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인디음악의 어려움을 수면으로 올리면서 그 음악이 실제로 얼마나 잠재력이 높은가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사건이었다.”(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990년대 중반에 인디신이 만들어진 뒤 15년이 지났다. 요즘처럼 인디신에 역동성과 다양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던 적이 없다. 이제 문화생태계로 자리잡아가는 인디신이 그대로 보존되거나 확대될 수 있을지, 지속 가능할지가 중요한 시점이다.”(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달빛요정’의 죽음이 일깨운 현실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이 뇌출혈로 사망한 지 석 달 가까이 흘렀다. 그의 죽음은 몇 가지 숙제를 남겼다. 등 히트곡이 있었던 인디뮤지션이지만 연수입은 1천만원이 채 되지 않은 그의 현실은 인디음악의 열악한 환경에 주목하게 했다. 음악적 다양성의 한 축을 맡고 있지만 기본적 생계도 꾸리신소영기 힘든 그들의 현실이 부각됐다. 또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음악시장이 돌아가면서 음원 수익이 주요 수입원인데도 음악 창작자가 다운로드 가격의 절반도 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디지털 음원 수익 배분 문제는 사망 직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후 논의는 인디음악 시장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지난 1월19일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아카데미에서 토론회 ‘한국 인디음악의 미래는 있는가?: 자생적인 음악시장을 만들기 위한 대안 찾기’가 열렸다. 문화연대와 민주당 최문순 의원실에서 공동 주최하고 원용진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가 사회를 맡은 이번 토론회는, 이지원씨의 사망을 계기로 한국 인디음악의 현실과 디지털음악 저작권의 분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
이동연 교수는 발제를 통해 인디음악인들의 ‘문화생활 협동조합’(인디음악조합)을 인디음악 시장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디음악계에는 ‘서교음악자치회’가 있다. 2008년 조직된 서교음악자치회는 40여 개 레이블과 120여 뮤지션이 참여한 모임이다. 이들은 인디 전문 라디오 방송과 해외 교류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한다. 이 교수는 이러한 형태의 레이블 모임뿐 아니라 더 개방적이며 대안적인 형태의 연대인 ‘어소시에이션’을 제안한다. 1990년대 중반에 형성돼 2000년대 확산된 먹을거리 생활협동조합(생협)처럼 인디음악 역시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하나의 공동체로 연합하는 형태가 인디음악조합이다. 인디음악계가 문화단체나 지역 공동체들과 문화생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일상적이면서도 대안적인 시장 공동체로서 움직일 수 있다는 논리다.
생협 같은 모델이 먹을거리가 아닌 음악에도 적용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음악이 운동의 이념으로 합의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가 될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인디음악조합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거꾸로 인디음악이 장르적 취향으로 접근하는 데서 벗어나 문화 흐름을 타면 장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최근 인디음악이 보여주는 여러 결과물은 이러한 대안시장을 만들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무하다시피 한 정부 지원인디뮤지션이 생활인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논의도 이뤄졌다. 김작가는 ‘한국 인디음악의 현실’에 관한 발제에서 인디뮤지션을 수입에 따라 음악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소수의 뮤지션과 음악 레슨·행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부업을 하는 뮤지션, ‘안 벌어서 안 쓴다’ 주의의 전업 뮤지션 등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들 중 마지막 경우가 대다수 인디뮤지션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에 대해 패널로 참여한 김민규 일렉트릭뮤즈 대표는 사회보장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한다고 해서 대다수 인디뮤지션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며 “정부에서 받고 싶은 가장 중요한 지원은 보험 등 사회보장”이라고 말했다. 이재영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자발적 실업자로 볼 수 있는 인디뮤지션을 불완전 노동의 틀 안에서 실업급여 조건을 완화해주는 프랑스식 방안도 대안이 될 만하다”며 “예산 걱정이 먼저겠지만 실제 예산 수요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비판과 푸념이 터져나왔다. 비판은 “정부 지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인디음악이 문화적·음악적 다양성 측면에서 창작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체계적 지원 시스템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얘기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이뤄졌던 지원사업이 중단되고, 문예진흥기금에서도 인디음악이 지원받을 수 있는 부문이 줄어들면서 인디음악인들이 느끼는 체감 지원도는 바닥에 가깝다. 김민규 대표는 영국의 예를 들며 도시 안에 센터식 거점을 만들어 그곳에서 인디뮤지션이 음반을 녹음하면서 동시에 지역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지역에서 이들의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창작 지원 시스템을 제안했다.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토론회에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 최진 행정사무관은 “정부는 직접 지원에서 간접 지원으로 방향을 바꿔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지난해 우수인디뮤지션발굴지원사업에 3억원을 지원했고, 올해는 예산이 올라 3억5천만원을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사무관은 “인디뮤지션이 엠넷 등 케이블방송이나 록페스티벌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고 지난해 12개 팀이 지원을 받았다”며 “올해 올림픽홀 인근에 중소 규모의 인디공연장도 설립된다”고 설명했다. 문화부의 설명에도 지원금 3억5천만원은 음악시장의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는 지적이 토론회장 곳곳에서 잇따랐다.
불안정한 인디음악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은 1990년대 중·후반 인디신이 생겨난 이후 2~3년마다 꾸준히 제기됐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성과를 거둔 적은 거의 없다. 최문순 의원은 이러한 인디음악을 ‘실종아동’이라고 부른다. 최 의원은 “잊혀진 존재라는 의미에서 인디음악은 ‘실종아동’”이라며 “적은 규모와 인디뮤지션들의 개별성, 비정치성 등으로 인해 물리적 공간과 일정하게 노출되는 시간, 그리고 돈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인디음악은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다. 머리를 맞대기도, 모두 만족할 만한 대안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구체적 대안 마련 목소리 높아그럼에도 이진원씨의 사망으로 논의가 시작된 이번만큼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인디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친다. ‘장기하와 얼굴들’뿐 아니라 ‘브로콜리 너마저’ ‘갤럭시 익스프레스’ ‘검정치마’ ‘9와 숫자들’ 등 인디밴드가 내놓은 음악은 음악적 성취뿐 아니라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고, 서교음악자치회 등의 공동체도 자생적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 아래에는 여전히 그대로인 열악한 환경도 존재한다. 이동연 교수의 말처럼 이진원의 죽음은 ‘긍정적 현실과 부정적 현실이 공존’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중요한 교차로에 선 인디음악계가 이진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문제에 대처하려는 자세다. 토론회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디지털 음원 수익 분배나 논의가 시작된 대안 시장 형성, 정부의 지원 정책, 인디뮤지션의 사회보장 등에 대해 앞으로 꾸준히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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