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이다. 리비아 사태는 출구 없이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작전권을 이양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잇따른 민간인 오폭으로 리비아 민중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고, 열악한 무기에 오합지졸인 반군은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힘이 달려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진보 진영은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을 두고 지지와 반대로 갈려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서구의 패권주의를 모르지 않으면서도 카다피의 학살을 멈추려면 시급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 그리고 카다피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서구의 위선을 폭로하며 아랍의 내일을 우려하는 쪽으로 나뉘는 것이다.
너무 먼 연대, 또렷한 제국주의
판단은 쉽지 않다. 사안의 긴급성에 비해 아랍 민중의 연대는 너무 멀었고, 국제주의에 비춰 서구의 제국주의는 늘 또렷했다. 한국판 4월호는 바로 그 고민에서 시작한다. 먼저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은 리비아 공습의 숨겨진 이면을 들춰낸다. 그는 서구의 공습이 “정당화된 명백한 이유로 ‘서구의 폭격’과 ‘리비아 시민의 짓밟힘’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보여준 채 아랍 민중의 연대 등 다른 해결방법은 가렸기 때문이라며, “서구가 과거에 행한 무모한 행동을 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전반적 개입 동기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또 카다피 군대가 폭격을 당한 것은 “카다피가 독재자 중에 가장 나쁘거나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군사 공격에서 그를 보호해줄 강력한 친구들과 핵무기가 없는 가장 약자였던 탓”이라며 서구의 알량한 위선을 아울러 꼬집는다. 결국 그는 “시민들의 자유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프랑스·영국·미국의 군사 개입은 (리비아) 시민들을 강대국의 채무자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근동 전문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조르주 코름은 아랍권 국가의 권위적 성격의 근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외적 변수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1967년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 군대가 이스라엘에 패했던 일, 1975~90년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과 침략을 당한 레바논을 빌미로 아랍의 집권 체제는 정치적 안정을 우선하게 되었고, 이에 자연스레 민주주의는 설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1956년 이집트 나세르혁명 이후 그토록 기다려온 ‘아랍의 봄’이 도래했다며 오늘의 아랍혁명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랍의 정체성이 형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슬람 복고주의가 아닌 정치 자유와 부패 종식, 고용 확대와 적정 임금 보장 같은 민중의 지향을 담은 가치가 주창돼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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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장피에르 세레니는 서구 공습의 또 다른 근거로 제시된 열강의 석유 이권 개입의 역사를 톺아본다. 그에 따르면 “현 리비아의 군사 개입이 발발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석유의 역사는 이 전략적 에너지원을 둘러싼 패권 경쟁과 서구 기업의 리비아 내 유전 확보전으로 점철돼왔다”.
“나도 사람이다”라는 죽음의 절규
리비아에서 개입과 학살이라는 양자택일로 공습이 정당화됐다면, 한국의 노동자는 사느냐 죽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2009년 4월부터 2011년 4월까지 2년 동안 쌍용차 해고노동자 6명이 자살했고, 5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다. 이선옥 르포작가는 이들의 죽음은 비정한 사회를 향한 “나도 사람이다”라는 외마디 절규였다며, 재취업보다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건 회사와 국가의 진정한 사과라고 전한다. 이상윤 산업의학전문의는 이런 “인정과 존중을 통한 존재적 복권”만이 ‘절망의 클러스터’를 끊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4월호에 담긴 리비아와 한국의 노동자·민중의 현실은 한마디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인 것만 같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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