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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제2회 ‘손바닥 문학상’ 작은 손바닥 부문 가작
등록 2010-12-08 16:03 수정 2020-05-03 04:26
윤희정
일러스트레이션/ 박정은

일러스트레이션/ 박정은

똑똑똑.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이 빠진다. 리모컨을 주울 생각도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텔레비전을 끈다. 방 안에 일순 적막이 흐른다.

“계십니까?”

현관문을 돌아본다. 그가 왔다.

똑똑똑.

“….”

“계시는 거 다 압니다.”

“….”

“티비 소리가 들렸는데요.”

*

그는 나를 찾아온다. 일주일에 서너 번, 아니 매일같이 찾아올 때도 있다. 내 집을 처음 찾은 날,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계십니까? 티비검침원입니다.”

티비검침원? 그런 직업도 있었나? 하마터면 나는 문에 대고 ‘누구라고요?’ 물을 뻔했다. 하지만 잡상인일 가능성이 컸다. 잡상인 대처법은 무조건 집에 없는 척하는 거였다. 나는 꼼짝 않고 그가 가기를 기다렸다. 고작 세 평짜리 원룸이라 냉장고 문만 열어도 밖으로 소리가 나갈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김지석씨, 안 계십니까?”

오히려 나를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의 뒷말이 들렸다.

“티비 소유 여부를 확인 나왔습니다.”

손을 거둬들였다. 등 뒤로 6명의 개그맨들이 레슬링을 한다며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닫힌 문과 텔레비전을 번갈아 돌아봤다.

“티비수신료 불납 신청을 하셨더군요. 계십니까?”

나도 모르게 현관 걸쇠에 눈이 갔다.

3개월 전, 친구 녀석들이 소주를 사들고 집에 쳐들어왔다. 습관적으로 틀어둔 텔레비전에서는 7:8 가르마를 탄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리 중 연애를 한 번도 못한 정식이라는 녀석에게 앞다투어 연애 코치를 하고 있었다. 뭐 다들 비슷한 수준이라 조언은 중구난방이었다. 그때 앵커가 ‘방송수신료금액인상안’이 통과된 사실을 전했다. 누군가 “이제 티비도 못 보겠네”라고 한마디 한 것을 계기로 우리는 답도 안 나오는 연애 이야기에서 손을 떼고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웃긴다. 지네가 뭘 했다고 인상을 하겠대?”

“땡전뉴스 만들려면 돈이 드나 보지.”

“난 케이블 티빈데. 케이블 티비 보면 수신료 안 내야 되는 거 아니야?”

다들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식이만 별 말이 없었다.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민우가 정식이를 팔꿈치로 찌르며 물었다.

“야, 넌 왜 아무 말도 안 하냐?”

“나야 집에 티비도 없고. 별로 상관없어.”

민호가 정색을 했다.

“그래도 수신료는 다 나가, 임마. 너 한전에 전화해서 티비 없다고 했어?”

“말해야 돼?”

“그럼 거기서 니가 티비가 없는지 어떻게 아냐? 수신료는 전기세에 자동 포함되는 거야. 넌 꼬박꼬박 돈 다 내고 있어.”

“악! 내 돈.”

정식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내가 물었다.

“그럼 티비 없다고 말만 하면 되는 거냐?”

“걔네가 일일이 확인하러 다니겠냐, 없다면 없나 보다 하는 거지.”

얼마 후, 텔레비전 수신료가 인상됐다. 기존보다 2배 높은 금액이었다. 그날, 나는 한전에 전화를 걸었다.

“저희 집엔 티비가 없는데요, 수신료를 납부해왔네요.”

똑똑똑.

“안 계십니까?”

그 일이 있은 후, 티비검침원이 찾아왔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숨길 수도 없었다. 싱크대 아래는 배수관 때문에 들어가지 않았다. 행어에 옷을 걸어두는 처지니 장롱 안에 숨길 수도 없었다. 텔레비전 볼륨을 최소로 낮췄다. 방청객 웃음소리와 자막만으로 개그 프로에서 웃어야 할 타이밍을 추측해야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커튼을 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됐다. 나갈 때는 문밖에 인기척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건물 입구부터 뒤꿈치를 들고 걸었다.

언젠가 지치면 그만 오겠지.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집요한 성격이거나 융통성 없는 일벌레인 듯했다. 그의 방문은 한 달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 아침,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았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중 화면이 갑자기 꺼지더니 그다음부터 먹통이었다. 마땅한 수가 없어 전원만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어디가 고장난 걸까? 아니면 혹시 그 검침원이 보고해 텔레비전 수신이 끊긴 걸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켰으나 역시 검은 화면뿐이었다. 텔레비전 앞에 주저앉았다. 적막했다. 집이 한층 더 좁아 보였다. 이렇게 갑갑한 곳에 살았던가. 두어 걸음이면 닿는 싱크대와 행어 위에 널린 옷가지들, 한쪽에 쌓아둔 박스 짐을 둘러봤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소리마저 들렸다. 간혹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갈 뿐이었다.

컴퓨터를 켰다. 하드웨어 돌아가는 소리가 그나마 위안을 줬다. 그때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그가 찾아온 게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그의 방문이 반가웠다. 그가 왔다면, 방송사에서 수신을 끊은 게 아니라는 건데. 단순한 기계 고장인가?

문득 검침원이라는 그의 직업이 떠올랐다. 티비검침원이라, 처음 듣는 직업이었다. 그런 직업이 있었나 하는 의문도 잠시 그가 텔레비전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기청정기 점검원은 청정기 수리도 해주지 않나? 동종업계 사례까지 떠올랐다.

“안 계십니까?”

텔레비전의 먹색 화면을 바라보다 나는 결심했다. 그래, 그깟 수신료 5천원 내고 말자. 겨우 담배 두 갑 가격 아닌가. 담배를 줄이는 게 건강에도 좋은 일이다. 나는 천천히 문 걸쇠를 풀었다.

“김, 김지석씨?”

흰머리가 군데군데 보이는 중년 남자는 문이 열리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맞습니다.”

“저는… 티비검침원입니다.”

왜소한 몸에 어딘가 기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문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열린 문틈 사이로 방 안을 훑어보는 걸 잊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티비가 있으시네요.”

나는 재빨리 말했다.

“고장났습니다.”

그는 30분째 텔레비전을 부둥켜안고 있다. 나는 옆에 서서 불안하게 그를, 아니 텔레비전을 바라봤다.

“정 그러면 그냥 수리센터에 맡기는 게….”

나의 만류에도 그는 텔레비전을 놓지 않았다. 알고 있었지만 그는 집요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멀뚱히 지켜보기도 그래서 핸드폰 폴더를 열어 친구들에게 쓸데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답문자는 오지 않았다. 액정 화면이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뉴스 할 시간이군요.”

그 말에 그가 나를 돌아봤다.

“선생님은 뉴스 잘 안 보시지 않나요?”

“네?”

“뉴스 시간에 찾아와도, 앵커 말소리가 안 들리고, 다른 프로그램 소리가 들려서요.”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 시사 상식이 부족한 인간임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굴은 이미 ‘중국 반체제 인사이며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사람은?’이라는 질문에 한참을 우물쭈물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깟 뉴스 보면 매번 저희들끼리 싸우는 것밖에 더 나옵니까?”

그는 순순히 “그렇지요”라고 대꾸했다. 나는 연이은 반격을 시도했다.

“늘 답답한 소식만 전하면서 공영방송이라고 수신료나 인상하는 게, 이게 말이 됩니까? 똑바로 방송을 만들고 돈을 달라고 할 것이지. 정권방송 역할을 하면 정부한테 돈을 달라 그럴 것이지 왜 국민한테 부담을 지운답니까?”

나는 말을 멈췄다. 어쩌다 보니 정말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멀뚱히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는 티비검침원일 뿐입니다. 저희 집에는 티비가 없지요.”

그 순간 텔레비전 화면이 빛을 냈다. 아주 잠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검침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진단을 내렸다.

“티비 액정이 나갔나 보네요. …수리센터에 맡기셔야겠습니다.”

그달, 내 카드에는 밀린 수신료 1만5천원과 중고 텔레비전 구입비 9만원이 추가 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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