 갓 태어난 자신을 안고 있는 모습까지 사진을 통해 바라본다. 자신과 세상에서 가장 닮은 여성이, 자신처럼 어린 시절이 있었고 어른으로 성장해 자신의 엄마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닮은 구석을 찾아내며 아이와 엄마의 관계가 더 공고히 연결된다.

아이답지 못한 아이의 삶, : ‘여자아이로 태어난 죄’라는 굴레를 쓴 다섯 딸들의 사연이 실렸다.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에 사는 12살 마니샤에게 부모가 바라는 것은 결혼이다. 어릴 때 혼인을 해야 결혼지참금이 적어 가난한 살림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마니샤에게 결혼은 어쩌면 ‘목숨 건 일’이 될지 모른다. 어린 나이에 집안일을 떠안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도 겪어야 한다. 비슷한 환경의 아프리카 중서부 지방에서는 임산부 17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는다. 열악한 위생 환경, 출산 지식 및 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저연령 임신도 큰 원인이다. 뒤이어 각기 다른 사연이지만 비슷한 좌절과 고통으로 채워진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서아프리카의 소녀병 리타는 마을에 들이닥친 반란군들 손에 가족이 죽는 걸 목격했다. 군에 끌려간 리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명령 아래 총을 들어야 했고, 병사들의 식사 준비를 떠안아야 했고, 성적 학대도 당해야 했다. 네팔의 사미타는 12살 때 마을 구석에서 가축을 돌보고 있다가 친절한 남자의 음료수를 건네받았다. 눈을 뜨니 이웃 나라 인도의 대도시에 있는 윤락가였다. 안데스산맥 아래의 마리아도, 세네갈의 아와도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 아이들에게 “엄마·아빠, 사랑해”를 말하는 앞 세 권의 내용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책 속의 여자아이들에게 부모와의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 따위는 너무 먼 얘기다. 가난과 폭력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만도 충분히 버겁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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