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절망 가득한 ‘굿바이 홈런’



평론가가 요절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에 대해 말하다…

낭만이 아닌 당장의 곤란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투영의 정조
등록 2010-11-17 17:29 수정 2020-05-03 04:26

아쉬움은 남기려 한다. 애석함은 참기로 한다. 담담함을 더하려 한다. 그는 늘 스스로 작성한 보도자료의 끝에 ‘달빛요정이 달빛요정에 대해 말하다’라는 문구를 붙였다. 이제 주어가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막 세상을 떠난, 그것도 ‘요절’이라는 단어를 써야만 하는 이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지난 11월6일 타계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이하 달빛요정)은 총 6장의 앨범을 남겼다. 정규앨범 3장과 EP 3장을. 그는 인디 뮤지션으로 불렸지만, 정작 인디 음악계의 주류적인 흐름과 상관없는 음악을 했다. 한국 음악계에서의 포지션은 ‘인디’로 통칭되는 언더그라운드였으되, 음악적 경향 측면에서 보자면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어떤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었달까. 팬들은 그를 ‘포스트 김광석’이라 불렀다. 삶의 단면을 절절히 드러내는 가사와 굵직한 창법 때문이었다. 신해철은 그를 ‘김창기의 역상(逆象)’이라 했다고 한다. 동물원의 일상성을 계승하되 밝음과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우울하고 처절한 정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두 개의 지칭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 구조가 명확한 가사다.
 
빈 지갑과 통장 잔고가 그려지는 가사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이 남긴 3장의 정규앨범. 1집 , 2집 , 3집  (왼쪽부터).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이 남긴 3장의 정규앨범. 1집 , 2집 , 3집 (왼쪽부터).

2003년 발매된 데뷔 앨범 (Infield Fly)에서 그에게 지명도를 안겨준 두 곡의 노래가 있다. 와 이 그것이다. 는 문화방송 FM 에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이 프로그램의 인디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당시까지 인디 신에서 지명도를 얻으려면 대부분 활발한 클럽 공연이 우선이었다. 이 과정에서 반응과 입소문을 타고 레이블과 계약해서, 이미 라이브에서 히트한 곡을 앨범 히트곡으로 이어가곤 했다. 하지만 달빛요정은 이렇다 할 클럽 공연을 한 적도 없었다. 2003년 당시 인디 음악계의 주류적 경향은 펑크와 모던록으로 양분됐다. 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노래였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화제가 된 것은 팔할이 가사의 공이었다. “지루한 옛 세상도/ 구역질 나는 세상도/ 나의 노래도 나의 영혼도/ 나의 모든 게 다 절룩거리네”라는 가사는 펑크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이었다.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신문 같은 나의 노래/ 마을버스처럼 달려라/ 스끼다시 내 인생”으로 절정에 오르는 또한 다르지 않았다. 명확한 1인칭 시점과 부르는 이의 빈 지갑과 통장 잔고가 눈에 그려질 정도의 상황 묘사는 달빛요정의 음악을 규정하는 한 축이었다.

물론, 인디 신에서 이런 자조적 가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펑크나 하드코어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달빛요정의 가사가 유독 주목받은 이유는 확실한 가사 전달과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텔링에 있었다. 이런 유의 다른 가사들은 대체로 메시지만 있고 스토리가 없거나, 혹은 공격적인 창법으로 인해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관적인 가사는 역시 우울한 멜로디와 사운드에 담겨 노래되곤 했다. 반면 달빛요정의 가사는 그 누구보다 직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한때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낭만의 정조가 아닌 지금 당장의 곤란하디곤란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투영의 정조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지독한 좌절감은 대부분 힘찬 멜로디와 사운드를 통해 전달됐다. 전개부와 절정부의 낙차는 컸고, 조성은 대체로 장조였다. 희망 없는 세상, 절망스러운 처지를 노래할수록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감격하듯 벅차올랐다. 그것은 펑크, 혹은 서구의 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격성과는 분명히 달랐다. 즉, 특정 장르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았다는 거다. 앞서 그가 인디 신의 주류적 흐름과 상관없는 음악을 했다고 말한 이유다.

이런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였을까. 달빛요정의 사운드는 여느 록 밴드들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밴드 음악, 혹은 밴드 사운드와 함께하는 싱어송라이터 앨범의 사운드에서 중요한 건 밸런스다. 그러나 달빛요정의 앨범에서 전면에 나서는 건 보컬이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비교적 또렷이 말하는 그의 발성법과 함께 도드라지게 들리는 보컬은 그의 가사에 힘을 더하고 방점을 찍었다. 녹음 노하우가 없을 때 발표된 1집은 물론 노하우가 넉넉히 쌓이고 밴드의 느낌을 강조한 3집 까지 일관된 경향이었다. 이는 인디 신의 방법론이라기보다는, 가수 중심의 문화가 정착된 주류 대중음악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운드다. 그가 초창기에 일반적인 인디 음악 애호가보다 평범한 생활인들에게 각광받았던 까닭이 그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음 앨범은 밝게 가겠다더니

그의 음악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사랑이었다. 사랑의 기쁨보다는 이별의 아픔이었다. 말없이 보내드리오리다, 도 아니고 복수할 테야, 도 아니고 그저 속절없이 그리워하거나 원망하는 노래들이었다. 사랑으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때는 고작해야 TV 속 미녀 아나운서를 보는 경우()였고, 사랑에 대한 갈구가 가장 불타오른 건 외로워서 지쳤을 때()였으며, 원망에 대한 노래로 얻고 싶은 건 ‘돈이나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도 분명히 연애를 해봤을 텐데, 88만원도 못 버는 신세에서 출발해 월 100만원을 버는 기쁨 비슷한 것을 누리는 처지가 됐는데, 결국 그런 낭만은 달빛요정의 음악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조연도 못 됐다. 아무리 삐딱하고 자조적인 사람이라도, 마음 어딘가에 가졌을 그런 사연과 생각들을 펼쳐보지도 않고 그는 떠났다.

나는 이 글의 첫 문장에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다음 앨범은 밝게 가겠다고 했다. 진짜 사랑 노래를 쓰겠다고 했다. 작사·작곡만 하고 노래는 다른 뮤지션들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그래서 돈 좀 벌어보겠다고 했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활동하다가, 주변에 매니지먼트를 맡기기로 했다. 그의 하드디스크에는 이를 위해 만들어놓은 노래들이 잠들어 있다. 갑작스레 친구를 떠나보낸 동료 뮤지션들이 그 노래들을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그가 보여주지 못했던, 달빛요정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법한 밝음이 그가 없는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기를. 아쉬움은 그때 달래질 것이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