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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끝났는데 여자는 아직 뜨겁다오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등 연말 연극판이 주목한 ‘여성의 욕망’

▣ 장성희 극작가·연극평론가

지난 12월 한 달 동안 남성 12명이 국민의 욕망, 민족의 욕망 따위의 거대 담론을 내세워 국가적인 연희 무대를 펼쳤다. 흥미롭게도 그때, 연극판은 미시 담론 격인 여성의 ‘성애 욕망’에 주목했다. 극단 산울림의 과 극단 놀땅의 ,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가 그런 맥락에서 화제를 모은 무대였다. 이 세 편의 연극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불러냈다. 기실 드라마의 역사는 무대 위 욕망하는 주체를 점차 다양하게 확장해간 역사라 할 수 있다. 신에 필적한 영웅부터 귀족 계급과 시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속에서 욕망하는 인간은 오랫동안 남자만을 뜻했다. 여성이 욕망의 주체로 서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40대 전문직 여성과 17살 연하남

서울 산울림 소극장에서 펼쳐진 (김명화 작, 임영웅 연출, 12월30일까지)은 한 중년 기혼 여성의 뒤늦은 로맨스를 다룬다. 공연 책자에서도 작가는 ‘왜 여자들은 욕망하는 남성의 대상, 타자로만 존재하는지 궁금하다’고 창작의 변을 밝히고 있다. 17살 연하 사진작가와의 하룻밤 정사가 연애로 발전하고, 이제 여자는 자신이 상실한 젊음을 남자를 통해 복구하고 싶어 한다. 인생 경험과 재력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여자는 불륜의 사후 관리까지 말끔히 처리하면서, 드라마 작가라는 사회적 배역을 지키고 사태를 수습할 줄도 안다. 현실 구도에서 나이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탐하고 사랑에 빠지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스토리를 반전시킨 형국이다. 많은 연극들이 여성 캐릭터를 도구화했다면, 이 연극 속 젊은 남성은 여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형상화됐다. 근육을 섬세하게 살린 마네킹, 화장품 광고 속에서 속삭이는 메트로섹슈얼한 분위기의 인형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전도된 성 역할과 지위 권력으로 희극성을 끌어내는 것은 이 연극의 목적이 아니었다.

이래 중산층 주부를 위한 연극으로 일찌감치 영화를 누렸던 극단 산울림은 이 작품을 통해 ‘그 영광 다시 한 번’을 외쳤다. 실제로 극장을 채운 관객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여성이었지만, 그들이 전문직 여성이 벌이는 ‘모든 것 욕망하기’(성공, 재력, 성 권력, 낭만적 사랑, 자기 성찰 등) 앞에서 공감을 느꼈을까. 극은 한 중년 여성이 보여주는 ‘바람기’의 욕망과 그에 따른 자기 발견의 서사가 아니다. 남성의 현실 권력을 희구하며 ‘명예 남성’으로 살아남으려는 지식인 여성의, 욕망의 판타지를 더 많이 보여주는 느낌이다.

현실에서 많은 것을 이룬 40대 여성의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심이 이라면, 12월23일 막을 내린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의 (최진아 작·연출)는 일과 사랑 사이 어느 쪽에도 안주할 수 없는 30대 여성의 불안한 욕망을 좇는다. 안정적인 결혼과 사랑에 안주하면서도, 자기 추구를 멈추고 삶에 정주할까 두려워하는 미혼 여성의 모순된 내면 충돌을 치열하게 옮겨놓았다. 제목은 극이 담고 있는 내용의 반어적 아이러니를 담는다. 사랑의 욕망이 그다지 ‘지고지순하지 않다’는 데 이 연극의 도발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 주인공 여성은 오랜 연인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새로이 나타난 남자에게 제어할 수 없는 성애를 느낀다. 그는 오랜 연인과 섹스를 하면서 새 남자와의 섹스를 떠올린다. 인물이 느끼는 죄의식을 자의식이 과잉된 듯한 언어로만 털어놓는 듯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끼어드는 의식의 단면들을 무대 언어로 표현하는 연출력은 유연해 보인다.

은 배우들의 연기 공간을 패션쇼의 플랫폼 무대 모양으로 만들어 한가운데에 두고, 관객을 서로 거울 보듯 마주하게 했다. 이로써 관객은 속옷 패션쇼를 보듯 배우들의 육체가 난무하는 무대를 ‘훔쳐보고’, 또다시 서로를 훔쳐보게 된다. 무대가 배우 몸의 전시장이 됨으로써 극장은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성찰하고 해방하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몸’과 ‘성애’ 자체에 집중하는 관음증의 공간이 되어버린다.

‘발랑 까지고 싶었’던 20대의 사랑

서울 대학로 아르코소극장에 차린 (추민주 작, 이재준 연출, 12월30일까지)는 칠판이 일종의 소통 매체가 된다. 연극 무대 들머리의 칠판에 ‘발랑 까지고 싶었어’라는 화두가 적혀 있다. 달랑 칠판 하나가 세트로 놓인 무대에서 칠판을 써서 공간을 전환한다. 작품 장면인 ‘신’마다 별개의 제목을 달아 극의 흐름을 미리 요약하고, 나머지는 대사와 관객의 상상력만으로 모든 연극적 상황들을 발생 가능하게 하는 놀이를 펼쳐간다. 무대 바닥 역시 칠판 모양이다. 젊은 남녀 미영과 정태의 청춘 수학(修學), 연애 수업을 따라가는 내용이니, 사랑의 상처와 추억을 지우고 새로 쓰는 극의 의미를 칠판이 선명히 시각화한 셈이다.

이 연극의 화자는 보습학원에 다니는 20대 여성 국어 강사다. 소극장 뮤지컬 로 알려진 작가 추씨의 대본에서 느껴지는 장점은 현실감이다. 연애 이야기를 다뤄도 발을 땅에 붙이고 시작한다. 비정규직 젊은이들의 부실한 징검돌 사이에서 청춘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섹스하고, 의심과 불안 속에서 갈등하고 싸우다 이별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차분차분하고 탄력 좋게 끌고 나간다.

“나는 근육이 살짝 잡히고, 핏줄이 살짝 튀어나온 팔을 보면 참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로 시작하는 여성의 성애는 연애로 차츰 발전한다. 성애란 결국 또 하나의 감정 소통 행위임을, 따스한 온기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눈물이 남녀 관계에서 욕망의 체액보다 더욱 중요한 점착력이 된다는 것을 극은 일깨워준다.

지금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내세운 한국 연극의 층위는 다양하게 가지를 쳐나가는 중이다.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남근적인 상징 권력이나 명예 남성의 지위를 욕망하며 맴도는 목소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막 할례의 공포에서 벗어나 여성의 성적 욕망을 애무하는 목소리도 있다. 과잉된 성찰과 자의식마저 치우고, 지금 여기의 여성성을 발랄하게 긍정하면서 욕망 자체를 누리는 세대 또한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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