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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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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하기에 그들은 정직한 영웅

등록 2008-08-08 00:00 수정 2020-05-03 04:25

원래의 광둥어 버전으로 재개봉하는 에 관한,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아주 사소한 기억

▣ 김영진 영화평론가

을 처음 본 적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장소만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화양극장이었다. 한산한 객석은 평일 오후의 나른한 극장 분위기와 어울렸지만 나는 새로운 홍콩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재개봉관을 순례하며 웬만한 홍콩 영화는 놓치지 않고 봤던 내게 은 홍콩 영화의 새로운 진경이었다. 청룽(성룡)이 등장하면서 홍콩 영화에서 사라졌던 비장하고 엄숙한 기운이 화면에 배어 있었다. 카메라는 곧잘 움직였는데 그 움직임의 질이 미국 영화 못지않게 세련됐다. 화면 전개 속도도 빨랐다. 젊은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감정이입했으나 몸은 따라주지 않았고

영화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의 이미지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저우룬파(주윤발)가 기차길 건널목 앞에 서 있을 때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암흑가 선배의 말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바바리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땡땡거리는 신호등 소리를 들으며 건널목 차단기 앞에 서 있는 저우룬파는 부하의 배신으로 감옥에 가게 된 추룡의 복수를 대신할 참이었다.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세상에서 홀로 적을 상대하러 가는 그 고독한 결단이 영웅의 본색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도 영화 속의 저우룬파처럼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고 싶은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깔끔하게 끝나지도 않는다. 이후 우위썬(오우삼) 감독이 홍콩에서 만든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이 결말에는 주인공 중 누군가가 죽는 것이다. 그것도 역시 젊은 기분에 잘 맞았다.

우정에는 배신이 따르고 주인공의 폭력에는 죽음이 따르는 우위썬의 영화에 어디 젊은 기분으로 받아들일 요소가 있었던가. 잘 알다시피 우위썬은 홍콩 무협영화의 꼭대기에 있는 장처(장철)의 조감독 출신이다. 1960년대 중·후반에 왕위(왕우)가 나온 검객영화를 연출한 장처는 자주 주인공을 죽인 채 영화를 끝내곤 했다. 장처의 영화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인기가 많았고 그 비장미 넘치는 영웅활극 영화의 기운은 1980년대 중반에 후배인 우위썬의 능력으로 총싸움 누아르 영화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던 것인데, 당시 막 팔팔한 젊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던 우리 세대는 그 패배주의적인 비장미를 열렬히 환영했던 것이다. 사방이 군사문화의 잔재로 넘쳐나던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 모든 것이 폭력의 악순환으로 귀결되는 상황을 체득하며 살던 우리에게 류의 폭력은 비록 과장된 것이긴 해도 가슴에 호소하는 무엇이 있었다. 그 당시 한창 활개치던 람보나 아널드 슈워제네거류의 할리우드 영웅에 비해 홍콩 영화의 주인공들은 뒷골목 건달처럼 심하게 폼을 잡기는 해도 왠지 우리네 형과 더 가까운 존재처럼 보였던 것이다. 오로지 그들이 결국에는 패배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정직한 영웅으로 보였다. 폭력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세상에서 그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비주류 영웅이지만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주고 싶다는 동병상련의 감정이 치밀어올랐던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내 복판을 걷다 보면 대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가방 속을 다 들춰 보여줘야 했던 겨울 공화국 시대에 ‘강호의 도리가 떨어진 세상’에서 혼자 맞장을 뜨며 장렬히 파국의 길을 걷는 저우룬파의 초상은 상당한 감정이입 효과를 줬다. 현실의 나로 말하자면, 전경에게 맞장을 뜨기는커녕, 소심하게 눈치나 살피며 멀리 돌아가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신촌 근처에서 술을 마시며 갓 도래한 홍콩 누아르 영화의 피의 미학에 대해 친구들과 장광설을 펴고 있던 어느 날 밤, 노변에 위치한 그 술집에 피투성이가 된 젊은 남자가 도와달라고 외치며 뛰어들어왔다. 우리는 모두 기세 좋게 일어나 그를 도왔다, 라고 하면 좋겠지만 실은 모두 눈을 내리깔고 어서 빨리 이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건달 양아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그 청년을 데리고 나갈 때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우리는 더 대화할 흥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과 픽션의 부조화가 그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도 없었던 것이다. 영웅은 스크린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영웅이고 싶지만 영웅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 조용히 술이나 마시자, 라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현실에서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판타지

에 이어 우위썬은 이나 과 같은 영화에서 자신의 ‘짬뽕’ 미학을 완성했다. 주인공들이 고독하게 폼을 잡는 것은 프렌치 누아르의 원조인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에서 따온 것이고, 총을 꺼냈다 하면 유혈이 낭자해지는 것은 ‘폭력의 피카소’라 불렸던 미국의 샘 페킨파 영화에서 참조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위썬의 영화는 동시대의 한국 관객에게 호소하는 절실함이 있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관객에게 그의 영화가 추구하는 영웅상은 유구한 역사적 뿌리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처의 무협영화에서 왕위가 외팔이로 나온다거나, 일본의 유명 검객 시리즈 에서 주인공이 맹인인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연출한 세련된 사무라이 활극영화는 서구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장처나 우위썬 계열의 홍콩 영화, 그리고 일본의 B급 활극영화는 거기서 좀더 나아간다. 피가 더 많이 나오고 주인공이 더 꼬질꼬질하거나 고생을 많이 하고, 심지어 언해피엔딩도 마다하지 않는 이 영화들은 아시아권 관객에게 더 맞는다. 우리는 승리자가 아니었고 그렇다고 속 편한 미국인들처럼 우리는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신념을 주입받은 선민의식의 소유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위썬의 영화에서 의리를 입에 달고 사는 주인공들이 결국 패배하고 마는 결말을 보며 열광했던 우리는 현실에서의 패배를 극복하기 위한 판타지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지더라도 저들처럼 장엄하기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질서는 늘 살인적이며 불합리했고 도무지 나아질 기색이 없었지만 누군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폭력을 폭력으로 푸는 것은 미성숙의 표식일지 모르지만 세상이 그랬다.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는 실마리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았다. 그 와중에 절대적인 진실은 늘 가진 자와 힘 센 자가 이기는 현실이었다. 주인공들이 장렬하게 지고 마는 홍콩 영화의 영웅주의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절실함이 있었다. 영화잡지들에서는 재빠르게 홍콩 누아르 영화의 주제의식이 대륙으로의 반환을 염려하는 홍콩 사람들의 집단무의식과 닿아 있다고 썼다. 반신반의했지만 뭔가 절실한 구석이 있다는 점에서는 그런 해석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우삼도 가고, 주윤발도 가고

그렇게 우위썬과 저우룬파가 나오는 영화들을 한때 좋아했었다. 우위썬이 할리우드에 가고 저우룬파도 할리우드에 가고 그들은 다시 함께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우위썬이 연출해 최근 개봉한 대작 에는 원래 계획과 달리 저우룬파가 나오지 않는다. 소문에 따르면, 할리우드에 가서 인간성이 변한 저우룬파가 우위썬과의 의리를 저버렸다지 아마. 역시 이 바닥에서도 강호의 도리는 땅에 떨어진 모양이고 그런 만큼 류의 빛바랜 홍콩 누아르 영화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상실감도 더 또렷해진다. 잘 가라, 청춘기의 영웅이여,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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