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전쟁의 화살은 누굴 겨누나

적벽대전의 ‘본게임’ 나선 우위썬 감독, 폭력의 허무함 엿보이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등록 2009-01-21 15:59 수정 2020-05-03 04:25

홍콩의 량차오웨이(양조위), 대만의 진청우(금성무)와 장첸(장진). 이젠 약간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아시아의 여심을 흔든 미남들이 총출동했다. 여기에 등으로 아시아 뭇 남성의 가슴에 불을 붙이고, 등으로 할리우드까지 석권한 동방의 액션 명장 우위썬(오우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게다가 한·중·일 삼국의 800억 자본이 투여돼 의 절정인 ‘적벽대전’에 도전했다. 먼저 특별한 사건은 없이 캐릭터 묘사에 치중해 ‘거대한 예고편’이라 불렸던 을 통해 클라이맥스를 위한 전주곡도 깔아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은 ‘본게임’을 시작한다.

<적벽대전>은 1·2편으로 나누어진 대작이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자본 800억원이 투여됐다. 영화의 주연배우인 진청우, 린즈링, 장첸, 량차오웨이(왼쪽부터 시계방향).

<적벽대전>은 1·2편으로 나누어진 대작이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자본 800억원이 투여됐다. 영화의 주연배우인 진청우, 린즈링, 장첸, 량차오웨이(왼쪽부터 시계방향).

홍콩의 사내들을 닮은 그 눈빛

역시나 나홀로 영웅이 아니라 친구들 얘기다. 우위썬 감독의 은 사나이 우정이 거대한 야심을 꺾는 얘기다. 그가 만들었던 80년대 홍콩 누아르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우정과 대의의 승리를 위해 심리전과 속임수와 지략의 대결이 더해진다. 적의 칼에 몸을 베어 피를 흘리면서도 끝내 적을 향해 다시 돌진하는 장군들의 불타는 눈빛은 적의 총을 맞고도 쓰러지며 친구를 지켰던 홍콩의 사내들을 닮았다. 여기에 전쟁의 이유가 되는 아름다운 여인도 등장하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도 날아오른다. 그리고 남겨진 한마디, “이 전쟁에 승자는 없다”. 결국은 전쟁과 폭력의 허무를 말하는 결말에 이른다.

우위썬의 은 유비, 관우, 장비가 아니라 주유와 제갈공명에 초점을 맞춘다. 조조의 대군에 연전연패하며 쫓기던 유비의 군대는 오나라 근방에 이른다. 유비의 책사 제갈공명(진청우)은 조조의 군대에 맞서기 위해 오나라 손권(장첸)과 연합을 도모한다. 공명은 손권 휘하의 명장 주유(량차오웨이)와 악기 연주를 통해 ‘공명’하며 연맹에 이른다. 그러나 조조의 심리전에 위축된 유비는 연맹을 깨고, 공명만 홀로 남는다. 이제 주유의 군대에 공명의 지략을 더해 조조의 100만 대군과 맞서야 한다. 압도적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지략과 심리전의 공방이 이어진다.

선수(先手)는 조조가 친다. 열병에 걸린 병사의 주검을 적진에 보내는 심리전에 주유의 군대는 타격을 입는다. 이번엔 주유의 반격. 조조의 밀사인 친구를 속여 조조가 스스로 자신의 휘하인 장군 둘을 죽이게 만든다. 그들은 적벽대전에 꼭 필요한 수전(水戰)의 달인이다. 이로써 수전을 앞둔 조조는 양팔을 잃는다. 여기에 공명의 지략. 공명은 강의 안개와 허수아비 병사를 이용해 조조의 군대로부터 10만 개의 화살을 얻는다. 그리하여 “조조의 화살로 조조를 친다”는 어불성설은 현실이 된다. 안개가 자욱이 낀 강에서 조조의 군사들이 ‘화살비’를 쏘아대는 장면부터 스펙터클은 발동이 걸린다.

그러나 여전히 주유의 군대는 열세다. 오로지 방법은 화공전(火攻戰)뿐이다. 끈으로 묶인 조조의 군함에 불을 질러 한꺼번에 불태우는 병법을 쓰기 위해선 동남풍이 불어야 한다. 그러나 북서풍이 그치고 동남풍이 불려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번엔 주유의 부인인 소교(린즈링)가 나선다. 경국지색의 미인으로 조조가 오랫동안 흠모해온 소교는 혈혈단신 적진으로 들어가 동남풍이 불 때까지 시간을 지체한다. 한편 또 한 명의 여성, 손상향(자오웨이·조미)의 활약도 있다. 손권의 여동생 상향은 여장부의 기개로 적진에 침투해 중요한 첩보를 빼낸다. 그리고 우위썬의 카메라는 상향과 적군 병사의 우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응시한다. 이들의 은근한 ‘러브라인’은 권력이 나눈 전쟁의 경계가 얼마나 허투르고 쓸모없는 것인지를 상징한다.

결국엔 전쟁의 허망함 혹은 허무한 전쟁을 은 말한다. 백성은 단지 밥을 먹기 위해 병사가 되었고, 전쟁을 싫어하는 소교는 단지 아름다운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적진의 복판으로 뛰어든다. 주유는 대의를 위해 원치 않는 전쟁을 한다. 여기에 명분도 없고, 사람도 죽이는 조조가 대비된다. 그러나 은 조조를 단순한 악인으로 그리진 않는다. 오히려 병으로 쓰러진 병사들 앞에서 막내아들 얘기를 고백해 다시 사기를 세우는 조조의 장군으로서 풍모와 인간적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이렇게 명분의 유무는 있으되 선악의 대비는 뚜렷하지 않다. 에서 장궈룽(장국영)의 상대역으로 나왔던 장펑이(장풍의)는 야망과 결기가 뒤섞인 조조의 심리를 인간의 얼굴로 살려낸다. 그러나 량차오웨이에겐 주유보다는 공명이 아무래도 어울려 보이고, 공명을 연기하는 진청우는 허공을 보며 싱긋이 웃는 표정을 넘어서 풍부한 얼굴을 보여주지 못한다.

800억 제작비로 배부른 전투장면

어쨌든 은 마지막 결전을 향해 나가는 영화다. 1, 2편을 합쳐 230여 분을 달려온 은 마지막 40분의 기나긴 전투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수상전에서 지상전으로 이어지는 전투신은 주유의 군대가 어떻게 적군을 압박해가는지를 한발한발 보여주며 나아간다. 800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스펙터클은 포만감을 느끼기게 충분하다. 수전의 리얼리티를 위해 길이, 너비가 36m에 이르는 모형 함선을 제작했고, 조조의 대함들이 순식간에 불바다에 휩싸이는 장면을 위해 100여 척의 모형 전함이 진청우동원됐다. 가끔은 전투신 가운데 숭고함이 깃든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장면도 있다. 1월22일 개봉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