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감독의 영화 의 제목은 1968년 암살당한 로버트 F. 케네디의 애칭에서 따왔다. 는 케네디가 19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경선을 벌이는 기록 필름에서 시작해 그가 암살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렇게 는 치열했던 캘리포니아주 예비선거에서 로버트 F. 케네디가 승리를 거둔 1968년 6월5일 하루를 다룬다. 그가 암살된 로스앤젤레스 앰배서더 호텔의 직원이나 케네디 선거운동을 벌인 인물 혹은 경선승리 축하파티에 모인 군상의 하루를 담는 방식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그러나 는 케네디에 대한 영화면서 케네디에 대한 영화만이 아니다. 그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영화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자 틀거지지만, 정작 가 말하는 것은 우울과 낭만이 쓸쓸하게 교차했던 1968년의 미국이다.
68년 미국에서 ‘낭만’을 빼면 바로 오늘의 미국
20세기 후반의 상징적인 숫자인 1968년.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는 전세계 젊은이의 티셔츠에 가장 많이 새겨진 연도인 1968년에는 우드스톡 페스티벌과 베트남 전쟁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로버트 F. 케네디가 암살되기 한 달 전에 마틴 루서 킹이 저격당했다. 미국은 흑인과 백인, 참전과 반전 등으로 나눠져 있었다. ‘바비’는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흑인 청년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불린다. 1968년의 미국에서 낭만을 빼면 오늘의 미국이 겹친다. 1960년대 미국식 자유주의의 상징이던 바비처럼 지금 미국엔 어쨌든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있고, 베트남 전쟁처럼 미국의 여론을 나누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가 있다. 1968년의 케네디라는 과거가 2010년의 오바마라는 오늘과 겹치면서 는 현재성을 얻는다. 무엇보다 가 다루는 미국의 인종 문제, 침략전쟁, 우울증이 지금도 계속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에는 딱히 주인공이 없다. 영화는 한 명의 동선을 따르는 대신에, 1968년의 아메리카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나즈막히 풀어놓는다. 그곳엔 평생을 앰배서더 호텔에서 도어맨으로 일하다 은퇴를 앞둔 존 캐시(앤서니 홉킨스)와 그의 친구(해리 벨라폰테)의 쓸쓸한 일상도 있고, 인종차별을 앞서 경험한 중년의 흑인 요리사(로런스 피시번)가 이제 막 미국으로 건너와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주방보조 라틴계 청년(프레디 로드리게스)와 나누는 우정도 있다. 베트남 전쟁의 쓸쓸한 이면은 고교 동창을 베트남 전장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계약결혼을 하는 젊은 부부 다이안(린지 로한)과 윌리엄(일라이저 우드)의 이야기로 드러난다.
는 나즈막한 시선으로 응시하지만 희로애락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이안과 윌리엄의 문득 다가오는 사랑처럼 슬픔 가운데 피어나는 무언가가 있는가 하면, 천생연분으로 생각했던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는 미용사(샤론 스톤)의 인생처럼 안에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무엇도 있다. 알코올중독에 걸린 여가수(데미 무어)의 처연한 뒷모습은 가발을 벗어던진 미국 연예산업의 뒤통수처럼 쓸쓸하다. 술에 전 여가수, 배신당한 미용사, 마약에 취한 청년, 흔들리거나 비틀거리는 사람들 내면의 깊은 곳에 는 가닿는다. 영화는 그냥 서로가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 존재할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얘기를 수다스럽지 않게 풀어놓는다.
인물은 부부든 친구든 대개 쌍을 이뤄 나온다. 이들의 연기 앙상블은 를 감싸는 온기로 변한다. 샤론 스톤은 가수인 데미 무어의 머리를 만지는 미용사로 나오는데, 이들은 숨 막히는 호흡의 순간을 만든다. 할리우드 최악의 스캔들 메이커인 린지 로한은 평소의 이미지를 뒤집은 속 깊은 다이안의 캐릭터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의 앤서니 홉킨스부터 의 샤이아 러버프, 데미 무어의 남편이자 〈S러버〉의 애슈턴 커처, 의 일라이저 우드까지, 나오는 배우들의 출연료만 합쳐도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비인 1억1천만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만큼 출연진이 화려하다. 이들은 대부분 배우 출신 감독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와의 친분으로 노개런티로 출연했지만 연기력까지 깎지는 않았다. 는 63회 베니스영화제 본선 경쟁작, 64회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 후보작이었지만, 이런 유명 영화제 경력보다 10회 할리우드 영화제 올해의 앙상블상 수상이 더욱 빛나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끝내주기’ 때문이다.
화려한 캐스팅… 최고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 돋보여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쩌면 노래다. 스모키 로빈슨 앤드 더 미라클스, 슈프림스, 무디 블루스, 사이먼 앤드 가펑클, 1960년대 음악이 절묘한 화면에 살포시 얹힌다. 주옥같은 음악 릴레이의 화룡점정은 로버트 F. 케네디의 사진과 함께 나오는 (Never Gonna Break My Faith). 흑인의 각성을 노래한 (Think)를 불렀던 소울의 여왕 어리사 프랭클린과 이제는 절정에 오른 흑인 여성가수 메리 제이 블라이지가 입을 맞춰 부르는 이 노래는 어떤 총격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한다. 는 1월28일 개봉한다. 백인의 관점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는 오바마를 닮은 흑인 청년과 ‘내일의 왕’이라 불리는 히스패닉 청년을 통해 희망의 이유를 말하는 영화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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