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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도 엄마가 뿔 났다?

등록 2008-03-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아빠가 사라지고 남은 엄마와 딸 넷의 티격태격 적응기,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남편이 사라졌다. 부인은 확신한다. 틀림없이 남편이 가출했다고. 젊은 비서와 바람나 도망갔다고. 당연히 복장이 터지고 분노가 끓는다. 욕이라도 퍼부어주고 싶지만, 비서를 따라서 스웨덴으로 간 게 틀림없는 남편은 여기에 없다. 풀리지 않는 분노는 영혼을 잠식할 뿐 아니라 얼굴도 망친다. 한때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던 얼굴에 이제는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 (Misunderstand)는 혼자 남겨진 테리(조앤 앨런)의 성난 얼굴에서 시작한다. 남편은 사라졌지만 네 명의 딸들은 남았다. 테리의 풀리지 않는 분노는 때때로 방향을 잃고 딸들을 향하고 딸들도 그런 엄마를 온전히 수긍할 리 만무하다. 테리는 딸들에게 “나도 아빠가 밉다”는 ‘신앙 고백’을 받아내려 애쓰지만, 그래도 현실을 모르진 않는다. “한 명은 나를 증오하고 나머진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옆집 아저씨의 사랑, 모녀의 갈등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던 사내가 있었다. 왕년의 야구 스타로 과거의 명성에 기대서 살아가는 이웃집 독신남 데니(케빈 코스트너). 웬만해선 맥주병을 손에서 놓지 않는 데니의 주업은 지역 라디오 방송 진행자(DJ), 부업은 야구공에 사인을 해서 파는 일이다. 지나친 야심은 일찌감치 접어두고 사인볼 작업에 충실하며 대충대충 살아가는 데니에게도 은근히 흑심이 있었으니, 테리를 향한 마음이다. 테리의 남편이 사라진 뒤 데니는 테리를 위로하려 애쓰고, 남편에 대한 분노를 씻을 길 없는 테리도 홧김에 데니와 자려고 하지만 처음엔 실패한다. 그래도 약간의 코미디와 적당한 진심이 섞이니 어느새 그들은 같은 방을 쓰는 사이가 된다. 요컨대 는 흔한 선남선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드문 중년의 로맨틱 코미디다. 남편을 잃은 여성과 가족이 없는 남성의 로맨스다. 중년을 넘기고도 혼자인 데니가 “살벌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테리의 가족에 들어가 빈자리를 메우는 영화다.

그렇다고 가 옆집 아저씨와 우리 엄마의 단순한 로맨스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오히려 테리와 네 명의 딸들, 남겨진 여성들의 티격태격 적응기에 가깝다. 세상의 모녀들처럼, 그들에게도 갈등은 존재한다. 오히려 아빠가 사라진 이후에 모녀의 갈등은 깊어진다. 테리는 딸들이 온전히 자신의 편이 아니란 사실에 더욱 화가 나고, 딸들은 테리의 화난 표정에 갈수록 지친다. 그리하여 줄줄이 엄마와 딸들의 갈등이 터진다. 첫째딸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임신해서 졸업하자 곧바로 결혼한다. 그래도 첫째는 둘째에 견주면 괜찮다. 둘째는 엄마 또래의 남자와 닭살 돋는 애정 행각을 벌인다. 가장 심각한 갈등은 셋째와의 사이에 터진다. 셋째는 자신의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갈등하다 마음을 다쳐서 몸까지 아프다. 여기에 더해 막내의 첫사랑은 하필이면 게이다.

이렇게 저마다 갈등이 있지만 영화는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진 않는다. 예컨대 셋째는 크게 아프지만 죽을 병에 걸린 것은 아니고 둘째도 결국엔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자리로 돌아온다. 오히려 의 장점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기본에 충실해 영화의 곳곳에 웃음의 뇌관을 묻어둔다는 것이다. 각각의 상황을 적당히 뒤집어 웃음을 만드는 각개전투에서 감독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조앤 앨런·케빈 코스트너의 변신 놀라워

무엇보다 배우들의 변신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인공 테리로 나오는 조앤 앨런은 1995년 의 퍼스트 레이디를 연기해 존재를 알린 이후 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파멜라 역 등 차갑고 지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런 앨런이 에서는 불안하고 우스꽝스러운 여성으로 변신했다. 데니를 연기하는 케빈 코스트너의 변신은 더욱 놀랍다. 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등이 잇따라 실패하며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코스트너는 에서 나사가 살짝 풀린 듯한 데니를 기막히게 연기한다. 어깨에 힘을 뺀 코스트너는 심지어 귀엽다. 여기에 케리 러셀, 에반 레이철 우드 등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스타들이 딸들로 출연해 시선을 당긴다. 는 를 연출한 마이크 바인더 감독의 작품. 그도 둘째딸을 꼬이는 중년의 라디오 피디로 출연해 웃음을 더한다.

는 미국에서 147개관 소규모 개봉으로 시작했으나 1111개 상영관으로 확대 개봉했다. 원제는 ‘분노의 윗면’ 쯤으로 번역될 3월27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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