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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신윤복의 젠더 게임

<바람의 화원> 욕망의 도화선은 김홍도 아닌 정향… 위기의 시대 성공신화 성격도
등록 2008-11-06 14:42 수정 2020-05-03 04:25

SBS 은 흥미로운 드라마다. 이정명의 동명 소설을 옮긴 이 작품은 ‘신윤복이 여자였고 김홍도와 연인이었다’는 가설로부터 출발하는데다 주연 배우로 문근영(신윤복)과 박신양(김홍도)이 캐스팅되며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사람들은 문근영의 드라마 연기를 기대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로맨스가 과연 어떻게 그려질지, 그게 가능할지 기대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이유는 따로 있다. 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구도로 해석할 수 있는 드라마다. 구도가 복잡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은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가 개발해온 장르와 구조, 스타일이 집적된 작품이다.

<바람의 화원> SBS 제공

<바람의 화원> SBS 제공

은 이후 한국의 사극 드라마가 일관되게 개발해온 구성을 따른다. ‘이병훈 사극’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구도는 제도권 바깥의 천재적인 인물이 아케이드 게임처럼 매번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그린다. 도 마찬가지다. 예술 이외의 것에 관심이 없는 인물인 김홍도와 신윤복은 순수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인물이다. 예술적 감성을 타고난 정조가 총애한다는 것도 그들이 배척받는 이유다. 은 이 두 사람이 갖은 음모와 공작을 뛰어넘는 실력으로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생물학적 정체성 비틀어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극의 중심에 있는 신윤복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전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기복을 다층적으로 만든다. 신윤복을 연기하는 문근영은 여전히 앳된 모습으로 십대 소녀/소년의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박신양이 연기하는 김홍도는 그/그녀를 가르치는 전문가 남성의 이미지를 유지한다.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맺고 있는 사제지간이라는 관계는, 신윤복의 정체성을 비틀었기 때문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남성을 흠모하는 여제자의 로맨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학원 로맨스의 전형이 숨어 있다. 그런데 정향이라는 여성 인물이 이들 사이에 끼어든다. 개인적으로는 에서 그녀가 가장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는데, 정향이야말로 신윤복의 욕망을 드러내는 도화선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신윤복과 정향이 함께 있는 장면은 드라마의 다른 어떤 장면보다 로맨틱하고 에로틱했다. 섹스보다 젠더에 방점이 찍힌 이 관계의 역설에서 사람들은 신윤복의 욕망이 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그녀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게 아니라 애초에 여성이라는 자각이 거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을 정말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젠더 게임이다.

문화방송 은 성적 역할을 뒤바꾸면서 생기는 전복의 쾌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성공한 작품이다. 하이틴 로맨스의 전형성을 비틀어 청춘 로맨스로 성공한 의 영향이 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젠더 역할극이 텔레비전에서,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의 성패는 김홍도가 신윤복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시점에 결정될 것이다. 그게 너무 빠르면 극의 긴장감이 와해될 것이고, 너무 늦으면 로맨스가 들어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애정관계가 아니라 예술적 재능으로 맺어진 플라토닉한 관계다.

아날로그 드라마에 디지털 기술

은 이런 흥미로운 구조를 더욱 세련된 스타일로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에는 다수의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되었다. 드라마 제작에 보편화된 고화질(HD) 카메라가 독특한 색감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을 기반으로 재구성되는 화면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 기존의 사극과 명확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바로 디지털 기술을 아날로그적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개입시켰다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는 ‘빽 없고 힘없는 개인이 재능으로만 성공하는 이야기’에 근거한다. 신윤복은 자기 정체성을 속이면서까지 그림을 그리고, 든든한 후원자 하나 없는 상황에서 미션을 수행해낸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개인의 끝없는 자기 개발만이 성공의 척도라고 설파한다.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치우는 고도의 시장경제에서 개인이 좌판에 내놓을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온갖 악재와 음모에도 빛을 발하는 신윤복의 이야기가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건 그 때문이다. 그가 천재라는 사실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어떤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는 그 의지에 반응한다. 그래서 은 로맨스 이전에 성공에 대한 드라마로 보인다. 지금 이 사회가 성공보다는 실패에, 안정보다는 위기에 더 근접해 있다는 인식이 신윤복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좋은 드라마가 환기시키기에는 조금은 슬픈 역설이다.

차우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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