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무심함’ 가득한 영화 속 배우 김혜수
▣ 허지웅 〈GQ KOREA〉 기자
김혜수 배우론, 가슴이 크다. 끝. 2000년 이후 그 형태와 공기를 달리한 김혜수 연기론, 새천년이 됐어도 가슴이 여전히 크다. 끝. 를 중심으로 한 김혜수론, 새엄마 가슴이 엄청 큰데 막 안아주니 아이는 정말정말 좋겠네. 끝, 이라 말하고 이 글을 끝내는 건 여러모로 부족하고 쑥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혜수는 지난 20여 년간 그 자체로 상징화된 국대급 가슴, 오만 가지 민망한 상술로부터 오는 열패감에도 불구하고 매년 청룡영화제를 봐야 하는 당위성, 뭐 그런 공공의 ‘기호’로서 군림해왔다. 김혜수가 에서 전에 없이 파격적인 노출 연기를 선보였을 때는 극장에서 영화 보다 말고 분연히 박차고 일어서 를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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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그녀는 색정에 사로잡힌 세간의 관심과 평가에 질색한다. 하지만 매년 청룡영화제에서 사회를 볼 때마다 누가 드레스 가슴팍을 잡아 북북 뜯어 날린 것도 아닐 테고, 본인 스스로 ‘건강미인’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컨대 김혜수는 그저 몸매가 좋고 피부가 건강하며 자기 할 말 똑똑하게 할 줄 아는 CF 스타, 탤런트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는 이야기다.
한올씩 정성들인 ‘막 살아’ 헤어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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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1986년 로 박중훈과 함께 데뷔했다) 김혜수는 몸뚱이의 스펙터클을 들어 관능미의 여신, 혹은 톱스타라는 칭호에 만족해왔다. 그런 그녀가 언젠가부터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의 자의식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가장 명백한 증후는 (2002)에서부터 나타났다. 우리가 아는 김혜수의 표정이 몸짓이 눈빛이, 그녀를 둘러싼 대기의 모든 요소가 순식간에 색을 달리한 듯싶었다. 작품 선택의 기준도 확연히 영리해졌다. 그녀가 거친 흔적들을 일일이 잡아 훑지 않더라도 이전과 이후의 김혜수를 동일한 맥락 위에 두고 관찰하는 일은 무척 고된 작업이다. (2006)의 정 마담으로 공공연한 상찬을 듣기까지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가 이어졌다.
그렇다고 김혜수의 연기를 거품 물고 격찬하기에는 아무래도 망설여진다. 2000년대 들어 그녀가 쌓아올린 캐릭터 연기의 공든 탑은 언제 어느 방향에서 바라봐도 위태위태하다. 치명적인 팜므파탈 혹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의도된 무심함(이것이야말로 저 유명한 ‘무심하게 시크한’?) 정도가 그녀가 제시할 수 있는 카드의 전부다. 언뜻 보면 광인데, 알고 보면 비광이다. 를 기점으로 물이 오른 게 아니다. 연기력 자체에 별다른 발전이 없는 상황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 정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 거다. 사실 와 를 제외하면 그녀가 가진 카드와 작품의 맥락이 그럴싸하게 맞아떨어져 효과를 본 경우가 무척 드물었다. 하지만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김혜수의 갈망은 날이 갈수록 또렷하게 피부에 와닿고 있다. 그 최전선에 가 있다.
는 최루성 신파 드라마다. 막장 인생을 살던 한 여인이 여기저기 팔려다니다가 한 집에 당도하게 되고, 거기서 만난 소년에게 모성애를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 안에서 김혜수는 굴곡진 삶의 끝에 사랑을 발견하는 여인을 연기한다. 누가 들어도 매력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연기 또한 그렇다.
당초 영화의 시나리오는 대단히 강하고 센 표현 수위를 갖고 있었다. 연기력으로 하루빨리 승부를 보고 싶은 그녀가, 처절하게 망가진 여인의 모습,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는 캐릭터의 사정에서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정작 완성된 작품은 12세 관람가의 가족영화다. 원수처럼 지내다가 느닷없이 ‘엄마’를 입에 붙이고 사는 아이의 모습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고, 김혜수의 ‘나 막 살아요’ 표 엉망진창 헝클어진 헤어스타일은 얼마나 공을 들여놨는지 의 라이토를 보는 듯 한올 한올 굳건하다. 연기도 헤어스타일처럼 ‘의도된 무심함’의 절정이다. 확실히 김혜수는 모든 장면에서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성과가 없다. 작위적이고 전형적이다 못해 악의적이기까지 한 영화의 신파성은 열연에 목마른 김혜수의 몸짓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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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기에서 자연스러움을 찾기란…
이건 결국 거짓과 진실, 연기와 실제에 관한 이야기다. 김혜수의 연기에서 자연스러움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자연스러움마저 ‘연기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몇 번씩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타고난 배우,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그다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인생의 대부분을 스타로 살아왔고, 또 그 기간의 대부분을 연기자로 지내온 데 따른 부작용일지 모른다. 유감스럽지만 앞으로도 그녀가 그 스스로의 전형성에서 벗어나기가 무척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낳게 만든다.
그녀는 지금 전도연이나 문소리가 되고 싶은 듯 보인다. 이대로는 쉽지 않다. 그들이 너무 뛰어나서가 아니라, 김혜수가 그들과 전혀 다른 종류의 배우인 탓이다. 김혜수가 되고 싶은 것과 김혜수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예상외로 깊고 너른 골이 발견된다. 애꿎은 조바심으로 메워질 성격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익숙한 연기의 영역에서, 그 심도부터 단단하게 다지는 게 여러모로 영리한 선택이 될 듯 보인다. 사실 거꾸로 따지고 보건대, 국내 어느 누가 정 마담의 영역에서 김혜수의 존재감을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쉬엄쉬엄 가자.
▶이재용에게 다가오는 결단의 시간
▶20대가 50대처럼 투표한다
▶[주일미군과 시민운동] “이와쿠니는 한국 평택과 마찬가지”
▶이미지 전략에도 한 표 줘볼까
▶위풍당당 오피스텔, 얼렁뚱땅 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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